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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미얀마의 자존심 쉐다곤 페이야-하

기자명 법보신문

마음 속 번뇌마저
걷어가는 황금 사원

당장이라도 금물이 떨어질 듯
웅장하고 화려함을 내뿜는
인류가 쌓은 가장 오래된 불탑


“구름과 안개 속에 흐릿했던 아침, 내가 쉐다곤을 처음 대면했을 때 쉐다곤은 불로 된 혀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맑게 갠 날 정오(正午)의 모습은 평화롭고 장엄하였으며, 달빛 고요한 밤에 드러내는 자태는 신비로웠다. 나는 사는 동안 황혼과 폭풍우, 빙하, 공원, 꽃 그리고 사람의 얼굴 등 나를 감동시켰던 많은 것들을 보아왔지만 인간의 손으로 창조한 모든 것들 중에서 내가 아는 한 쉐다곤이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쉐다곤을 처음 보았을 때 뛰었던 가슴과 기억 속의 그 아름다움은 언제나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미국의 대법관 윌리엄 더글라스(William O. Douglas)

감동에도 차이가 있다. 처음엔 밋밋해도 세월이 흐를수록 맛을 더해가는 감동이 있는가 하면 찰나의 만남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살 떨리는 전율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비유하자면 세월에 씻겨 색깔을 잃고 나뭇결을 그대로 드러낸 고졸한 산사의 아름다움과 막 단청을 끝낸 법당의 화려한 색상이 주는 상쾌함의 차이라고 할까.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낮, 드디어 미얀마 불교의 정점인 쉐다곤 대탑과 마주했다. 거대한 황금사자상이 버티고 있는 사원의 입구에서 목이 꺾이도록 고개를 젖혀 올려다 본 대탑은 감동 그 자체였다. 웅장함과 화려함, 이국적인 신비감이 곁들여져 대탑은 한없는 황홀함을 내뿜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금물을 뚝뚝 흘릴 것처럼 색상은 선명했고, 화려한 조각들은 주변의 더러움을 모두 덮어버릴 듯 화사한 빛을 발했다. 탑의 몸체는 높게 솟아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햇살은 탑의 끝에서 하얗게 부셔져 사방에 그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인류가 쌓은 가장 오래된 불탑! 신화의 곁가지들을 걷어내고 기록에 남은 역사의 속살만도 무려 500~600년에 이르는 인류 유산! 그러나 이 유래 깊은 유적에서 옛 세월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음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탑은 이제 막 화장을 끝내고 새 출발을 기다리는 새색시처럼 싱싱했고, 느낌은 온통 붉게만 보였던 첫 사랑의 열병처럼 강렬했다. 해서 그 감동은 차라리 전율에 가까웠다.

쉐다곤 대탑은 이슬람 사원에서나 볼법한 모자이크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깊은 회랑의 끝, 저편에 서 있었다. 속세에서 묻은 더러운 업을 털어내듯 신발을 벗고 겸허하게 맨 발로 들어선 회랑은 아늑했다. 황금과 비취빛 물감으로 단장한 회랑의 기둥과 벽은 화려한 당초무늬 조각들과 어울려 고풍스러우면서 화려했다. 벽과 기둥, 천정에는 이 회랑의 건립에 정재를 헌납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라벨이 붙어있었는데, 하얀 은이 주는 차가운 촉감과 미얀마 글자의 따뜻한 곡선미가 기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머나먼 과거의 세계에 들어온 양 신비감을 자아냈다.

구중궁궐의 그것처럼 깊은 회랑을 거쳐 계단 앞에 닿으니 놀랍게도 최신형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참배객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 정부에서 설치했다는 이 에스컬레이터는 분명 회랑의 몽환적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며 눈 아래 펼쳐진 회랑의 아름다움을 더듬 듯 감상하는 맛은 결코 나쁘지 않다.

구름에 앉아 하늘을 날 듯 네 개의 에스컬레이터를 차례로 갈아타고 정상에 오르니 마치 동화책 속 황금의 나라에 온 듯 신비한 세계가 펼쳐진다. 1만평에 이르는 경내의 바닥은 하얀 대리석이 깔려 거울처럼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고,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는 화려한 법당과 불상, 그리고 엄청난 수의 황금 불탑들. 이내 주변 사방은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탑과 불전의 한 가운데 마치 회오리처럼 힘차게 하늘로 뻗은 쉐다곤 대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크기도 크기려니와 눈부시게 찬란한 그 모습에 시나브로 두 손이 절로 모아졌다.

경내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법당마다 부처님께 꽃을 공양하고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느라 분주했다.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맑고 아름다웠으며 순수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찌나 살갑게 미소를 짓는지, 마치 오래 전부터 알아 온 친한 친구로 여겨질 정도다.

<사진.위>대탑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사두. 불교와 미얀마 토속 종교인 샤머니즘을 혼합한 형태의 수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아래>쉐다곤 대탑 구경에 나선 틸라신(사미니). 웃는 모습이 천진하다.


미얀마의 절은 단순히 기도와 수행을 하는 공간만은 아니었다. 기도하다 지치면 그 자리에서 누워 잠을 잤고, 밥을 먹으니 불자들에겐 집이나 다를 게 없었다. 가족간의 담소도, 연인간의 사랑도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빈부(貧富)도 귀천(貴賤)도 남녀(男女) 구분도 이곳에서는 다 무의미해 보였다. 깊은 신심과 자유로운 공기만이 경내에 가득했다. 보시를 강요하지 않아도 복전 함은 이들이 낸 정재로 하나같이 그득했다.

잡화(雜花)로 장엄된 부처님의 회상이 이러했을까. 세상의 온갖 잡티에 피로해진 나의 눈에 문득 생기가 돌고 있다. 바쁘게 움직이던 마음도 어느덧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바위처럼 가라앉은 우리네의 그것과는 다르게, 걸림 없이 자유로운 분위기 그 자체였다. 미얀마 불교의 힘의 원천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대탑에 보관된 유물의 수량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여서 자체 박물관을 가지고 있었다. 탑 안에 모셔져 있던 역대 왕과 귀족, 민초들이 보시한 수많은 귀금속과 예술품들이 공간 부족으로 밖으로 나들이를 한 것이다. 이 곳에는 상아 안에 조각된 부처님과 황금 발우, 보석으로 치장한 탑과 장엄구, 왕의 의복 등 미얀마 불교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아름답고 화려한 유물들이 가득 보관돼 있다. 각 유물에는 보시자의 이름과 함께 이들이 서원들이 남아있는데, 하나같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거나, 업의 굴레를 벗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불교가 없으면 삶의 즐거움도 없다”는 미얀마 사람들의 애틋한 신심이 그대로 전해진다.

태양의 복사열로 달궈진 경내는 맨발로 걷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뜨겁다. 그러나 맨발에 익숙해져 있는 미얀마 사람들은 전혀 개의하지 않는 표정이다.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진 이방인만이 죄 없는 발을 탓하고 있을 뿐이다. 1만평에 이르는 넓은 경내를 한 시간 동안에 돌아보는 것은 무리다. 수많은 탑을 일일이 들여다보는 것도 힘들거니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상을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훑어보는 불경을 저질러야 하기 때문이다.

대탑의 한쪽에는 시청각 교육실이 갖춰져 있다. 300여 평의 넓은 공간에 부처님의 팔상성도를 밀랍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는데, 안내방송은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마도 아이들을 배려한 것일지 싶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방문한 가족들이 유난히 눈에 띤다. 얼마 전부터 머리에 하얗게 서리를 인 할머니가 어린 손자를 품에 안고 나긋이 부처님의 일대기를 설명하며 우리 뒤를 따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린 시절 잠자리에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불현듯 들려오고 있다. 풍경소리에 녹아들 듯한 정겨운 목소리에 나는 문득 걸음이 멈췄다.

kimh@beopbo.com



요일 관장하는 8종 동물 봉안

미얀마 사원의 특징

<사진설명>대탑을 에워싸고 있는 동물상

미얀마 사원에는 하나같이 요일을 관장하는 동물들이 놓여 있다. 쉐다곤 대탑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탑의 주위를 빙 둘러 다양한 동물들이 서 있다. 우리의 띠를 결정하는 12종의 동물처럼, 미얀마에서는 8종의 동물이 태어난 요일에 따라 결정된다. 이 가운데는 우리의 띠에 속해 있는 동물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동물들이 더 많다. 일반적으로 태어난 요일에 따라 월요일은 호랑이, 화요일은 쥐, 목요일은 사자, 금요일은 두더지, 토요일은 용, 일요일은 가루다(금시조, 문수보살의 화현이라고 한다)가 관장한다.

그러나 수요일은 특이해서 오전에는 상아 있는 코끼리, 오후에는 상아 없는 코끼리로 결정된다. 미얀마 사람들은 자신의 태어난 요일에 절을 찾는 것이 보통인데 반드시 자신과 관련 있는 동물에게 나이보다 많은 숫자의 물을 뿌리며 장수를 기원해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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