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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어떤 철학적 해석

기자명 법보신문

‘법’과 ‘님’의 진리가 각각 공존하는 양가성

불교의 시대가 온다. 나는 불교를 철학적으로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불교는 서로 결이 다른 두가지의 도(道)를 동시에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비인격적 진리와 인격적 진리이다. 전자는 대 우주적 이치와 동격인 자연의 비인격적 ‘법’으로 표시되어 있고, 후자는 ‘님’이라는 인격적 호칭으로 모셔진다. 비인격적 법의 진리에 대하여 『금강경』은 ‘여래라는 것이 곧 모든 법이 여여하다는 뜻(諸法如義)’이라고 말했다. 이것을 야보(冶父)스님은 ‘위는 하늘이고 밑은 땅이라.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로다…’고 풀이했다.

세상의 자연스런 사실을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여래의 진리임을 가리키는 말이겠다. 불법은 의식이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논리화하는 아전인수격적인 세상보기가 아니고, 해맑은 거울이 있는 그대로 비추듯이 여여하게 세상을 보는 법을 말한다. 인간중심이나 신중심으로 채색된 의식이 그리고 있는 세상을 벗어나서 ‘만물이 만물을 바라보듯(以物觀物)’ 세상을 직관함을 여법하다고 불교는 가르친다.

심리적이든 논리적이든 아심(我心)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오직 세상에 ‘천도무친(天道無親)’한 법만이 영원한 진리의 빛으로 반짝인다. 마음이 자연처럼 물화(物化)되면, 마음은 이해력을 구비하되 전혀 자아의 사심이 없는 심물합일(心物合一)의 고요하고 편안한 경지를 터득하게 된다는 것이 불법의 가르침이다.

서산(西山)대사가 임종 직전에 남긴 선시다. ‘80년 전에는 그것이 나였는데, 80년 후에는 내가 그것이로다.’ 대사가 심물합일의 상태에서 그의 마음이 자연적인 법의 ‘그것’(渠)과 일체가 되었음을 노래한 것이겠다.

여래는 대 우주의 ‘그것’인 법과 다름 아니다. 14세기 독일의 신학자인 에카르트(Eckhart)도 신을 무진장한 허공으로 보면서 신의 진리를 ‘그것’(Istigkeit=isness)이라고 언명하였다.

만물의 불변적인 이법 ‘그것’을 신의 진리 자체로 읽은 것이다. 그래서 그가 사후에 파문당했다. 요사이 그가 다시 떠오른다. 여래는 ‘그것’의 법과 다르지 않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또 불교는 ‘그것’인 이법의 고요한 깨달음에 못지 않게 동시에 따스한 정감적 자비심을 품고 있다. 즉 여여한 법을 불교는 부처‘님’으로 또한 탈바꿈시킨다. 심지어 허공처럼 무한한 그 법을 법신(法身) 부처님으로 인격화하면서 불교는 마음의 님으로 모신다. ‘그것’의 법은 마음을 우주의 차원으로 확산시킨 물화의 진리인데, ‘님’의 자비는 그 우주적인 무형한 ‘그것’을 마음 안의 ‘그대’로 수렴한 심화(心化)의 진리라 하겠다.

불교의 도는 비인격적 ‘그것’과 인격적 ‘그대’를 양가적 진리로 안고 있는 아주 수승한 철학이다. 말하자면 물학(物學)과 심학(心學)의 두 진리를 회임하고 있다. ‘님’을 이인칭 ‘그대’로 모신다고 해도 그것은 마음에서 ‘나’와 마주앉은 상대적 ‘너’가 아니다. 마음은 자기 안에 늘 이미 있어 온 ‘그대’로서의 절대적 님의 현존에 합일되어 일인칭 ‘나’는 이인칭 ‘그대’의 님으로 회심한 셈이다. ‘나’의 욕심은 사라지고 오직 ‘그대’의 원력만이 나의 전부가 된다. 이것이 기도이겠다.

마음의 물화를 통하여 마음은 허공처럼 무애하고 고요한 적멸의 초탈이 되고, 마음이 님의 현존과 일치함으로써 마음은 숭산 큰스님이 가르치신 세계일화(世界一花)처럼 다른 이들의 마음과 공명하는 연기법적인 자비공동체가 된다. 그래서 내가 만나는 모든 유정과 무정물에게 조그만 해악도 끼치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 조그만 돌맹이를 발로 차거나 침을 뱉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의 道를 통해 먼저 공(空)의 해탈법을 우리가 알지 않으면, ‘그대’의 道가 말하는 유(有)의 연기법이 생활화되지 않는듯 하다. ‘그것’과 ‘그대’의 진리는 체용(體用)의 관계라고 생각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철학과 교수
kihyhy@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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