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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죽어가는 사람의 네 번째 반응 : 삶의 마무리

기자명 법보신문
임종 직전 외도남편과 화해 “최고 행복”

죽어가는 사람이 보여주는 네 번째 반응은 삶의 마무리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언가에 쫓기듯이 황망하게 죽기 보다, 인간관계상 갈등이 있다면 원만하게 화해를 하고, 매듭짓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잘 마무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유방암 말기환자 김순애씨는 처음 만났을 때 세상을 비관하고 있는, 불쌍하고 초라해 보이는 독신여성이었다. 병실에서 만나는 누구에게나 화를 잘 내는, 다루기 어려운 환자였다. 무언가 물어 보아도 대답도 잘 안하고 시니컬하게 굴기 때문에 간호사들도 기피하는 까다로운 환자였다. 그녀는 아직 41세에 불과했으나 50세도 더 되어 보이는 얼굴로 하루 종일 찡그리고만 있었다. 병수발을 하는 늙은 친정어머니한테도 짜증을 부리곤 했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지 3년 되었는데 두번째 재발하여 입원한 이후로는 항암치료도 효과가 없어서 호스피스에 의뢰되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매일 병실을 방문해 몸을 씻겨 주기도 하고 조금씩 먹을 것을 만들어 갖다 주기도 하고 책을 읽어 주기도 하는 등 사랑과 관심을 보여 주었다. 호스피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통증을 비롯한 신체적 증상은 조절되었지만, 그녀의 부정적 태도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처음에는 가족이 없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두 딸과 남편이 있었는데 10년 전 이혼했다. 이혼 당시 여섯 살과 여덟 살이던 두 딸은 남편이 키우기로 합의하고 헤어졌다. 이혼 사유는 남편의 외도 때문이었다. 남편은 재혼했지만 그녀는 줄곧 혼자 살았다. 이혼한 후에도 분노와 배신감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그녀는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했다. 이혼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아직도 남편을 마음속으로 떠나보내지 못했다.

그녀는 남편 때문에 속을 끓여서 암에 걸렸다. 남편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생각이 들어 식사도 제대로 안하고 잠도 제때 안자고 아무렇게나 자신을 학대하면서 지난 10년 세월을 살아왔다. 이제 죽음만 기다리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면서 흐느껴 우는 일이 많았다. 자녀들은 이혼한 이후 처음에는 몇 번 만났으나, 남편이 재혼해 이사를 간 이후부터 연락이 끊어져 만나지 못한 지 오래 되었다. 성직자와 두세 차례 면담하고 나서 이제는 전 남편을 용서해야겠다고 그녀는 마음먹고 있었다. 죽기 전에 남편과 두 딸을 꼭 한번 만나고 싶은데 어디 사는지조차 몰랐다. 죽음을 눈앞에 둔 임종환자의 간절한 마지막 소망이었다. 호스피스 팀에서는 가족의 소재를 알아보았더니 전 남편 정씨의 소재가 파악되었다. 정씨는 두 딸과 함께 문병을 왔다. 이 무렵 그녀는 거의 먹지 못하고 바싹 마른 상태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10년 만에 가족을 다시 만난 김순애씨는 처음엔 조금 서먹서먹한 듯 했고 딸들도 중병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남편 정씨가 조심스럽게 먼저 말을 꺼냈다. “그동안 마음 한 구석에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소. 나를 용서해 주겠소.” 그녀는 울먹하더니 “내가 너무 옹졸했어요.”라고 말하면서 앙상하게 마른 손을 내밀었다. 정씨가 그 손을 잡았고 두 딸도 함께 잡았다. 그녀와 가족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부터 정씨와 두 딸들이 병실을 지키기 시작했다.

가족을 만난 이후부터 그녀는 훨씬 원기를 찾은 듯이 보였다. 남편과 두 딸은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하기라도 하려는 듯 마지막 1주일 동안 대소변을 받아내고 온몸을 쓸어내려 마사지를 해주고 2시간마다 자세를 바꾸어 주는 등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 중에서 이때처럼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몸은 비록 죽음에 임박한 상태였지만 행복감은 최고수준이었다. “사랑해요.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라는 것이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만일 죽기 1주일 전 남편과 두 딸을 만나 극적으로 화해를 하지 못하고 두 딸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상태에서 죽었더라면, 그녀는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었을까. 자기 잘못도 아니고 남편의 외도로 인해 마지막 10년 동안 한 맺힌 삶을 살다가 암에까지 걸려 죽은 그녀는 구만리 장천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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