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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삔따야 페이야 - 서늘한 동굴 안 1000년전 설화 살아 숨쉬는 듯

기자명 법보신문

<사진설명>거미와 싸워 이긴 한 청년의 염원에 의해 건립된 삔따야 사원의 전경.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황금의 땅 미얀마에는 몬족이 세운 나라가 있었다. 나라의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살림이 넉넉하고 풍요로워 백성들은 행복했다. 이 나라엔 일곱 명의 공주와 어진 왕이 살고 있었는데, 공주들의 자태가 어찌나 고운지 하늘에서 선녀라도 내려 온 듯 매혹적이었다. 이들 가운데에서도 막내 공주의 미모는 하늘이 질투를 할 정도로 아름다워, 내로라하는 이웃 나라 왕자들의 청혼이 하루도 끊이지 않았다. 막내 공주를 탐내는 사람이 많아지자 부왕도 누가 막내 공주를 보쌈이라도 하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 공주와 왕은 함께 여행을 떠났다. 나라의 안팎을 둘러보는 것은 물론 백성들의 살림을 살필 목적이었다. 그런데 막내 공주는 혜호라는 마을의 북쪽에 있는 호수를 보고는 더 이상 여행을 하기를 마다했다. 호수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이곳에서 지내기를 바랐던 것이다. 공주의 바람이 워낙 강하자 왕은 할 수 없이 공주가 묵을 수 있는 작은 궁전을 마련하고 호수에서 지내는 것을 허락했다. 소녀티를 벗은 공주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으며 수영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인어를 보는 듯 했다. 마을 청년들이 남몰래 공주를 훔쳐보며 애간장을 태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주가 호수에서 사라지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들은 왕은 이내 몸져누웠고 신하들은 공주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공주는 찾지 못한 채 하루 이틀 날짜는 지나갔고 왕의 병도 점점 깊어갔다. 그러던 차에 호수 주변에 살던 한 청년이 어깨에 커다란 활을 매고 왕을 뵙기를 청했다. 청년은 왕에게 공주를 납치한 범인은 호수 앞산에 거대한 동굴을 파고 사는 거미라고 밝히고 자신이 그 거미를 죽이고 공주를 찾아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대신 공주를 구해오면 공주와 결혼을 하게 해 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왕의 승낙을 받은 청년은 활을 메고 험준한 산을 올라 동굴에 들어갔다. 동굴은 마치 거대한 집처럼 웅장했으며, 그 안에는 청년의 수십 배나 되는 무시무시한 거미가 살고 있었다. 이윽고 청년과 거미의 사투가 시작됐고, 결국 청년은 활로 거미를 죽이고 공주를 구해 돌아왔다. 이를 기뻐한 왕은 공주와의 결혼을 허락하는 것은 물론 또 하나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청년은 동굴 안이 가득 차도록 부처님을 조성해 줄 것을 요청했고, 왕은 거미가 사라진 동굴을 8400개가 넘는 불상으로 가득 채웠다.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바로 삔따야 페이야다. 삔은 미얀마어로 거미, 따야는 동굴이라는 의미이니 삔따야 페이야는 거미동굴 사원이라는 뜻이다.

설화를 듣다보면 말을 잃게 된다. 마치 무더운 여름날 부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마냥 일상에 찌든 우리네 마음을 고요히 정화하는 묘약과도 같은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멀게만 느껴지던 과거의 역사적 사실도 설화의 그릇을 빌리게 되면 마치 어제의 일인 양 살이 붙고 피가 돌기 마련이다.

고양이가 재주를 넘는 응아삐 짜웅, 일명 고양이 점핑 사원을 뒤로 하고 미얀마의 대표적인 동굴 사원인 삔따야 페이야를 찾았다. 은빛 물비늘이 찰랑거리는 인레 호수를 뒤로 하고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빠듯한 일정은 잠시의 여운도 허락하지 않았다. 삔따야 사원은 미얀마 사람들에게 매우 특이한 성소로 사랑을 받고 있다. 동굴 속에 조성된 수천 개의 불상도 매력적이지만, 동굴에 얽힌 설화도 잔잔하게 발길을 불들고 늘어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방인들이 쉽게 즐겨 찾을 수 있는 성소는 아니다.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외진 곳에 있는데다 수백 개가 넘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겨우 속살이 드러내는 까탈스러움으로 친견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삔따야로 가는 길은 마치 동화 속 요정의 나라에 나오는 길 마냥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은 산들을 헤치고 전진하다보면 갑자기 길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농원을 만나게 되는데 마치 자연이 펼치는 한편의 파노라마 같다. 노랑, 파랑, 보라, 빨강 각기 다른 색의 천 조각을 이어 만든 고운 조각보를 보는 듯 기형학적인 밭들이 강렬한 색채로 자신의 영역을 드러내며 끝없이 펼쳐진 모습이 그야말로 절경이다. 또 넓게 펼쳐진 농원 위로 구름 몇 조각을 품에 안은 채 하늘거리는 파랗게 맑은 하늘은 너무나 평화로워 한참동안 말을 잊게 한다. 삔따야 동굴 인근 마을의 거대한 나무 군락지도 신비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수령만 족히 1000년이 넘을 것 같은 고풍스런 바니안 나무 무리가 거대한 숲을 이뤘는데 신라 천년의 비밀을 품고 있는 경주 ‘계림’의 그것처럼 비밀스러우면서도 그윽한 것이 미얀마 역사의 시원이라도 담고 있는 듯하다.

삔따야는 버스가 산허리를 돌며 가쁜 숨을 몰아쉬자 그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냈다. 원래는 산 아래 어귀에서 법당 입구까지 수백 미터의 회랑을 계단을 통해 힘겹게 올라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총리가 150만 달러를 들여 산 중턱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바람에 일행은 한결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사원의 입구에서 만난 엘리베이터는 공교롭게도 LG전자의 제품이다. 순간 고향 사람이라도 맛난 듯 몸에 힘이 솟는 폼이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산 어귀에서 초록색의 회랑이 마치 한 마리의 용처럼 꾸물꾸물 이어져 있다. 길게 내려 앉은 회랑의 주변은 하얀 탑들이 점점이 들어서 주변의 신록과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동굴은 좁았지만, 구석구석 불상이 없는 곳이 없다. 동굴 자체도 미로였지만, 8400여개에 이르는 불상이 또한 미로를 만들고 있었다.

<사진설명>산 어귀에서 법당까지 이어져 있는 긴 회랑.

동굴 법당의 입구에는 거대한 황금의 탑이 조명을 받아 붉게 빛을 뿌리고 있었고, 그 뒤로 입상, 좌상 등 다양한 형태의 불상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불상 앞에는 보시자의 이름과 사연을 적은 은빛 라벨이 조성 당시의 역사를 조용히 말하고 있다. 불빛에 하얗게 빛을 발하는 라벨에서 불상 조성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갸륵한 마음이 손에 잡힐 듯 묻어난다. 삔따야 페이야는 동굴 사원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천정에서 끊임없이 석회수가 떨어져 주변을 더럽힌다. 그러나 불상들은 어느 것 하나 훼손됨이 없이 찬란한 황금빛으로 법당 안을 밝게 밝히고 있다. 이는 하루 종일 불상에 묻는 석회수를 닦아내고, 불상의 표면에 끊임없이 금박을 입히는 미얀마 사람들의 남다른 노력 덕분이다. 법당 입구에는 보시 받은 돈을 보시자의 명단과 함께 꽃이나 바람개비 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는데 좀 더 많은 보시를 이끌어 법당을 가꾸고자 하는 노력이 눈물겹기까지 하다.

<사진설명>동굴 사원 법당 입구의 황금탑. 그 뒤로 엄청난 수의 불상이 보인다.

법당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가족과 연인 등 형태는 다양했지만 법당에 들어서는 순간 얼굴에는 하나같이 경건함이 감돈다. 가난한 살림에 돈을 주고 엘리베이터를 탔을 리는 만무한 일. 산 어귀에서 수백 개의 계단을 힘겹게 올랐을 이들의 소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얼굴의 땀을 훔치며 절을 하는 이들의 모습이 삔따야 동굴을 장식하는 또 하나의 불상처럼 거룩하기만 하다.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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