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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줏돈 함부로 쓰면 죄짓는 것” - 동산 스님〈하〉

기자명 법보신문
희한한 한약 된장국 대중공양

1962년 겨울 어느 날 이른 아침 부산 범어사 청풍당에서는 때 아닌 된장국 소동이 일어났다. 아침 공양에 모든 대중들이 함께 먹는 된장국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된장국 맛이 왜 이 모양이지?”
“글쎄 말이야. 된장국에서 웬 한약냄새가 나는 거지?”
“가만 가만. 이거 된장국 안에 한약이 들어 있잖아? 자 보라구. 이건 감초, 이건 당귀, 아이구 이거 된장국에 시레기 대신 한약 찌꺼기가 들어갔잖아?!”아침공양을 막 시작하려던 대중들 사이에 큰 소란이 일어났다. 된장국에 시레기는 들어있지 않고 한약찌꺼기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이봐 갱두, 자네 어떻게 된 거야? 조실 스님 아시면 자네 쫓겨나게 생겼네”
사찰에서 국 끓이는 소임을 맡은 사람을 갱두라고 부르는데, 된장국을 이 지경으로 잘못 끓여놓았으니 갱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마침내 조실 스님이신 동산 스님이 이 된장국 소등을 알게 되었다.

“대체 어찌된 일인지 소상히 말해 보아라.”
“예 스님. 된장국에 한약찌꺼기가 잘못 들어가서 그렇습니다.”
“된장국에 어찌해서 한약찌꺼기가 들어갔더란 말이냐?”
“예, 간밤에 조실 스님 약은 짜 올리고, 그 한약찌꺼기 덩어리를 재탕 때 쓰려고 시렁에 올려놓았는데 오늘 새벽, 그 덩어리를 시레기 덩이인줄 잘못 알고 갱두가 된장국에 풀어 끓인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들으신 동산 스님은 잠시 말씀이 없으셨다. 어두컴컴한 공양간 안에서 이른 새벽에 잘 보이지도 않으니 한약찌꺼기 덩어리를 시레기 덩이로 잘못 알고 된장국에 풀어 넣었다! 사건의 진상은 바로 그것이었다. 갱두는 오돌오돌 떨고 있었고, 모든 대중들은 조실 스님의 불호령이 금방 떨어질 것이라 숨도 제대로 못 쉰 채 긴장해 있었다.
“여러 대중들은 잘 들어라!”

드디어 조실 스님이 불호령을 내리기 시작 하셨다. 그런데 목소리가 뜻밖에도 따뜻했다.
“그동안 내가 먹을 것이 생기면 무엇이든 빼놓지 아니하고 대중공양을 시켜왔는데, 이 한약만은 여러 대중들과 나누어 먹지 아니하고 나 혼자만 먹어 왔다. 그래서 그 잘못을 깨우쳐주시려고 부처님께서 오늘 아침 한약 된장국을 끓이게 하신 게야. 자 그러니 우리 모두 오늘 아침에는 이 한약 된장국으로 대중공양을 하도록 하자. 다들 알겠느냐?”

이렇게 해서, 참으로 희한한 ‘한약 된장국’ 대중공양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이 호호탕탕한 동산 스님의 품안에서 누가 감복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네 재주가 무진장이로구나!”

1960년대 동산 스님이 범어사 조실로 계실 때의 일이었다. 하루는 동산 스님께서 제자 향운과 원명을 불러 먹을 갈도록 분부하셨다. 두 제자가 먹을 가는 모습을 지켜보시던 스님께서 한 말씀 하셨다.

“아 이 녀석들아. 먹은 그렇게 손에 힘을 줘서 가는 게 아니야. 먹을 갈 적에는 참새 힘으로 갈아야 하고, 글씨를 쓸 적에는 황소 힘으로 써야하는 것이야. 힘을 빼란 말이다.”
이날 동산 스님은 범어사 대웅전 기둥에 붙일 주련을 쓰셨다. 이날 동산 스님이 직접 쓰신 주련은 네 줄이었다.

摩訶大法王
無短亦無長
本來非白
隋處現靑黃
대법왕 부처님께서는
짧지도 길지도 않으시고
본래 검지도 희지도 않지만
곳에 따라 푸르고 푸른빛을 띠시네.

이 주련을 쓰신 뒤 곧바로 제자 혜명 수좌를 불러오게 했다.
“이 글씨를 판각하도록 해라.”

동산 스님은 제자 혜명에게 이렇게 분부를 내렸다. 혜명은 단 한번도 판각을 해본 경험이 없었지만 무서운 은사 스님 명령이라 군소리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연필 깎는 주머니칼 한 자루로 판각을 시작했다. 혜명 수좌의 손바닥은 온통 찢어지고 갈라지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혜명은 판각을 마치자마자 몸살이 나서 자리에 눕고 말았다. 그러나 이 때 혜명 수좌가 판각한 동산 스님의 주련글씨는 지금도 범어사 대웅전 주련으로 남아있을 만큼 판각솜씨 또한 뛰어났다.

동산 스님은 몸살이 나서 끙끙 앓고 있는 제자 혜명을 친히 찾으셔서 문병까지 했다. 그리고 손에 꼭 쥐고 있던 사탕을 제자에게 쥐어주며 따뜻하게 말했다.

“자 이거 사탕이다. 이거 먹으면 한결 나을 것이다. 어서 먹고 일어 나거라.”
“예 스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혜명이 너 재주가 참으로 무진장(無盡藏)이로구나. 응 허허허.”
동산 스님께서 제자 혜명의 재주를 크게 칭찬하셨다. 그래서 혜명은 ‘무진장’으로 바뀌게 되었고, 바로 그 ‘무진장 스님’이 오늘날 바른 소리만 하시는 대쪽 스님이시다.

“비싼 석유불로 죽을 끓이다니”

제자들은 차별 없이 지극히 사랑하셨고 제자들의 사소한 실수에는 한없이 너그럽고 자비로운 동산 스님이었지만, 그러나 수행자로서 지켜야할 근검절약에 어긋나면 여지없이 질타 하셨다. 한번은 부산시내에서 범어사까지 택시를 타고 온 제자를 목격하시고는 그 자리에서 불호령을 내리셨다.

“세상에 이런 못된 사람을 보았는가! 신도가 제아무리 택시를 잡아주어도 곧바로 내려서 걸어오던지, 버스를 타고 올 것이지, 멀고 먼 여기까지 택시를 타고 와? 시줏돈 그렇게 길바닥에 뿌리고 다니면 죄짓는 게야!”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동산 스님은 속이 불편하셨는지 시자에게 죽을 끓여 오라고 분부하셨다. 그런데 예상보다도 훨씬 빨리 시자가 죽을 끓여 올리는 것이었다.

“아니 웬 죽을 이렇게 빨리 끓여왔느냐?”
“예 스님, 석유곤로로 죽을 끓였더니 금방 되던데요.”
“뭐라구? 석유곤로라니?”
“예 스님. 고물상에서 헌 석유곤로를 하나 사왔는데 그걸 사용했습니다.”
“허허 이런, 절살림 망해먹을 녀석을 보았는가? 아 인석아, 그 비싼 석유를 사다가 그 석유불로 죽을 끓였단 말이냐? 엉?!”“잘못 했습니다 스님.”
“시줏돈 함부로 쓰면 큰 죄 짓는 게야! 나 오늘 죽 안 먹을테니 당장 나가라!”
동산 스님이 그토록 무섭게 알았던 시줏돈, 과연 오늘 제대로 소중하게 쓰이고 있을까…

윤청광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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