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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영산재 조선전기 성립됐다”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5.03.02 15:00
  • 댓글 0
심효섭 씨 보조硏 세미나서 주장
“영산재, 한국서 출발한 천도의례”


“천도재 성격이 담긴 한국 전통 영산재는 조선 전기에 이미 성립됐다.”
가천박물관 심효섭〈사진〉 학예실장은 2월 26일 보조사상연구원(원장 법산 스님)이 서울 법련사 법당에서 ‘한국 영산재의 성립과 사상’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60차 학술발표회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영산재는 불교천도의례의 하나로 후손이 망자(亡者)의 극락왕생을 염원하기 위해 치르는 재의식(齋儀式)이다. 특히 영산재는 영취산(靈鷲山)에 계시는 석가모니불을 의식도량으로 모셔와 법을 청하고 그 공덕에 의거해 극락왕생 할 수 있기를 염원하는 법화신앙(法華信仰)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심 실장은 ‘조선전기 영산재의 성립과 그 위상’이라는 논문에서 “그동안 학계에서는 영산회(靈山會)가 조선전기까지는 기록상으로 나타나지 않다가 16세기 후반에 비로소 기록으로 등장한 점 등을 미뤄 영산재가 조선 중·후기 비로소 시작됐다고 알려져 왔다”며 “그러나 이는 조선전기 천도재에 대해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 영산재에 대한 연구는 주로 현존하는 재의식의 절차와 과정을 조사해 사라져 가는 무형문화재를 보존하는데만 중점을 둬 왔기 때문에 영산재에 대한 성립시기와 양상을 파악하는 본격적인 연구가 미진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조선전기 왕실의 천도행사에 영산재가 개최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세종 2년(1420) 태종에 의해 법석이 혁파된 이후 바로 그 다음해 열린 원경왕후의 기일에 천도재를 개최하면서 이를 영산승석(靈山勝席)이라 했고, 서산대사가 지은 천도재의 소문에서 영취도장(靈鷲道場)이라는 용어가 두 차례 나오는 것은 이미 조선전기 재의식(齋儀式)에서 영산재가 개최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성종 14년(1483)에 개최된 정희왕후 상례에서 영산회도(靈山會圖)가 제작됐으며, 성종 24년(1493) 편찬된 『악학궤범』에 기악곡인 영산회상이 수록된 것을 미뤄보면 이미 이 당시에 영산재 개최가 보편화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 실장은 또 한국불교 고유의 천도재는 영산재라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사진설명>2003년 조계종이 전통 영산재 복원을 위해 재연한 영산재 모습.

그는 “현존하는 천도재로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 등이 있지만 예수재는 인도에서 출발했고, 수륙재는 중국에서 성립됐지만 영산재는 한국에서 성립된 독특한 천도의례”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번 연구를 계기로 향후 영산재가 성립됐던 조선 전기 다른 불교전통문화와의 관련성을 밝히는 데도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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