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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죽어가는 사람의 네 번째 반응 : 삶의 마무리②

기자명 법보신문

탄생만큼 중요한 게 삶의 마무리

짧은 기간 동안 유지되는 이 단계는 환자가 주위사람과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한 시기이다. 임종환자가 주위사람에 대해 매우 협조적이고 개방적이기 때문에, 환자가 품고 있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정리하는 ‘삶의 마무리’에 적합한 시기이다. 예를 들어 유언을 쓰도록 권유한다든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감정적 갈등이라든가 엇갈림이 있다면 화해하도록 이끈다든가 주변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기에 적합한 시점이다. 이 시기에 인생을 충분히 되돌아보고 인간관계를 차분히 정리하지 않으면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기 어렵게 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시점은 이 세상에서 생명이 시작되는 시점과 끝을 맺는 시점이다. 이 세상 삶의 마무리, 죽음이 임박한 말기환자 대부분의 경우 죽음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치 자기 문제가 아닌 듯이, 혹은 불행한 죽음을 원하는 것처럼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죽어간다. 그러나 죽음이 아무렇게나 죽어도 되는 남의 문제인가. 어떻게 죽느냐, 삶을 어떤 식으로 마무리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죽어가는 말기환자는 첫 번째 단계에서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 직면해 절망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 커져가고, 둘째 단계에 이르러 죽음에 대해 부정해 보기도 하다가, 셋째 단계에 이르자 화를 내면서 주위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이어서 임종환자는 네 번째 삶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운명과 협상함으로써 삶의 시간을 연장하려고 한다. 사는 기간을 연장해 주기만 하면 신앙생활을 하겠다든가 부모님의 묘소를 참배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한다.

어느 말기환자는 지독한 통증을 겪고 있었으므로 진통주사를 맞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환자가 바라는 여자와 아들이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큰 아들인데다 제일 정을 붙인 아들이었으므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할까봐 그녀는 어쩔 줄 몰랐다. 그녀는 결혼식을 올릴 때까지만 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노라고 맹세를 수없이 반복했다. 결혼식이 있던 날 그녀는 품위있게 차리고 병원을 나섰다. 아무도 그녀의 중태를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녀는 당당했다.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고 얼굴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도쿄에 사는 어느 여성의 실례를 통해 삶의 마무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 보기로 하자. 그녀가 쉰다섯 살 때, 두 살 연상의 남편이 암으로 죽었다. 의사가 당사자에게 암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그녀는 끝까지 실제 병명을 남편에게 말할 수 없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다. 유언장을 작성해놓자고 말할 수 없었고, 회사의 사장이었던 남편에게 회사의 운영에 대해 상담하는 일이 일체 불가능했다.

남편이 죽자, 곧이어 친척과의 사이에 유산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져 재판에까지 가고 말았다. 게다가 밤중에 몇 번이나 “당신 남편이 돈을 빌렸다. 빨리 돈을 갚아라”는 협박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회사일은 전부 남편이 처리했으므로,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다. 남편이 없는 지금 그 말의 진위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 생각해본 적도 없는 거액의 돈을 갚으라는 협박에 시달리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폭력배의 전화와 방문에 지쳐버린 그녀는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져버렸다.

이 같은 경제적인 문제보다 그녀를 더욱 괴롭힌 것은, 남편이 죽기 전에 서로 중요한 것에 대해 한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는 후회였다. 남편에게 암이라고 말할 수 없었으므로, 아무래도 화제는 그와 관계없는 이야기로 한정되고 말았다. 그날그날의 날씨라든가 스포츠, 예를 들어 전날 저녁 프로야구 시합의 결과, 연예인의 이모저모 정도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었지만 끝내 할 수 없었다. 특히 5년 전 남편의 실수에 대해 용서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조차 할 기회가 없었다. 남편이 그 일로 인해 얼마나 괴로웠을지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이제 이 세상에서 그 일을 용서하고 사랑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는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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