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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죽어가는 사람의 여섯 번째 반응 : 순응

기자명 법보신문

죽음에 순응하며 희망 읽어라

자기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당하면 누구나 슬퍼하기 마련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치유를 향한 첫걸음은 바로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죽음에 임해 슬픔을 표출하는 것은 임박한 죽음을 인정하겠다는 뜻도 어느 정도는 담겨있을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첫 번째 반응 절망 혹은 두려움, 두 번째 반응 부정, 세 번째 반응 분노, 네 번째 반응 타협 혹은 삶의 마무리에 이어, 다섯 번째로 보여주는 반응이 바로 슬픔 혹은 우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바람이 불면 부는 방향에 따라 납작 엎드렸다가 곧바로 일어서 자세를 바로 잡는 잡초처럼,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감정적 흔들림을 서서히 추스르고 이제 임박한 죽음을 차분히 직시해 수용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우리는 심사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우리는 비로소 처음 다섯 가지 반응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 죽음의 빗장을 활짝 열어젖혀 순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통으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아무 것도 배울지 못할 때 우리는 똑같은 과정, 똑같은 어리석음을 계속 반복하게 될 것이다.

죽음이란 상황을 순응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뜻만 담겨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장사상에 무위라는 용어가 있다.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거짓된 행위를 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해 행위를 한다는 의미이므로, 수동적 적극성의 뜻으로 이해된다. 우리가 죽음을 수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일방적으로 끌려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순응함으로써 무언가 희망도 읽어내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도 담겨있다.
영어에도 ‘Renunciation’이란 단어가 있다. 이 단어에는 체념, 포기의 뜻도 있지만, 또한 자유의 의미도 담겨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도모해 아둥바둥 발버둥치다가 어느 순간 체념해 버리면 마음이 시원해졌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죽어가는 과정에서, 또 죽은 이후에도 우리는 결코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죽음이 남긴 침전물이 우리 존재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을 수용해 순응하면 죽음을 너머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죽음을 수용하는 시점에서부터 죽음은 더 이상 걸림돌, 장애가 되지 않는다. 죽음에 순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영혼의 치유는 시작된다. 아니 이미 치유되어 죽음의 공포를 넘어섰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자기가 죽겠다고 마음을 비운 사람에게 죽음이 어떻게 두려운 존재일 수 있겠는가. 원효대사도 말씀하지 않았던가. “하나의 도로 생사를 벗어나 일체에 걸림이 없는 자유인” (一道出生死, 一切無碍人)

죽음에 임해 마냥 슬퍼하기보다, 슬퍼하는 과정에서 누구든지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 수용하고 이 세상에 대한 집착, 더 살겠다는 애착을 내려놓고 자연의 흐름에 맡긴다면, 마음이 홀가분해질 것이다. 무언가 꽉 잡고 있을 경우, 만일 그것이 결코 잡을 수 없는 그런 것이라면, 결국 자기 자신만 한없이 구렁텅이 속으로 빠졌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 꽉 쥐었던 손을 슬그머니 펴는 것이 현명하다. 죽음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삶과 죽음을 영위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으니까,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 방식이 편안하지 못한 것은 바로 그가 삶을 여유있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이 이미 종착역에 다다랐음에도 불구하고 더 살아 보겠다고 아둥바둥 안달을 떨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면, 이젠 헤어져야할 시간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먼 여행 길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죽음이 끝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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