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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죽어가는 사람의 여덟 번째 반응 :소크라테스의 죽음

기자명 법보신문

고난의 가시밭길에서 벗어나는 계기

죽음에 대한 이해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현세 중심의 인생관을 통해 죽음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고, 내세 중심으로 생각함으로써 현세의 삶을 경시하는 사람도 있다. 서양철학의 출발점, 소크라테스는 극단적인 두 가지 해법을 모두 거부한다. 그는 내세 혹은 현세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생사관을 제시해 현세의 삶을 절대시하지도 않았고 죽음을 무시하지도 않았다.
『변론』에 자세하게 제시되어있는 그의 죽음은 서양철학의 창시자답게 철학적이다. 어떤 종교를 믿더라도, 막상 죽음에 직면하면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죽어가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철학적인 삶을 살아왔던 소크라테스는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때까지 살아왔던 철학적인 삶을 포기하고 삶을 구걸하는 치욕이나 불명예를 당하기보다 자신의 철학을 지킴으로써 죽음의 길을 택한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철학적으로 산다는 것은 세속적인 재물이나 권력, 출세 혹은 명예의 추구가 아니라 진리나 지혜, 영혼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세속적인 삶의 방식은 불완전한 영혼의 상태에서 사는 것이다. 잠자고 있는 영혼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지 못한다. 철학이란 잠자고 있는 영혼을 깨워 무지를 자각하게 하여 스스로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혜로운 듯이 생각하는 어리석음 그 자체이다. 자신이 죽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인간에게 올 수 있는 축복 가운데 가장 큰 것인지 아닌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죽음이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인 것처럼 두려워한다. 이는 알지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비난받을 만하다.”

죽음은 그가 평생 논의해온 정의, 덕, 선, 아름다움 등의 주제처럼 인간으로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죽음은 절망 혹은 두려움 자체라고 간주한다. 죽음이 축복인지, 절망인지 우리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느껴 절망한다는 것은 무지를 자각하는 철학적 삶의 포기를 뜻한다. 그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죽음에 임해 담담하게 죽을 수 있었던 것은, 죽음에 대해 자기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무지를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주 인용했던 희랍 델포이 신전의 경구, ‘너 자신을 알라’는 인간의 앎이 보잘 것 없음, 우리가 제대로 아는 것이 없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뜻이다.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그런 삶은 편안하고 안정된 축복받은 삶으로 여겨진다. 자신의 무지를 철저히 자각한 소크라테스는 안락하고 편안한 삶 대신 고난의 가시밭길을 선택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아는 지식의 보잘 것 없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고난의 가시밭길을 스스로 걸어가는 사람에게 죽음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지금 죽어서 온갖 수고로움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이 최선임을 명확히 알고 있다”고 말했던 소크라테스는 담담하게 여행을 떠났다. 삶의 길이 가시밭길이었기에 죽음은 그에게 오히려 쉽고도 편한 길이었다. 철학적 삶을 살다가 그로 인해 죽음의 길로 접어든 그에게 죽음은 절망이기 는커녕 고난의 가시밭길로부터 벗어나는 계기였다.

철학적 삶이란 깨어있는 영혼으로 사는 것이고, 무지의 자각은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행위이다. 무지를 자각함으로써 삶의 근저에 놓여있는 편협한 죽음관은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게 된다. 무지를 자각해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가 보잘 것 없음을 자각하는 사람은 자기 삶을 절대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삶에 애착하고 죽음을 한사코 피하려하는 것은 영혼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깨어있는 영혼은 삶에만 집착하지도 않고 죽음을 절망이라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죽음은 두려운 현상도, 절망 그 자체도, 아무것도 없는 끝도 아니다. 다만 여유있게 받아들여야할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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