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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죽어가는 사람의 여덟 번째 반응 : 장자의 죽음

기자명 법보신문

삶 뒤에 죽음은 자연 닮은 흐름

‘마음 비우기’는 바로 장자(莊子) 사상의 핵심원리이다. 마음을 비운 그가 통찰한 삶과 죽음의 실상은 과연 어떠할까. 「지락」편에 흥미있는 일화가 실려 있다. 어느 날 장자의 아내가 죽자 혜시가 문상을 갔더니,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술동이를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시가 힐난했다. “아내와 함께 살면서 자식을 같이 키우다가 늙어서 마침내 죽게 되었으니 곡을 하지 않는 것이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술동이를 두드리면서까지 노래하는 짓은 좀 심하지 않은가?” 이에 장자는 답했다. “아내가 죽었을 당시에야 나라고 슬퍼하는 마음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 시원을 돌이켜보건대 본래 삶이란 없었다. 단지 삶만 없었을 뿐만 아니라 원래 아무런 형체도 없었지… 지금 또다시 변화가 일어나서 아내는 죽게 되었으니, 이는 춘하추동 사계절의 운행과 마찬가지이지. 아내는 지금 천지라는 커다란 방에 편안히 누워있거늘, 내가 구슬프게 우는 것은 명(命)에 통하지 못한 짓이란 생각이 들어 곡을 그친 것이다.”

인간의 삶은 본래 없었지만, 기가 변해서 형체가 생겨나고 형체가 변화해서 삶이 있게 되었고 또다시 이 삶이 변화를 일으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생사란 다름 아니라 기(氣)의 변화다. 기가 모여 삶이 있게 되지만 흩어지면 죽게 되므로, 우리의 삶에는 반드시 죽음이 따르게 되고 죽음은 삶의 시작이다. 장자는 「대종사」편에서 인간의 생사를 사계절의 운행과 같이 4단계로 나누어 제시한 바 있는데 우리는 인간의 생사를 춘하추동 사계절의 변화에 대비시킬 수 있다. 예컨대 자연은 나에게 형체를 실어주고(봄), 삶을 얻음에 일을 하게 되고(여름), 나이 들어 편안하게 지내고(가을), 마침내 늙어 죽음을 맞게 된다(겨울). 이와 같이 인간의 생사란 계절의 순환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므로, 가을이 겨울로 바뀌는 것처럼 죽음을 자연스럽게 당연한 자연의 변화로 수용하면 된다.

또한 우리의 삶이란 삶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죽음도 죽음만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겨울로부터 봄으로 이어져서 여름과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이 찾아오는 것처럼, 죽음으로부터 변화가 일어나 삶이 있게 되고 삶이 또다시 변해서 죽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태어난 것은 이처럼 죽음으로부터 변화되어 나온 것일 뿐만 아니라 다시 죽음에로 돌아가게 된다. 사계절의 순환이 이어지듯, 인간의 삶도 죽음으로 이어지고 죽음은 다시 삶에로 연계되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 아닐 수 없다.

장자는 자신의 임종에 직면해서 제자들이 후하게 장례를 지내려하자, “나는 천지를 관곽(棺槨)으로 삼고 일월을 한 쌍의 옥으로 삼고 만물을 예물로 간주하기에 내 장례식에는 이처럼 갖추어졌거늘 무엇을 덧붙이려하느냐!”고 일갈했다. 제자들이 그렇게 장례를 지내면 짐승들이 시신을 파먹을까 걱정된다고 말하자 장자는 “땅위에 두면 까마귀나 소리개의 먹이가 되고 땅속에 묻히면 땅강아지나 개미의 밥이 된다”고 답했다 인간의 죽음을 이처럼 철두철미하게 자연의 변화로 이해하는 장자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 추호의 간격도 인정하지 않으므로,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육신이 죽음을 당할 경우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자연에로 되돌려 주는 것이 당연한 처사라는 것. 그러기에 자신의 장례를 올릴 때 장자는 산천초목과 더불어 자연의 품에서 안식을 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제물론」편의 여희처럼 삶을 기뻐하는 것이 미혹인 줄 모르고 죽음을 싫어하는 게 어려서 고향을 떠난 채 돌아갈 길을 잃음인지 모른다. 생사를 한사코 둘로 나누어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꺼려하는 식으로 삶에만 치우친 감정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해치게 된다. 그러나 장자는 죽음이란 자연의 어쩔 수 없는 흐름에 임해 마음을 철저하게 비움으로써 삶과 죽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장자처럼 자연의 변화에 편안히 자신의 존재를 의탁하는 것은 운명론이나 숙명론은 결코 아니다. 자연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아 마음을 비우고 변화에 편안히 의탁하는 안명론(安命論)이자 달명론(達命論)이다. 특히 죽음 문제의 경우, 짧은 소견으로 헤아리기보다 마음을 비우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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