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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수행 김시운 씨 상

기자명 법보신문
70년대 말 경찰생활하다 서예가로
10년 전 신비한 꿈꾸고 사경 시작


내가 붓을 잡은 지도 어언 30여년. 시인은 시에 갇혀 살고 소설가는 소설에 갇혀 살 듯 나는 붓에 나를 가두고 긴 세월을 살아왔다. 한 글자 한 글자 뼈를 깎아내듯 온갖 노력을 기울여 쓰고자 했고 또 때로는 희열에 젖어 글씨를 써 내려갔던 깨알 같이 많은 시간들. 번뇌를 덜어내기 위한 그 지난한 세월의 편린들을 모아 이제 곧 사경전시회까지 열게 됐으니 그 감회를 무어라 표현해야 될까.

내가 서예를 시작한 것은 비교적 늦은 나이였다. 청원이 고향인 나는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자라 나중에는 경찰관이 됐고 결혼도 했다. 그런데도 늘 무언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스쳐지나가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날 교통계에서 근무했던 탓에 길거리에서 생활하던 나는 우연히 서예학원 간판을 보았고 갑자기 저걸 해야겠다는 강한 생각에 이끌렸다. 그때부터 나는 근무시간에도 거리보다 서예학원에 있을 때가 더 많았고, 몇 달 뒤에는 아내 몰래 직장까지 그만두고 서예에만 매달렸다. 선이 주는 기막힌 매력과 묵향의 은은함 이란…. 그저 업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나는 직장을 그만둔 후에도 아침이면 경찰복을 입고 학원을 향했다.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을 도저히 아내에게 말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날들이 계속됐고, 6개월가량 지난 어느날 경찰서에서 퇴직금을 받아가라는 통지서가 왔고 이로 인해 결국 아내도 알게 됐다. 나는 아내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내가 하는 일을 납득시키고자 애썼다. 착한 아내는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이를 계기로 나는 서예에 더욱 열중했고 나중에는 서예학원까지 차렸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내가 사경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법당에 들어가 절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불교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룻밤의 꿈은 그런 나를 확 바꿔놓았다. 꼭 10년 전이다. 그날도 나는 여느 때처럼 하루 종일 글씨를 쓰다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 산을 좋아해서인지 꿈속에서도 나는 등산을 하고 있었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산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장삼을 걸친 한 노인이 나타났다. 그 노인은 무엇인가 무거운 것을 들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내게 떠넘기며 “야, 이놈아! 허튼 짓 하지 말고 평생 이거나 부지런히 써라.” 나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았지만 그 무게에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고, 그 노인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나는 잠을 깼지만 조금 전 있었던 일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어떻게 이런 생시 같은 꿈을 꿀 수 있을까. 또 그 노인은 누구며, 내게 받은 책은 무슨 내용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밤을 꼬박 지새우고 다음날 우연히 속리산의 한 암자를 찾게 됐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꿈에 봤던 노인이 그곳에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놀라 인사를 드렸다. 그랬더니 노스님께서는 한참을 쳐다보더니 나에게 책을 한권 건네주었다. 가는 붓으로 정성껏 써내려간 금강경 절첩본이었다.

아! 이거였구나. 어쩜 이렇게 글씨를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쓸 수 있을까 감탄을 하며 나도 앞으로 이런 글씨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일반 서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기교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사람을 끌어들이는 성스러움과 맑음이 내 마음을 온통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사경예술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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