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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동아시아의 첫 역경가 안세고 〈하〉

뜻(意)은 제어하고 극복할 대상 수식관을 통해 선(禪)을 닦으니 뜻(意)이 절로 멈춰…

“욕망에 마음이 가리워져 지혜가 서있지 않은 사람은 안반(安般: 數息觀)을 빌려 들끓는 상념을 가라않혀야 한다. …〈중략〉…그러므로 보살(開士)이 선(禪)을 행하는 것은 적정(寂靜)을 고수하기 위함이 아니요 심원한 경지에서 마음이 노닐도록 하기 위함이다.”(《출삼장기집》〈안반수의경서 제4〉) 이 글은 진(晋) 나라 때 사부(謝敷)가 쓴 《안반수의경서》의 한 구절이다. 적어도 동진 시대에 《안반수의경》을 당시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 한 가지 실마리를 던져주기 때문에 여기서 인용해 보았다.

《안반수의경》의 ‘안반(安般)’은 ‘들숨(a- na 安)’과 ‘날숨(apa- na 般)’의 합성어 ‘아나빠나(a- na- pa- na)’에 대한 음역(音譯)으로 우리말 ‘숨’을 뜻하며 수행상의 의미로는 ‘수식관’을 뜻한다. ‘수의(守意)’는 ‘스므르띠(smr· ti)’(후에 ‘항상 생각한다’는 뜻의 ‘念’으로 번역된다)에 대한 의역(意譯)으로 ‘뜻(意)을 멈춘다(止)’는 뜻이니, ‘안반수의’라고 하면 수식관으로써 뜻을 멈추는 수행을 말한다. 물론 《안반수의경》에서 설해지고 있는 수행 과정은, 수식(數息), 상수(相隨), 지(止), 관(觀), 환(還), 정(淨)의 여섯 단계(소위 ‘육사(六事)’)가 연이어지는 수행 체계를 뜻하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수식관’은 이 여섯 단계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구사론》에서도 ‘수식관’에 대해서 같은 설명을 하고 있으므로 《안반수의경》이 설일체유부의 수행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뜻을 멈추는 일로부터 본격적인 수식관이 시작된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다면 안세고 당시 중국인들이 생각했던 ‘뜻(意)’은 어떠한 것이었길래 뜻을 멈추는 일이 그토록 중요했을까? 《설문해자》에 보면, 뜻 ‘의(意)’ 자는 音+心으로 이루어진 회의자(會意字)로, 어떤 사람의 말을 잘 살펴볼 때 간파할 수 있는 그 사람의 현 상태의 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뜻(意)’이란 언어적 사량분별과 뗄 수 없는 현상적 마음을 가리킨다. 삼국 시대 오(吳) 나라의 강승회(康僧會)는 “손가락 한 번 튕기는 짧은 순간에 마음은 960번 바뀌고 하루 사이에 13억 개의 意가 된다.”, “禪이란 버리는 것(棄)이다. 13억 개나 되는 더러운 생각인 意를 버리는 일이다.”(《출삼장기집》〈안반수의경서 제2〉)고 하고, 진(晋) 나라 때 사부(謝敷)는 “意는 일체 괴로움의 씨앗이고 바른 길에 등돌리게 되는 근본 원인이다.”(《출삼장기집》〈안반수의경서 제4〉)고 풀이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뜻(意)’은 우리가 제어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며, 수식관을 통해 선(禪)을 닦는 일은 바로 이 뜻을 멈추게 하는 길임을 알 수 있다. 안세고 본인이나 동한 이후 적어도 위진 남북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후대 중국의 불교인들이 수식관을 대승과 무관한 소승의 전유물로만 생각했다는 문헌 증거는 없다. 오히려 사부의 《안반수의경서》에서는 《안반수의경》에서 말하는 수식관을 보살이 닦아야 할 수행으로 거론할 정도이니, 수식관은 대, 소승의 구분 없이 기초 수행법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안세고의 제자로 엄불조(嚴佛調)가 있는데, 이 사람은 중국 조정의 공식적인 허락을 얻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중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출가승이다. 동한 영제 때 기도위(騎都尉) 관직을 맡은 안현(安玄)이 《법경경(法鏡經)》을 번역할 때 안현을 보좌하여 필수(筆受: 번역에 따라 집필하는 자) 역할을 하였다. 안현은 안식국 출신으로 출가승이 아닌 우바새였으니 재가신자로서 인도 불전을 번역한 첫 사례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일은 《법경경》이 《욱가장자소문경》(강승개 역), 《욱가라월문보살행경》(축법호 역)의 이역(異譯)으로, 재가보살의 수행 방식을 설하고 있는 대승경전이라는 점이다. 안세고를 소승 불교도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지만 안세고와 엄불조의 관계, 안현과 엄불조의 관계를 고려할 때, 게다가 사부(謝敷)의 《안반수의경서》를 고려에 넣을 때, 안세고가 소승 불교도였다는 기존의 통설은 어설픈 주장이라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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