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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항마인을 보이신 까닭은

기자명 법보신문
‘마군 박멸’대신 항복 받으신 것은
‘절대선’주장이 곧 마군임을 의미


불교가 한국인으로 하여금 좋은 사회생활을 하도록 기여할 부문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한국인이 사회생활의 오랜 나쁜 습관으로 인하여 생긴 공동업장을 녹이게 하는 길을 불교가 가르쳐야 한다. 현재 한국인들의 일반적 생활감정이 너무 격정적이다. 선명하고 화끈해서 좋다고 할는지 모르나, 격정은 개인들의 주관적 감정의 거친 표출방식이지, 우리를 모두 화락케 하는 아름다운 사회심과는 너무 멀다. 우아한 사회심이 좋은 공동업을 짓게 하고 우리를 복락으로 이끈다. 남의 입장과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원색적 감정은 모두에게 결국 괴로운 지옥이 된다.

나는 우리나라가 좋은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좋은 사회는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화락케 하고 화합케 한다. 불행히도 지금 우리 사회는 화락하지 못하다. 좌우, 노사, 노소, 남녀, 지역간, 사회계급간, 생태환경과 국부증진, 서울과 지방 등 사회의 모든 면에서 첨예한 갈등의 골이 점점 깊이 파져가는 현상을 목도한다. 어떤 갈등도 없는 낭만적 사회는 이 세상에 없다. 세상은 중생들이 사는 곳이므로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 갈등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방편상 차이가 아니고, 빙탄불상용처럼 적대감정으로 치닫고 있다. 나는 학술회의에서 의견 대립이 감정 대립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다. 하버마스라는 독일철학자는 이성적 토론 대화의 합일 가능성을 강조했으나, 나는 그것이 한국에서는 하나의 공상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공개적인 TV에서의 의견 대립은 자존심의 예각구조를 더 뚜렷이 하는 것으로 보여 차후의 이견 조정도 더 어렵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런 TV프로 보다 오히려 아름다운 화음의 합창 시간이 사회적으로 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불교는 적대적인 격정의 감정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중생의 생각은 다 편파적이고 부분적이라서 어느 의견이 전적으로 옳을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성이 중생사회에선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 다양성이 한마음의 화합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다극적 적대감으로 나아가는 사회는 이미 병이 고황에 깊이 들었음을 보여준다. 적개심으로 응어리진 사회는 독기를 띤 공동업보의 쓰나미를 지어서 다시 우리를 덮치게 할 수 있다. 나는 그 적개심의 업보가 두렵다. 조선조를 관통하던 적개심의 공동업에서 우리가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지금의 한국은 해방직후의 한국과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발전했다. 우리나라가 더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하여 이제부터 우리는 우리의 공동업을 바꾸자. 우리는 너무 끝장을 보려는 생각을 그만두자. 내 생각이 완승을 하려는 자세를 버리자.

부처님의 항마인을 생각하자. 인간중에 오직 부처만이 항마인을 할 수 있다. 보통 중생들은 불가능하다. 부처님도 마군의 항복을 받으신 것이지, 마군을 완전히 박멸하신 것은 아니다. 우리 중생들의 생각이 아무리 좋아도 그 이면에 나쁜 것이 숨어 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어쩔 수 없는 실상이다. 이것을 절실히 알 때, 중생상을 벗어나겠다. 내 생각이 진선진미하다고 여기는 그 순간에, 이미 마군의 속삭임이 그의 속마음에 깃들어 있다. 내 생각에 결점이 있기에 다른 이견이 생기는 것으로 읽자. 다름을 적대적으로 보면, 같음도 타락하여 패거리의식이 된다. 적과 패거리가 판을 치면, 살기 위해 자꾸 사람들은 패거리를 만든다. 다양성은 사회생활이 늘 편파적이고 부분적인 중생의 것이기에 생긴다. 중생이 사회문제를 100% 해결하지 못한다. 내가 100%가 아니라고 생각하자. 중생이면서 항마하신 부처님처럼 행사하면, 그 중생의 생각이 절대자가 되어서 세상을 괴롭힌다. 중생이 절대자인 것처럼 행세하면, 그것이 곧 전제(專制) 아닌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철학과 교수
kihyhy@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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