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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파사나 수행 조계향 씨 상

기자명 법보신문
권태-번민 밑바탕서 수행 시작
경행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 발견


아주 어렸을 적 나는 늘 생각했었다. 난 누구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이 세상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으며 저 해와 달과 별들이 무엇 때문에 빛나는지를…

또 한때 나는 이 세상에 가짜는 없고 다 진짜만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거짓말이나 농담은 잘 하지 못하는 고지식하고 진지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1980년 어느 날, 내게 일어난 두 가지 일은 내 삶을 바꾸어 놓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하나는 광주사태 혹은 광주항쟁이라 불리는 역사적인 일을 겪었을 때와 또 한 번은 어느날 한 아주머니가 파 한 뿌리 무 한 개를 들고 가는 평범한 모습에서 받았던 초라한 인간상과 삶의 비애였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우리 가족은 어찌 살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런 가운데 외숙모를 따라 잠깐 절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스님이 나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다.

“여러 분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원이 하나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원 안에 있어도 매를 맞을 것이요, 원 밖에 있어도 매를 맞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매를 피할 수 있을까요?”

“줄을 밟고 서 있는다” “공중에 떠 있는다” 등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스님은 고개만 흔들 뿐이었다. 그때 나는 “원을 지워버리면 안팎의 구별이 없어진다”고 답했다. 스님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나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오히려 대학 때는 증산도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얼마 지나면서 시들해졌다. 나는 더 깊은 권태와 번민의 나락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정말 모든 면에서 최악의 상황이었고 정신적으로도 공황상태였다. 바닷물은 내 눈물 같았고, 바람은 내 한숨인양 싶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억눌린 나는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위파사나가 내게 빛처럼 다가온 것은 3년 전 그 무렵이었다. 누군가의 소개로 압구정동의 보리수선원을 알게 됐고, 얼마 후 나는 일주일 과정의 초보자과정을 신청했다. 위파사나는 번뇌와 상념의 무성한 잎사귀에 묻혀 있던 단순함을 발견토록 했다. 좌선과 경행이라는 가장 단순한 행위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울이되어 주었다.

발바닥에 와 닿는 딱딱함, 부드러움, 미끈함 ,묵직함, 열기를 관찰하는 사이 머리끝까지 날뛰던 팔만사천의 번뇌가 발밑에서 스러져 갔고, 날숨과 들숨을 지켜보면서 인연 따라 변해가는 세상의 원리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두터운 업장 때문일까. 초보자수행 때의 강한 체험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한동안 세간의 욕망에 이끌려 떠돌았다. 이상한 것은 그런 와중에도 내게 처음 위파사나를 지도해 준 붓다락키타 스님의 가사자락이 눈앞에서 아른거리고는 했다. 여름집중수행에 나는 다시 참가했다. 그러나 처음과는 달리 온몸이 근질거리고 몸이 뒤틀리는 듯 했다. 결국 나는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포기는 나에게 더 큰 절망을 안겨주었다. 이 수행마저 포기한다면 내게 삶은 더 이상 의미를 찾기 힘들 것이라는 위기감이 나를 엄습했다. 몇 개월 후 나는 ‘내 자신의 벽을 뛰어넘겠다’는 굳은 각오로 동안거에 참여했고 그것은 새로운 내 삶의 시작이기도 했다.


신나는 독서학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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