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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설선대법회 무 여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간절히 화두 들어라

범어사 설선대법회 일곱 번째 법회가 봉행됐다. 4월 16일 봄꽃 향기가 경내 곳곳에서 묻어나는 범어사 보제루를 비롯한 경내에는 4천여 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해 회를 거듭할수록 선수행에 대한 불자들의 높아지는 관심을 반영했다. 이날 법석의 설주 봉화 축서사 선원장 무여 스님은 ‘생사 문제와 선 수행’이라는 주제로 “생사를 초월하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삼매를 경험해야 하며 가장 빠른 방법이 바로 간화선”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또한 “한 가지 수행법을 갖고 매일 10분이라도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수행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이날 법문을 요약 개재한다. 편집자 주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심하는 것이 선의 시작이라 한다면 수행을 잘 해서 깨달음을 얻어 생사를 초탈자재하는 것은 선의 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저 허공에 떠도는 구름이 일었다 흩어지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몸은 지, 수, 화, 풍 사대가 일시적으로 계합해서 만들어진 것일 뿐입니다. 인연으로 생긴 것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맙니다. 그러기에 ‘제행무상 생자필멸’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생멸법입니다. 생멸법을 넘어 초탈자재한 사람이 되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삼매경지를 지나 언어도단 신행초멸, 말길이 끊기고 마음작용이 멸하는 그곳에 도달해야 참으로 생사를 초탈할 수 있습니다. 그 자리는 천하 사람의 혓바닥을 끊는 곳이며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칠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체득하면 초탈자재한 대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진설명>축서사 선원장 무여 스님은 법석에서 "죽음이란 낡은 옷을 갈아입는 것에 불과하다"며 생사를 초탈하려면 수행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주영미 기자


화두를 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간절함입니다. 그 간절함은 발심에서 나옵니다. 발심은 발보리심의 준말입니다. 보리, 즉 견성성불을 지금 해 마치겠다는 마음을 내어야만 합니다. ‘발심 있는 곳에 화두 있고 화두 있는 곳에 발심 있다’ 했습니다. 즉 발심만 하면 화두는 된다는 겁니다. 옛 선사들은 간절해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며칠 굶은 사람이 밥 생각 하듯이, 노파가 집 나간 아들을 생각하듯이 화두를 들라 했습니다. 이렇게 화두를 간절하게 들면 선악의 망상도 떠나게 되고, 해태와 방일도 있을 수 없으며, 무기에도 떨어지지 않고 의단독로가 생깁니다.

그래서 참선인은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화두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화두 이외에 어떤 것에도 관심과 흥미를 갖지 말고 오직 화두에 전력을 투구해야 합니다. 꿈을 꾸어도 화두참선 꿈을 꾸고, 망상을 피워도 화두 망상을 피워야 합니다. 또한 어떤 극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화두를 먼저 챙겨야 합니다. 가령 물에 빠졌을 때도 보통 사람 같으면 어떻게라도 나오려고 허우적거리겠지만 참선인은 화두가 있느냐 없느냐를 먼저 챙겨야 합니다.

선정도 오매일여의 선정에 들어야 합니다. 오매일여에 이르면 은산철벽이 가로막지만 그것도 뚫어야 합니다. 백척간두서 진일보 하듯이 더욱 지극히 애써서 화두를 들어야 생사를 해탈할 수 있습니다. 생사를 마음대로 하고 뛰어넘는다는 말은 우리 선가에서만 쓸 수 있는 대단한 말입니다. 불교의 이상은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 생사의 굴레서 벗어나 대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선사 중에서 최초로 신비한 모습으로 입적한 사람은 선종의 삼조 승찬 대사라고 합니다. 승찬 대사는 수많은 대중이 모인 가운데 법회를 열고는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큰 나무 밑에서 가서 합장을 하고 그대로 가셨습니다. 당나라 관개지안 선사는 낮에 점심공양을 드시고 시자하고 차 공양을 하면서 옛날 사람들의 임종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스님은 앉아서 가는 것도 얘기할 것이 없고, 서서 가는 것도 신기할 것 없으니, 어떻게 가는 것이 좋겠냐 하더니만 벌떡 일어나서는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세 발자국 일곱 발자국을 걷고는 그대로 서 계셨습니다 시자가 그만 앉으라고 하며 살펴보니 벌써 가셨다는 겁니다.

당나라 운봉 스님은 여러 스님들 하고 과거의 스님들 가신 모습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기는 특별하게 가고 싶다는 겁니다. 어떤 분이 물구나무서서 가는 것이 특별할 것이라 말하자 운봉 스님은 곧바로 일어서서 물구나무를 서고는 곧바로 가셨습니다. 신기한 것은 장삼을 입고 거꾸로 섰는데 장삼 자락이 조금도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습니다. 사람들 중 한 여승이 시신 앞에 가더니 “이 무슨 꼴입니까. 살아계실 때에도 그렇게 괴각질을 하더니 돌아가셔도 이 모양이냐”며 막 호통을 치면서 슬쩍 건드리니까 힘없이 옆으로 쓰러지더라는 겁니다. 그럴 정도로 생사를 마음대로 했습니다.

이런 죽음 앞에서 슬픔이란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죽음도 미학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임제 스님 당시 늘 요령을 흔들며 다녔던 보화 중자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요령을 흔들며 옷 한 벌 해달라는 색다른 요구를 대중들에 했습니다. 유명한 스님이고 칭찬이 자자했던 분이라 신도님들이 앞 다투며 옷을 해드렸으나 모두 거절하시는 겁니다. 이 소식을 든 임제 선사가 바로 관을 하나 짜서 보내니 “참 좋은 옷을 얻었다”며 춤을 추었습니다. 스님은 곧 동문에서 죽겠다며 동문으로 향했습니다. 동문 앞에 관을 놓고는 주위를 보니 대중들이 너무 많이 모여 있는 겁니다. 스님은 “오늘은 날짜가 안 좋으니 내일 서문에서 죽겠다”며 입적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서문에는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스님은 “날씨가 안 좋다”며 내일 다시 북문에서 죽겠다며 또 연기했습니다. 대중들은 불평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북문에 나온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스님은 그날도 안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남문에 가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드디어 스님은 손수 관 뚜껑을 열고 들어갔고 그 때 마침 지나가는 사람에게 못을 쳐달라고 부탁하고는 돌아가셨습니다. 그 얘기가 파다하게 퍼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누군가 관을 열어 보자며 관을 열었는데 스님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때 공중에서 ‘딸랑딸랑’ 요령 흔드는 소리가 나더라는 겁니다. 모두 그 공중을 쳐다보니 아주 큰 빛이 밝게 비추더니 사라졌다는 겁니다.

옛 선사들은 이처럼 생사문제를 아주 자유자재로 했습니다. 선가에서는 죽음을 옷 갈아입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옷을 입다가 낡아지면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이 몸뚱이도 늙고 병들면 새 몸으로 바꿀 뿐입니다. 그래서 옛 선사들은 “죽음은 오온의 껍데기를 벗어 버리는 것”이라 했고 조선시대 기화스님은 “부스럼 딱지를 없애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기 직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모든 존재하는 것은 무상하다. 지금 내가 건강한 몸이지만 무상하여 변하는 것을 면치 못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 속히 생사의 불구덩이해서 벗어나기를 구해라. 이것이 나의 최후의 가르침이다.”

평생을 수행해 온 선승들은 입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맞이합니다. 여러분도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나 열반의 기쁨을 꼭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부처라는 것을 확고히 믿고 간절하게 화두를 드십시오.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부산 지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무여 스님은

무여 스님은 1940년 경북 김천 출생으로 오대산 상원사에서 희섭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상원사, 동화사, 송광사, 해인사, 관음사, 칠불사, 망월사 등 전국 제방선원에서 40여 년 동안 안거 한 스님은 1987년 이후 지금까지 경북 봉화 축서사에 주석하며 불자들을 선문으로 이끌고 있다. 칠불사, 망월사 선원장을 역임한 스님은 현재 봉화 축서사 선원장과 조계종 기초선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질 의 응 답]



“지혜 밝히면 생사고통서 벗어나”

Q: 전통불교에서의 생사관과 선에서 바라보는 생사관이 어떻게 대비됩니까?

A: 전통 불교의 생사관은 12인연법을 말한다. 우리 선에서 보는 생사관이란 본성을 깨달아 반야지혜를 밝혀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2500여 년 전 부처님께서 깨치기 전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선정에서 12인연법을 관했다. 늙음과 죽음의 원인을 추궁하다가 태어남이 있는 까닭에 노사(老死)가 있고, 노병사의 근본원인은 바로 마음의 때로 인해 어두움, 즉 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무명을 없애기 위해 누구나 갖추고 있는 반야지혜로 생사를 해탈하는 것이 부처님이 깨달은 방법이다.
그런데 선에서는 화두가 성성적적한 경지가 되고, 깊은 선정에 들어가 언어도단 신행초멸을 스스로 깨쳐서 반야지혜를 획득하고 무명을 근본적으로 타파한다. 그래서 선은 생사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인 방법이다.

Q: 어떻게 선 수행을 통해서 사회적 고통을 해결 할 수 있을지 고견을 들려주십시오.

A: 선 수행에서 생사관이 확립된다는 말은 실제 체험을 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인 고통은 탐, 진, 치 삼독심에서 온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과 전도된 생각들을 없애주고 고쳐주는 작업이다. 사람들이 하루 단 10분만이라도 수행을 하면 좀 살만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리라 믿는다. 인류가 참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선의 시대가 도래해야 한다. 불자들은 늘 수행하는 시간을 가지되 매일 자기를 점검하고, 반성하고, 결산해서 잘못을 분명하게 따져서 하루하루가 더 좋은 날이, 더 새로운 날이 되도록 애쓰기 바란다.

Q: 임종을 맞이해서 어떤 정념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A: 수년 전 돌아가신 내가 아는 한 스님은 오십에 출가해 20여 년간 나무아미타불만 불렀다. 열반 소식을 듣고 토굴을 찾아갔는데 장마철에 사흘이 지나도 시신이 전혀 변하질 않고 빙긋이 웃고 있었다.
추측하건데 염불이 잘 되서 아주 기분 좋은 상태에서 숨이 그치니까 웃는 상태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사람은 설사 못 깨치더라도 마지막 숨이 그치는 그 순간까지 어떻게 애쓰고 노력하는가가 중요하다. 화두를 하는 것이 가장 최상승이다. 그러나 화두가 어려운 분들은 염불이나 주력이라도 마지막까지 애쓰는 모습을 꼭 가지기 바란다.


“삼매 경험하면 자살 안 한다”

Q: 요즘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도된 가치관 속에서 재가불자들이 올곧게 정진하기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경제가 어렵지도 않은데 어렵다고 괴로워하는 자체가 병이다. 원인은 정신, 인간의 문제다. 요즘 사람들은 의지도 약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남을 배려할 줄도 모르고 참을성도 없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데 안타까운 일이다. 누구나 생명은 아주 중요하다는 외경사상을 가지고 남에게 봉사와 희생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생명을 죽이는 인을 심으면 내생에도 그 비슷한 인과를 받기가 쉽다. 수행을 잘해서 삼매의 경지, 즉 자신을 잊고 시공마저도 초월하는 묘한 희열만 느껴보면 자살하라고 해도 안할 것이다.

Q: 기도, 염불, 사경, 경전 공부 등으로 신행 생활을 해온 불자들이 어떻게 하면 참선을 즐길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A: 염불하고 기도하고 사경하고 경전을 읽는 신앙생활이 일반적인 재가불자들의 모습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신앙생활을 몇 년, 몇 십 년을 해도 진정한 체험을 못해 본 분들이 있다. 수행을 하려면 오직 한 방법으로 가야 된다. 참선하면 가장 좋고, 참선이 인연이 없으면 염불을 하거나 주력을 하더라도 오직 한 염불, 한 주력만 해라. 진정한 수행을 하려면 지금까지 방법을 몽땅 버리는 게 좋다. 진정한 수행이란 삼매의 경지는 꼭 체험을 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Q: 위파사나와 간화선의 비교를 부탁드립니다.

A: 위파사나 수행과 화두 수행은 다르다. 위파사나는 마음 챙김, 즉 알아차림의 수행이다. 예를 들어서 다리를 든다, 걸어간다, 그런 과정을 자상하게 알아 챙기는데 과정을 관찰하는 정도로는 산만하고 집중하기가 어렵다. 화두는 오직 의정을 일으켜야 된다. 의정이 일어나면 참으로 집중이 잘 되서 의외로 쉽게 바로 되는 것이 화두다. 화두선은 요즘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맞는 수행법이다. 근기가 하열한 사람일수록 기대고 의지할 곳이 있어야 한다. 기대고 의지할 만한 수행법이 바로 화두 참구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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