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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의 칼로 무명초를 베어라!

기자명 법보신문

범어사 설선대법회 진 제 스님

5월 7일 범어사에서는 10대 선사초청 설선대법회의 회향법회가 봉행됐다. 이날 법회에는 10주간 수행에 대한 열정과 발심을 더한 사부대중 8천여 명이 참석해 회향을 함께했다. 회향법회 설주로 법좌에 오른 동화사 조실 진제 스님은 “선은 지혜의 보배칼을 연마해서 단칼에 무명의 풀을 베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법문에 이은 무차선회를 통해 “향상 일구의 관문을 통과하는 간화선 수행에 정진하라”고 강조했다.
스님의 법문을 요약 게재한다. 편집자 주


선(禪)은 지혜의 보배칼을 완성하여 단칼에 다생(多生)의 무명초(無明草)를 베어 없애는 것입니다. 옛 도인들이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의 빈한한 삶은 지혜가 짧음이요, 말이 야위면 털이 긺이로다” 하셨습니다. 나고 날 적마다 출세와 복락을 누리고자 한다면 지혜의 보배칼을 잘 연마해서 뭇 성인의 대열에 들어가 지혜의 보검을 잘 써야 합니다.
혜월 스님은 경허 선사로부터 법을 받기 전까지는 ‘혜명’이란 법명을 썼다고 합니다. 혜월 스님이 경허 선사를 참방하여 여쭙기를, “선사님, 저도 견성도인(見性道人)이 되고자 찾아왔습니다. 화두를 하나 내려 주십시오” 하니, 경허 선사가 말씀하셨습니다.

“허공이 법을 설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이 사대(四大) 몸뚱이 또한 법을 설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나니, 다만 눈앞에 뚜렷이 밝은 한 물건이 있어서 법을 설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나니, 그대는 이 목전(目前)의 고명(孤明)한 한 물건을 아는가?”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화두 삼아 잘 정진해서 알아오게.”

혜월 스님은 7년 동안 이 화두를 들고 오매불망 씨름하다가, 어느 날 짚신을 삼다 방망이로 신골을 치는 소리에 화두가 타파되었습니다. 곧장 경허 선사를 찾아가니, 경허 선사께서 마루에서 정진하시다가 당당하게 들어오는 혜월 스님의 모습을 보고는 즉시 물음을 던지셨습니다.

“어떤 것이 목전의 고명한 한 물건인고?”

“저만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모든 성인도 알지 못합니다.”

“어떤 것이 혜명인고?”

이에 혜월 스님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몇 걸음 걸어갔다가, 다시 서쪽에서 동쪽으로 몇 걸음 걸어가서 섰습니다.

“옳고, 옳다.”

경허 선사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며 혜명 스님에게 ‘혜월’이란 법호(法號)을 내리고 법을 부촉하셨습니다. 혜월 선사는 경허 선사로부터 인가 받은 후 남방으로 내려오시어 통도사, 선암사 등지에서 선법을 크게 선양하였습니다.

혜월 선사의 명성이 자자하자 신도들이 다투어 좋은 옷을 지어다가 선사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선사께서 그 옷을 입고 장에 나가시면, 거지들이 무심도인인 줄을 알고는 다가와서, “선사님, 그 옷을 저희에게 좀 주십시오” 하면 선사께서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입고 있던 옷을 먼저 벗어 주고 거지들의 옷을 받아 입고 오셨지요. 그래서 신도들이 옷을 지어 드리기가 바빴다고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행(行)입니다.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이 있고 ‘나’라는 상(相)이 있으면 이렇게 할 수 없는 법입니다. 바로 이러한 행을 천진(天眞) 영아의 행, 무심도인의 행이라고 합니다.

막위무심운시도(莫謂無心云是道)하라
무심유격일중관(無心有隔一重關)이로다.
무심이 진리의 극칙이라고 말하지 말라,
무심도 하나의 관문이 가리워져 있느니라.

부처님 출세 이후로 무수 도인이 나왔지만 재가자(在家者)로서 온 가족이 견성한 것은 방거사 일가족뿐입니다. 당시에 중국에는 위대한 마조 선사와 석두 선사가 쌍벽을 이루어 선법(禪法)을 크게 선양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방거사 일가족이 초가집 방에서 쉬던 차에 방거사가 누웠다가 앉으면서 한마디 던지기를, “어렵고 어려움이여! 높은 나무 위에 백 석이나 되는 기름을 펴는 것과 같구나” 하니 부인 보살이 받아서 말했습니다. “쉽고 쉬움이여! 일백 가지 풀끝에 불법의 진리 아님이 없구나.” 그러자 딸 영조가 전광석화(電光石火)과 같이 받아서 말했습니다. “어렵지도 아니하고 쉽지도 아니함이여! 곤한 즉은 잠자고 목마른 즉은 차를 마신다.” 방거사 일가족의 이 세 마디에 부처님의 49년 설법이 다 들어있습니다.

이 세 분의 답처를 아는 이가 있을 것 같으면 금일 산승이 이 주장자를 부치리라. 만약 산승이, 방거사 일가족이 고준한 법문을 한 마디씩 할 적에 동석했더라면 이 주장자로 각각 20방망이씩 때리리라. 만약 “방거사 일가족이 고준한 법문을 토해 냄으로써 무수한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의 눈을 열게 하였는데, 스님은 무슨 당처가 있어서 각각 20방망이씩 때린다고 하십니까?” 하고 묻는 이가 있으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이월한식청명후(二月寒食淸明後)에
녹수지상황앵제(綠樹枝上黃鶯啼)로다.
이월 한식 청명 후에
푸른 나뭇가지에는 노란 꾀꼬리가 아름답게 울고 있구나.

지금으로부터 한 80년 전입니다. 경기도 양주에 망월사라는 좋은 선방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삼십년 결사를 해 대오견성을 하자” 해서 전국에서 발심한 수좌 30여 명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용성 대선사를 조실로 모시고 석우 선사를 선덕으로, 운봉 선사를 입승으로 모시고 멋진 회상을 열어 정진을 잘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결제 중 반살림이 도래하여 조실이신 용성 대선사께서 법상에 올라 법문 하시기를, “나의 참모습은 삼세(三世)의 부처님도 보지 못함이요, 역대의 무수 도인들도 보지 못함이어니 여기 모인 모든 대중은 어느 곳에서 산승의 참모습을 보려는고?” 하니, 운봉 선사가 일어나서 “유리 독 속에 몸을 감췄습니다” 하고 멋진 답을 하셨습니다.

만약 산승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빗장 관자(關字) “관(關)”이라고 답했을 것입니다.

당시에 운봉 선사가 “유리 독 속에 몸을 감췄습니다”라고 답을 하자 조실이신 용성 대선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법상을 내려와 조실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여기에 모인 모든 대중들은 세 분의 답처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유리독 속에 몸을 감췄다’ 함은 어떤 뜻이며, 빗장 관자 ‘관’ 함은 어떤 뜻인가? 또 법상을 내려와 말없이 조실방으로 돌아간 것은 어떤 뜻인가? 만약 여기에서 이 세 가지 법문에 바른 답을 하면 산승에게 선의 진미의 문답을 용납하거니와 여기에 바른 답을 못하면 선의 법을 문답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하겠습니다.

왜 그렇겠는가? 사(邪)와 정(正)을 가리지 못하고 동과 정을 가리지 못하니 문답할 자격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세 마디에 바른 답을 하는 이가 있을 것 같으면 산승이 보고는 이 주장자를 전할 것이고 바른 답을 못하면 물을 자격이 없으니 물음을 허락하지 않겠다 그 말입니다. 여러분, 이 세 마디에 답할 자가 있거든 정면에 앉아서 해 보세요.

(두 명의 거사가 차례로 대답, 한 사람은 “스님을 따르겠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삼배 대신 한바퀴 구른 후 “보는 것이 전부 불법입니다”고 대답했으나 진제 스님은 적절한 답이 아니라고 일갈.)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금일 참여한 모든 대중께서는 이 세 가지에 답하는 이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면 산승이 만 천하에 저의 살림살이를 공개를 하겠습니다.

운봉 선사께서 유리독 속에 몸을 감췄다 하는 것은 도적의 몸이 드러났다 그 말입니다. 산승이 빗장 관자 관 하는 것은 수십 길이 되는 철판의 울을 중중으로 둘러놓은 것입니다. 중중으로 둘러놓으니 나는 새도 드나들기 어렵다 그 말입니다. 왜 이렇게 나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용성 대선사께서 말없이 법상을 내려가시는 것은 운봉 스님의 답을 척 아시고 법상을 내려가시는 그 모습은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가득 함이로다. 그러나 선지식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선지식입니다. 이런 선지식이 그 당시에 있었다는 것은 정말 고개를 숙이고 예배를 올리고 올립니다.

여러분도 정진의 끈을 놓지 말고 용맹스럽게 나아가 견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부산지사= 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진제 스님은

1931년 경남 남해에서 출생한 진제 스님은 1954년 석우 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후 1957년 통도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67년 향곡 선사로부터 한국 선불교의 법맥을 이어 받은 스님은 현재 조계종 원로의원이며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 부산 해운정사 조실을 맡고 있다.



질의응답


“팔만사천 번뇌가 팔만사천 지혜로 돌아와”

Q: 요즘 남방의 위파사나 같은 소승의 수행법이 많이 퍼져 있으나 대승 권에서는 예로부터 남방의 소승 수행법으로는 부처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정법이 간화선맥으로 이어져 내려왔다면 우리의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의 힘은 무엇입니까?

A: 위파사나는 무한한 세월이 흐른 다음에 설사 알았다 해도 법신의 진리와 여래선 진리의 눈이 열릴 수는 있지만 최고 향상의 일구 진리는 불가능하다. 모든 부처님과 도인께서 비밀히 전하는 향상의 일구는 활구참선, 간화선이라야 그 관문을 투과할 수 있다. 간화선이 지닌 깨달음의 열쇠는 일념삼매가 지속이 되는 과정에서 의심과 화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서 보고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앉아서 밤낮이 지나는지 모르고 일념이 지속되다가 홀연히 보는 찰나에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는 것이다. 의심이 크면 깨달음도 크다고 했다. 위파사나는 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하는 것이다. 미약해서는 대오 견성을 못한다.

Q: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에 대해서 옳고 그름, 높고 낮음을 논하지 마시고 어떻게 선수행에 도움이 되겠는지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A: 중국에서 육조 스님 이후로 삼가 오종 가풍이 형성되었는데 거기에는 돈오돈수 가풍을 제창했다. 그러나 몰록 깨달아서 돈오점수 가풍을 유포한 선지식의 종장은 없다. 바른 수행법은 일념삼매가 되어서 홀연히 대오견성이 되면 팔만사천 번뇌가 팔만사천 지혜로 돌아와 버린다. 팔만 사천 지혜로 돌아와 버리면 다시 제거할 것도 점수할 것도 없는 법이다.
돈오점수는 이제 몰록 깨달아서 또 습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차제가 있는 것은 견성법에 없다. 역대 명안의 도인 스님들도 돈오돈수를 제창했다. 점수를 주장한 스님은 오조 스님 당시에 신수, 육조 스님 당시에 화택, 200년 후의 고봉, 우리나라 근래 와서도 바른 정안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점수 사상을 많이 유포시켰다. 그것은 향상의 일구를 모르기 때문이다.




“생명은 호흡과 호흡사이에 있을 뿐”


Q: 화두를 들고 있는데 잘 때가 문제입니다. 잘 때 목침을 베고 그 때에 챙기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A: 참 의심의 발동이 걸리면,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일념이 흐르는 시냇물 같이 마음속에 흘러간다. 시냇물은 근원이 마르기 전에는 끊겼다가 쉬었다가 흐르지 않는다. 참 의심의 발동이 걸리면 그 때는 모든 분별이 마비가 되고 화두 한 생각만 흐르는 물과 같이 흘러간다. 자더라도 화두가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꿈을 꾸더라도 다른 꿈이 안 꾸어지고 아주 또록또록 챙기는 그 꿈만 흘러간다. 이러한 과정이 되려면 마음에 사무치는 참 의심이 발동이 걸릴 때야만 된다. 마음에 간절히 우러나는 일념이 지속되도록 무한한 정진에 몰두하기 바란다.

Q: 일년 전 화두를 받아 일주일간 정진한 후 지금은 매일 한 시간씩 정진에 임하면서 제가 어떻게 이 세상에 왔는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이렇게 공부를 하면 참 마음을 알 수 있는지 이러한 의심 속에서 모든 번뇌망상을 잊으려고 합니다. 저의 공부가 제대로 하는 것인지 또 어떻게 하면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지 묻고자 합니다.

A: 전생도 깜깜하고 내생도 깜깜하다. 생명은 호흡지간에 있는데 허망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과 모든 도인이 자기의 참 모습을 바로 볼 것 같으면 이집에서 저 집으로 이사 가는 것과 같이 멋지게 벗고 가는 자유로움을 갖춘다. 자유로움을 갖추고 최고의 향상 일구를 깨달아서 바른 정안을 갖춘 이는 홀연지간에 몸을 벗되 진리의 적적 고요한 삼매를 누린다. 적적삼매를 누리면 사바세계가 눈 깜짝 사이에 흘러간다. 그 적적삼매의 낙을 누리는 것이 부처님의 살림살이다. 일상생활 중에 간절히 화두가 흘러가는데 전력을 다해서 시절 인연이 다해 자신의 참모습이 홀연히 드러날 때 산승이 거짓말을 했는지 바른말을 했는지 확인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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