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 안내는 선근 [br]이 땅에 심으며 정진

기자명 법보신문

위파사나 수행 묘원 곽 준 거사

창 밖의 세계는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다. 그저 앉아 있기만 해도 법열이 샘솟는 듯 했다. 미얀마 마하시 선원 묵언실. 우리 선가와 굳이 비교하자면 무문관과 다름 아니다. 밖의 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자그마한 창 뿐.

<사진설명>잠시 선정에 든 묘원 거사. 그는 미얀마 수행의 양대산맥이라 불리는 마하시- 쉐우민 선원서 4년씩 8년을 수행했다.

묘원 곽준(60세)거사는 그곳에서 지난 50년 생애 동안 단 한번도 맛보지 못했던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운송업을 하면서 많은 돈도 취해보았지만 이런 느낌은 없었다. 대한 씨름협회 총무이사, 국립극장 예술진흥회 이사를 역임하며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쳐 보인 인생이었지만 이런 자유는 얻어 본 적이 없었다. 차창 밖의 나뭇가지에 이는 바람 한 점도 눈에 보이는 듯했고, 그 바람은 그의 온몸을 휩싸며 청량함으로 다가왔다. “이게 수행의 법력이구나!” 곧 무엇인가를 얻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무엇인가를 얻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 순간, 그는 법력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1996년 6월께 미얀마 구도행을 떠났던 그가 7개월만에 묵언실 정진의 용기를 낸 것은 다름 아닌 ‘욕심’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음을 몇 년 후에나 알 수 있었다.

수행하다 죽은 사람 없다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곽준 거사는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혔다. 그는 당초 천주교 신자였다. 그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절대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가 사유한 절대라는 것은 어떤 조물주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섭리’ 또는 ‘질서’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즉 어떤 절대자에 의해 이 세상, 우주 삼라만상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연한 섭리나 질서에 의해 돌고 도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호기심은 수행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불교도 공부해 보았으나 만만치 않았다.

“일단 개념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옥편에서도 찾기 힘든 한자를 애써 찾아 알았다 한 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란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교리 자체도 이해하기 어려웠으니 수행까지는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불교 수행에 입문하지 못한 그는 아봐타나 마인드 컨트롤, 밀교 등의 수행까지 해 보았으나 나름대로의 문제점만 보였을 뿐 그 어떤 증득도 이루지 못했다. 그런 어느 날 한 초상집에 조문을 갔다. 그런데 조문객 중 한 여자가 시신 옆에서 명상을 하고 있지 않는가. 묘원 거사도 그 여자 옆에 앉아 명상에 잠겼다. 아니 정확히 명상이라기 보다 그가 경험해 온 수행 방편 중 하나를 취했다. 명상을 끝낸 그 여자가 그에게 한마디 던졌다.

“거사님은 명상을 하시면 너무 잘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이후 거해 스님과 인연이 맺어졌다. 거해 스님으로부터 위파사나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그는 이 한마디에 눈이 번쩍 뜨였다. “위파사나는 부처님이 행하신 수행법입니다.”

부처님이 행한 수행법이라는 한마디에 그는 원력을 세웠다. “미얀마로 한 번 가 보자!” 그의 미얀마 행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마하시 선원에 들어온 지 55일쯤 되었을 때 우 자띨라 사야도와의 점검 시간에 그는 당당히 말했다. “호흡이 일어나고 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상도 알았습니다.” 그러자 우 자띨라 스님이 한마디 던졌다. “그것은 세간의 지식일 뿐이다. 이제 여기에 머물러 있으니 출세간의 법을 보아라.” 순간 얼굴이 화근거렸다. 대승의 나라에서 온 자신, 각종 수행 경험이 있다고 확신하며 자신감에 차 있던 그는 소승의 한 선지식으로부터 인가를 받겠다는 욕심이 앞섰음을 누구보다 자신이 알았기 때문이다.

“두 달 남짓 수행해 보고 ‘무상’을 보았다 하니 얼마나 어처구 없는 행태입니까? 타인으로부터 인정 받고 싶다는 탐심이 앞섰던 겁니다.”

그는 참회하고 다시 정진해 갔다. 그러나 또다시 자신의 점검 시간에 듣지 말아야 할 말을 굳이 청해 듣고야 말았다. 우 자띨라 사야도와 통역인이 자신을 두고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그 통역인이 말을 해 주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사정해도 통역인은 묵묵부답. 그러나 그의 집념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우 자띨라 사야도가 말씀하신 한 마디를 전해 들었다.
“3일만 잘 하면 괜찮겠다.”

이 말을 전해들은 그는 그 즉시 용맹정진(?)했다. 한마디로 과도한 정진을 한 것이다. 상기된 채로 지속하다가는 고국땅도 밟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 때 거해 스님으로부터 들은 한마디가 생각났다.

“수행하다 죽은 사람 없다. 수행하다 죽는 다면 더 없는 영광이다.”

그는 거문고의 줄을 고르듯 강도를 조절해 가며 다시 정진해 갔다. 그러자 그 상기도 곧 가라앉았다. 상기병이 가라앉자 그는 다시 더 큰 원력을 세웠다. “여기서 끝내자. 한국에 가면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를 일인데 여기서 끝내자.” 그는 묵언실 수행을 자청했다. 우 자띨라 사야도의 만류도 있었지만 그는 기어코 입실했다.

묵언실에서 무엇인가 얻을 것만 같은 생각이 뇌리에 스치자 수행중에 별의별 망상이 다 일었다. “나는 곧 아라한과를 얻을 것이다. 김포공항에 ‘아라한과 얻은 대 스승’이라는 현수막도 걸릴 것이다. 내 법을 들으려 대중이 운집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묵언실 3개월 수행 중 얻은 것은 냉병뿐이었다. 결국 그는 병 하나를 더 얻어 귀국했다.

“참다운 원력이 아닌 탐심이었을 뿐입니다. ‘아라한과는 있지만 아라한과를 얻은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라한과란 굳이 말로 하자면 정신세계입니다. 그 경지에 잠시라도 들어갈 수 있는가? 또 그 경지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라한과를 얻어 세속적인 영광을 얻겠다는 생각에 휘말려 있었으니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인지...”

그러나 그의 첫 미얀마 수행 10개월은 그의 수행정진에 큰 토대가 되었다. 수행 중 범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일찍 경험한 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큰 힘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 새 원력을 세워 미얀마로 향했다. 그의 마하시 선원 수행은 4년간 지속됐다. 뿐만 아니라 쉐우민 선원에서도 4년간 수행하며 정진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미얀마 수행의 양대 산맥이라 일컬어지는 마하시와 쉐우민 선원서 정진하며 자신을 재정립해 갔고 신수심법 수행의 면모를 하나씩 체득해 갔다. 특히 모기 등 각종 벌레와도 한판 승부를 벌여가며 수행해야 하는 쉐우민 선원에서의 수행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그 어떤 환경조건도 그의 정진력을 꺾을 수는 없었다.

“힘겹다 싶을 때는 윤회를 떠올렸습니다. ‘지금 수행해야 한다. 이생에서 성과가 없다면 다음 생에 지속해 가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순간 하지 않는다면 다음 생에 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윤회를 떠올리니 죽음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죽음이란 것도 그저 담담하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마음보기 4단계’ 체계화

올해 위파사나 수행 10년을 맞는 그는 지금도 매년 12월이 되면 미얀마 선원에서 정진하고 돌아온다. 현재 ‘한국위빠사나 선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도반들과 함께 정진의 깊이를 더해가는 한편 그가 경험하고 체계화한 위파사나 수행을 나눠주고 있다. 특히 신수심법의 각 체계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 대중들의 호응도 매우 높다. 특히 보통의 위파사나 수행인들과는 달리 ‘마음보기’를 강조하고 있어 이채롭다. 그는 있는 마음을 보고, 일어난 마음을 보고, 일어나려는 마음을 보고, 그 아는 것(보고 있는 것)을 아는 마음을 보아야 한다는 4단계 마음 보기를 체계화 해 전하고 있다.

“우리는 화를 냅니다. 처음에는 지금 화를 내고 있는지를 보고, 이어서 화가 일어나고 있는 그 때를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합니다. 다음에는 이 화가 어디로 가려는지 즉 내 마음이 어디로 가려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 이후의 마음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화는 가라앉고 평온해 집니다. 이러한 수행을 지속하면 궁극에는 화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화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지 않는 삶. 그것은 자비로 충만된 사람이 아니고는 그 길을 걷기 어려울 것이다. 위파사나 수행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며 자비충만을 유지 하려는 묘원 곽준 거사. 그는 지금도 그의 도반들과 함께 부처님이 걸었던 그 길을 걷고 있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