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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죽어가는 사람의 일곱 번째 반응 : 희망

기자명 법보신문

밝은 모습으로 죽을 수 있도록 준비를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많다. 임종환자 B씨는 항상 우울한 표정으로 미간에 주름살을 짓고 있기에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아무런 희망이 없잖아요. 어떻게 해서든지 살고 싶다. 정말 죽고 싶지 않다. 죽으면 모든 것이 정지하고 끝나는 것인데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병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없어서 우울하고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므로 마음이 답답해진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보여주는 마지막 모습은 크게 달랐다. 대다수 사람들이 죽음을 편안히 수용하지 못하는 것도 죽음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섣부르게 단정해 절망하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희망을 굳게 지키는 사람은 죽음을 순순히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인생이라는 길이 너무 막막하고 허무하다고 한다면 인생의 여행은 그 목적을 잃게 된다. 그것은 상상에 불과할지라도 두려운 광경이다. 죽음도 마찬가지로 허무하기만 하다면…. 그러나 죽음에 의미가 있다면, 다시 말해 죽음 저편에 여행길의 본래 목적지가 있다면, 고통이 많은 인생길에도 깊은 의미가 있게 된다. 결국 영원한 생명이란 미래와 관련된 문제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인생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사후에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혹은 죽음이 끝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삶의 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후에도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란 지금 수준의 과학으로는 확실히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역시 여전히 가능하지 않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의 안목으로 구성해낸 지식체계이고, 죽음은 살아있는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죽음에 대한 접근이 원래 불가능하다. 따라서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문제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죽음현상에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실, 죽음을 연구하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일반인의 경우 이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죽음 이후를 직접 체험하게 할 수 없으므로, 어떠한 논증 혹은 설득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코끼리를 직접 만져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이면, 직접 만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이긴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는 것처럼, 죽음이 끝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도 접합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죽으면 아무것도 없는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죽는 마지막 순간 절망에 빠지기 십상이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자살예방교육> 강의를 수강하는 어느 대학생은 레포트에 다음 같은 이야기를 썼다. 중학생 때 친구가 매 일마다 살기 싫다, 죽고 싶다고 말하더니 어느 날 위암으로 죽더라는 것이다. 삶이든 죽음이든 부정적으로 생각해 절망하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살다가 죽기 마련이지만, 긍정적으로 밝게 생각하는 사람은 죽는 순간마저도 밝은 희망을 지니고서 죽게 된다.

그렇다면 희망을 지니고서 밝은 모습으로 죽는 것과 어두운 표정으로 절망하면서 죽는 것, 어떤 죽음의 방식이 보다 인간적인지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이 희망인지, 절망인지, 끝인지, 끝이 아닌지 확신을 지니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될 수 있다. 삶을 밝게 사는 것과 삶을 어둡게 사는 것 가운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 누구나 알 수 있으므로, 충분히 이해가 되지는 않더라도, 가능한 한 밝은 모습으로 죽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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