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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 세우고 조견하니[br]일상-수행 하나 돼

기자명 법보신문

침선 30년 안 경 애 보살

<사진설명>안경애 보살은 스승 백봉 거사의 가르침을 뼛 속 깊이 새기며 정진의 끈을 놓지않고 있다.

이 세상 색·소리는
실제 존재하는가?
여고시절 강한의문
평생 화두로 자리잡아

백봉 거사 첫 만남 후
올곧은 참선 30여년
“본래면목 바로 밝혀
참된 삶 살고 싶어”


당대 재가 선지식으로 추앙받던 백봉 김기추 거사가 대중들에게 물었다. “여기 백합꽃이 있는데 무슨 색깔인가?”

눈에 보이는 색이야 누구인들 모를 것인가. 그러나 대중들은 침묵했다. “무색(無色) 비색(非色)이야.” 대중 속에 섞여 있던 대학 3학년 안경애 씨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비색’이란 단어는 생전 처음 듣는 것이었지만 그 소리는 단박에 그를 수행 정진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선법문 한마디에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여고시절의 안경애는 여느 여고생들과는 남다른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그 고민이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 그의 물음은 공간과 사물에 대한 이상 현상을 경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경남 여고로 등교하던 시절, 그날도 그는 학교에서 들려오는 행진곡 소리를 들으며 버스 정류장에서 학교로 향했다. 길을 걷는 도중 갑자기 행진곡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소란스런 말소리도, 버스 소리도 끊어졌다. 시간이 정지된 듯 했다.

“그 때 순간적으로 소리는 정말 존재하며 내가 듣는 소리를 타인도 똑같이 인지하고 있는 것인가. 혹 ‘무엇’이 있는데 거짓 소리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일었습니다.”

어느 날 육교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육교와 주위 사람이 모두 사라졌다. 적막과 공포, 편안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듯 했다.

“저는 공간이란 원래부터 있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경험을 하고 난 후에는 공간은 물체에 의해 생기는 것이라는 어렴풋한 추측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듣는 소리, 우리가 보는 사물 모두가 듣고 보이는 그대로가 실제인 것인가라는 생각을 갖게 됐고 그 속에 자리한 나는 누구이며 지금의 나가 실제 나 인가하는 강한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그의 이러한 의문은 화두와도 같았다. 그는 늘 이 의문 덩어리를 가슴에 품은 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교 3학년 봄, 그는 적록 색맹인 동생과 함께 마당에서 장미꽃을 보다가 색다른 경험하나를 더하게 되었다. “저 빨간 장미꽃 좀 봐. 너무 예쁘지?” “빨간 장미꽃이 어디 있는데?” 동생은 빨간 장미꽃을 눈앞에 두고도 두리번거렸다. 순간 그는 전기에 감전된 듯 했다. “동생의 눈에는 빨간 장미꽃이 아니구나. 내 눈에는 빨간색이지만 동생 눈에는 초록색이구나. 저 장미의 진정한 색은 무엇일까? 내가 듣고 보고 하는 이 실제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해 9월. 한 선배로부터 ‘도인’이 있으니 만나볼 의향이 있느냐고 물어와 보림사로 향했다. 그 때 백봉 거사는 ‘무색’ ‘비색’ 법문을 한 것이다. 그의 작은 의문 하나가 순간 풀린 것이다.

“여기서라면 제가 여고시절부터 가졌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풀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제 가슴이 벅차올랐던 것은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내가 품은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공부하는 사람이 있구나, 아, 이것도 공부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는 그날부터 백봉 거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정진해 갔다. 결혼과 함께 그는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 시어머니, 그리고 삼촌과 고모까지 돌보며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여자로서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가 한 순간도 놓지 않았던 것은 바로 수행과 예불이었다. 그는 백봉 거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무’자나 ‘이뭣고’등의 일반적인 화두 대신 다른 화두를 들었다.

“무자 화두를 해보라 하셨지만 저는 스승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여고시절부터 제 가슴 속에 자리한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을 화두로 들겠다고 하자 허락해 주셨습니다.”

처음 ‘시집살이’할 때는 가부좌 틀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지만 화두만은 놓지 않았다. 아침 예불로 하루를 시작하며 ‘본래면목을 밝혀 견성 성도해 회향하겠다’는 서원을 하며 혹이나 나태해지려는 마음자세를 잡아갔다.

“허망한 나가 틈만 나면 불필요한 경계에 쏠려 주인 행세를 하려 하는 제 자신을 다잡아 갔습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좌선에 들지 않았지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수행 도중 다양한 경계를 체험했다. 그럴 때 마다 그는 백봉 거사를 찾아가 점검을 받고 정진의 깊이를 더해 갔다. 그는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일상에서의 간화선 수행은 어렵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변명이라는 것이다.

“수행과 일상을 분리해 생각하는데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수행은 내가 설거지를 할 때나,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도 할 수 있습니다. 화두란 좌선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실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렵다고만 하는 것입니다.”

그는 수행을 하는데 있어 분명하게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 첫 번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 공부는 무엇이며, 왜 내가 하는 것인지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견을 세우지 않고 수행에 임하면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그저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는 안 됩니다.”

그는 정견을 세우는데 있어서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스승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스님이든 재가자든 대중을 이끌고자 하는 선각자들이 명쾌하게 지도를 해줘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대중들은 ‘불교는 어렵다’는 통념에 파묻혀 헛고생만 하게 됩니다. 결국 자신이 정견을 세워야 하지만 그 길에 들어서게 해 주는 역할은 선지식들의 몫이 아닙니까?”

경기도 산본에서 수행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일심행 안경애 보살(51세). 그는 백봉 거사의 가르침에 대한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진의 끈 놓지 않는다는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본래 나의 실체를 밝혀 참된 삶을 살고 싶다”는 그에게서 간화선이 대중 일상에 얼마나 깊이 파고들 수 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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