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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화재가 부처님 노여움?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5.05.11 15:00
  • 댓글 0
이 상 기
한국기자협회 회장

5월 첫날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를 찾았다. 오전 내내 꾸물꾸물하던 하늘은 오후에 들면서 맑게 개며 전형적인 봄 날씨를 보였다. 마침 전날 속초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주관의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던 터였는데, 이날 나도 모르게 절을 둘러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낙산사가 불에 타고, 불국사 등에서 일어난 불상사에 대해 부처님이 노하셨다는 일부의 비판과 우려를 확인하고 싶었던가 보다. 마음이 정해지자 그 길로 낙산사로 향했다.

낙산사는 첫 나들이여서 설렘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러나 국도 변에서 낙산사 쪽으로 들어서면서 숨이 탁 멈췄다. 술집, 모텔 등 유흥업소로 꽉 채워져 있는 게 아닌가! 20년 만에 찾은 통도사입구에서 똑같은 모습을 발견하곤 ‘앞으로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한 게 한 달 반 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일주문까지 호젓한 솔밭 길만 상상해온 내가 되레 무색하게 느껴졌다.

김정한 선생이 쓴 『사하촌』까지 떠올랐다. 일제하 핍박과 수탈을 당하며 살아야 했던 절 아랫동네 사람들 바로 그 얘기가 역설적으로 지금에 와 닿아 있음을 느끼다니! 괜히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느새 낙산사 입구까지 발을 옮기고 있었다.

가슴을 진정시키며 낙산사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화마로 모두 타버린 원통보전으로 가는 길엔 어느새 새파란 대나무 새순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바로 그 옆, 밑동이 20cm나 될까 말까 한 키 15m 가량의 이름 모를 활엽수는 진액을 잔뜩 토해내고 있었다. 뜨거운 불길을 견뎌내기 위한 몸부림이리라. 이 역시 가지마다 띄엄띄엄 여린 새잎을 내고 있었다.

40~50m 쯤 앞엔 다 타버린 원통보전과, 불길에 녹아내려 형체와 터마저도 찾아보기 힘든 동종 자리를 굽어보듯 7층 석탑이 화마를 면하고 우뚝 서있다. 바로 앞 보리수 역시 몇 개 나마 여린 새잎을 달고 있었다.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을 온몸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 아닌가! 어디 그 뿐인가, 이는 부처님의 보살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아닌가. 또 절이 터 잡은 오봉산 봉우리에 자리한 해수관세음보살과 홍련암에는 화마가 전혀 미치지 못했다. 강풍을 등에 업은 채 온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던 산불도 불심을 태우진 못했던 것이다. 절 입구에서 가졌던 실망의 마음은 내게 부끄러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피상에 빠져 뿌리를 놓친 이 어리석음이여!

해수관세음보살과 홍련암이 무사함은 바로 불은이라는 확신은 홍련암의 ‘관세음보살’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였다. 무설전, 근행당 등 21동의 건물과 30만평 사찰림 가운데 2/3가 불타는 가운데 아무 탈이 없었다는 사실은 세상의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 될 듯싶다.

기독교 모태신앙인 필자는 홍련암 암자에서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가피에 감사하며 낙산사 일대의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소생을 빌었다.

그때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홍련암의 건재는 부처님께서 분명히 존재하며 은혜를 내린다는 증거 아닌가.’ ‘낙산사 화재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회생은 생명의 고귀함과 위대함의 정수인데 이를 널리 알릴 방법은 없을까.’ 생각은 거기서 더 나아갔다. ‘전국의 불자들이 이곳을 성지 삼아 순례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독교 천주교 할 것 없이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불교도와의 교감은 불가능할 것인가.’

어느새 통도사와 낙산 입구에서 가졌던 당혹감과 실망은 부처님에 대한 경이감과 희망으로 변해 있었다. 여전히 인간세상을 사랑하시는 부처님 바로 그것이었다.

낙산사에 화재가 나고 열흘 새 서울과 중국에서 백담사 회주 오현 스님께 전화를 드렸을 때 스님의 답이 또 귀에 쟁쟁하다. “부처님이 계신데 뭐…, 다 부처님 뜻이요.” 아, 일체유심조인 것을 내 또 잊고 있었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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