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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의 살점 깎아내던 선객들 바람 구름되어 산문 나서다

쌍계사 동안거 해제하던 날

<사진설명>해제법회가 끝나자 수좌들은 걸망을 집어들었다. 이제부터는 만행이다. 그 어디서건 화두를 놓으면 중생이요, 화두를 잡으면 열반의 길이라 하지 않았던가. 길을 나선 선객들은 구름처럼 물처럼 세상을 떠돌며 스스로를 점검하고 단련하며 뭇중생을 교화해 나가리라.

 

2월 22일 새벽 3시 지리산 쌍계사 금당선원. 본래진면목(本來眞面目)을 가리고 있는 번뇌의 살점을 깎아내려 애썼던 동안거 정진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쌍계사 계곡에서는 삭풍이 상처 입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지나가건만 선방의 수좌들은 마치 면벽불이라도 된 양 미동도 없다.

이번 쌍계사 금당선원 동안거에 방부를 들인 수좌는 모두 16명. 젊은 수좌부터 구참수좌까지 법랍도, 걸어온 이력도 다르건만 지난 석 달간 견성의 문고리를 틀어쥐기 위해 몸부림쳤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16명 금당선원서 정진

‘입차문내 막존지해(入此門內 莫存知解).’ 유무에 얽힌 세간의 알음알이를 버리고 이들 선객이 쌍계사 불이문에 든 것은 지난 11월 26일(음력 10월 15일)이었다.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스님이 이곳에 들러 ‘천하제일의 도량(周天下之道場)’이라고 찬탄했을 정도로 금당선원은 예로부터 소문난 수행처였다. 특히 신라시대 구법승인 대비(大悲)와 삼법(三法) 스님이 육조혜능 대사의 머리를 모셔오고 이를 다시 탑 안에 모시면서 금당선원은 선종대가람의 명성을 드날렸다.

이런 까닭에서인지 조선조의 벽송, 조능, 서산, 부휴, 백암, 무가, 인허, 월송 스님 등을 비롯해 근세의 고승으로 손꼽히는 용성, 석우, 효봉, 금오, 서암, 일타, 청화 스님 등 천하의 청풍납자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금당을 중심으로 나뉘어져 있는 서방장과 동방장. 예로부터 서방장에서 잠을 자면 혜능대사의 신장이 나타나 걷어찬다는 말이 전해오기 때문에 이곳은 24시간 정진하는 방이다. 이번 동안거 때에는 서방장에서 10명, 동방장에서 6명이 새벽 3시부터 9시까지 치열한 정진을 계속했다. 정해진 시간 외에 밤을 세워가며 정진했던 수좌들도 많았음은 물론이다.

금당선원 조실 고산 스님의 법문과 격려들도 수좌들에겐 큰 힘이었다. 매월 보름마다 소찬·만찬 법문을 내려 정진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참선공부는 두 가지 병통(病痛)을 이겨내야 합니다. 하나는 잠자려는 병통이요, 하나는 망상이라는 병통입니다. 또 어서 빨리 견성해야겠다는 탐(貪), 나는 왜 이렇게 공부가 안되는 걸까 하는 진(嗔), 나는 그런대로 잘 하는 거라는 치(痴) 등 3독을 버려야 합니다. 중도(中道)가 제일이라는 마음으로 서두르지도 말고, 뒤쳐지지도 말고, 앞서려고 하지도 말고 그저 꾸준히 밀고 나가다보면 견성오도하기 마련입니다.”

한없이 단조로워 보이는 좌선(坐禪)과 행선(行禪)의 연속, 산짐승처럼 자신을 가둔 채 화두를 붙들고 하얗게 지냈던 나날들. 16명의 수좌들은 해제 마지막 순간까지 긴 고독과 침묵 속에서 깨달음을 일궈내기 위한 마지막 몸짓을 계속했다.

해제에 맞춰 대웅전에서 정진하던 재가불자들의 염불소리도 잦아들었고 마침내 동안거 마지막 참선정진도 막을 내렸다.

새벽 6시, 아침공양을 마친 수좌들의 모습이 조금은 들떠보였다. 지난 밤 풀을 먹이고 새롭게 수선했는지 장삼의 곡선도 선명하다. 오래전부터 그래왔듯이 다음 안거 때 정진하는 이들을 위해 수좌들은 좌복의 홑창을 뜯어내 빨고 이불도 깨끗이 손질했으리라.

시간이 지날수록 해제법회에 참석하기 위한 사람들로 경내는 분주해지고 도량도 차량들로 빼곡히 들어찼다. 잠시 후 한 무리의 스님들도 쌍계사에 들어섰다. 칠불선원과 아자방(亞字房)에서 정진한 20여 명의 선객들이다. 쌍계사에서 안거를 마친 대중 스님들뿐 아니라 산내 암자에서 정진했던 스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조실 스님의 해제법문을 들어야 비로소 긴 안거가 끝나기 때문이다.

“방심 말고 정진하라” 조실 법문

<사진설명>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이 수좌들과 함께 정진하고 있다.

오전 10시, 200여 대중이 대웅전 안팎을 가득 메운 가운데 법회가 시작됐다. 예불의식에 이어 조실 고산 스님이 주장자를 들고 법좌에 올랐다.

쾅~ 쾅~ 쾅~
“한 바퀴의 밝은 달이 항사세계에 두루한대
대지의 준동함영(蠢動含英)이 본래 스스로 여여하도다.
물 가운데 불이 있고 불 가운데 물이 있네
진(眞) 가운데 망(妄)이 있고 망 가운데 진이 있다.”

조실 스님은 주장자를 세 번 내리치고 게송을 읊었다. 스님은 또 “걸어갈 땐 걸어가는 이놈이 누구인가,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이놈이 누구인가, 화두를 들 땐 화두 드는 이 놈이 누구인가, 그렇게 의심해가면 참선 아닌 게 없다”고 강조한 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모두 생사해탈(生死解脫), 원만성불(圓滿成佛)하게 될 것이니 해제했다고 방심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기 바란다”며 수좌들을 독려했다.

오전 11시, 법회가 모두 끝나자 수좌들은 걸망을 하나씩 짊어졌다. 이제부터는 만행(萬行)이다. 구름처럼 물처럼 세상을 떠돌며 그 안에서 자신을 점검하고 단련하며 교화하는 행각이다. 그 어디서건 화두를 놓으면 중생이요, 화두를 잡으면 열반의 길이라 하지 않았던가. 실제 안거 자체가 부처님 당시 길 위의 생활이 어려운 우기(雨期)에 정진하기 위한 제도였다. 그런 까닭에 해제는 수행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심지어 수행자의 본령으로까지 인식돼 왔다.

만행도 수행자의 본령

“은사 스님을 찾아뵌 후 다시 가행정진을 하려 합니다.”
“경기도 부천으로 갈 겁니다. 불교대학에서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요.”
“글쎄요, 일단 영화 한 편 보고 생각해보죠.”

차를 타거나 혹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어 내려가는 스님들의 답변이다. 천왕문, 금강문, 쌍계교, 일주문을 건너 멀어져가는 스님들…. 그 뒤로 금당에 걸린 주련 속 혜능대사의 오도송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아니요, 거울 또한 거울이 아니라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서 티끌이 일어나랴.(菩提本無樹 明鏡亦非帶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하동=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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