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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짜익티요 페이야 1

기자명 법보신문

佛恩으로 천년을 견뎌온 황금바위 사원

바간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순례지 짜익티요 페이야로 향했다. 저녁노을에 붉게 물든 바간 평원의 몽환적인 아름다움과 구름처럼 흩어져 펼쳐진 탑의 물결이 눈에 아른거려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애꿎은 발을 나무라며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사진설명>짜익티요의 상징 황금 바위. 원래는 평범한 바위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이 금박을 입혀 지금과 같은 황금 바위로 거듭나게 됐다.

목적지 짜익티요 페이야는 미얀마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 피웠던 몬족의 대표적인 유적지다. 양곤의 쉐다곤, 만달레이의 마하무니 페이야와 더불어 미얀마의 3대 불교성지로 알려진 곳으로 높이 6m 크기의 신비로운 황금 바위의 존재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황금탑을 이고 서 있는 바위는 비스듬한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데 흔들거리면서도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는, 다시 말해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신이한 현상으로 고대로부터 미얀마 사람들에게 깊은 경외와 사랑을 받아 오고 있다.

바간에서 짜익티요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찜통 같은 더위와 빨래판 같은 도로 사정은 접어두더라도 짜익티요는 미얀마 남부에 위치한 관계로 버스를 타고서도 족히 18시간 이상을 달려야 하는 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 그야말로 대장정인 셈이다. 버스에서 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진행되는 동안 일행의 얼굴에 긴장을 넘어 비장감이 흐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미얀마 여정이 10여 일이나 지난 지금, 이제는 적응이 됐을 법도 하건만 이방인이 감당해 내기에는 미얀마 도로 사정은 여전히 버겁기만 하다.

차창 밖으로 바라 본 미얀마의 국토는 아름다우면서도 변화무쌍하다. 해발 800∼900미터의 바간 고원을 지나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오자 거대한 산들이 시나브로 작아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넓은 평야가 양 옆으로 미끄러지듯 펼쳐진다. 푸른 옷으로 한껏 멋을 낸 평야는 멀리 아스라한 지평선을 끝으로 가물거리듯 눈에 잡히고, 강과 개울에는 거대한 뿔을 가진 물소떼가 한가롭게 물놀이를 하고 있다.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더니 자연 그대로가 법문을 하고있는 격이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나무로 지은 원두막은 평야에 점점이 박혀 벼를 베는 농부들과 어우러져 마치 TV속 한 장면을 옮겨온 듯 아름답다. 그러고 보니 자연만 바뀌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가는 사람들도 버마족에서 몽골리안 계통의 샨족을 거쳐, 어느새 둥글면서도 이목구비가 뚜렷한 몬족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을 번화가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다른 지역과 달리 기름진 농토를 끼고 있어서인지 사람들은 활기에 넘쳤고 길에는 자전거와 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 그리고 자동차가 뒤엉켜 움직이고 있었다. 이방인을 바라보는 눈빛도 어느 지역보다 따스했다. 지나가는 차를 향해 은그릇을 흔들며 보시를 권하는 처녀들의 모습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욱 아름다워 보인 것도 풍요로부터 오는 마음의 여유 때문이리라.

<사진설명>산 중턱에서 짜익티요까지 짐을 나르는 미얀마 일꾼.

푸르게 펼쳐졌던 평야의 초록이 다할 즈음 일행은 짜익티요로 통하는 산 어귀에 도착했다. 짜익티요는 산의 입구에서 트럭을 타고 중턱까지 오른 다음 다시 걸어서 올라야만 한다. 아마도 성스러운 산을 보호하기 위한 미얀마 사람들의 배려이리라. 트럭을 타고 한참을 달리자 보일 듯 말듯 나무에 가려 애간장을 녹이던 짜익티요의 황금 바위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순간 누구랄 것도 없이 일제히 가슴에 손을 모으고 입으로 염불을 왼다. 아니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염불이라기보다 오히려 감탄과 탄성에 가깝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의 주름진 눈가에 감격에 겨운 눈물이 조용히 흐르는 것도 동시의 일이었다. 파란 하늘에 구름 몇 점을 더한 채 낭떠러지에 위태롭게 서 있는 황금 바위는 아름다웠다. 또한 천상에 솟은 탑인 양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사진설명>미얀마 초등학교의 수업 모습. 마치 60~70년대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비스듬한 절벽에 기대서서 숱한 폭우와 비바람 속에서 1000년을 버텨냈다고 하니,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전설에 따르면 황금 바위가 지금의 모습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0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간 옛 날이라고 한다. 미얀마 사람들이 들려준 황금 바위에 얽힌 전설은 이렇다.

짜익티요에 위대한 수행자가 살고 있었다. 어찌나 열심히 수행을 했던지, 부처님이 직접 이곳을 방문해 수기처럼 머리카락 몇 발을 뽑아주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수행자는 부처님의 불발(佛髮)을 얻은 뒤에도 자만하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행자 앞에 몬족의 왕 티샤가 불현듯 나타났다. 11세기 미얀마 남부를 다스리던 왕은 짜익티요의 아름다움에 취해 산을 찾았다 우연히 수행자를 조우하게 된 것이다. 예사롭지 않은 인연이라 생각한 수행자는 불발을 왕에게 주며 잘 보관할 것을 당부했다. 예기치 않은 행운에 크게 기뻐한 왕이 그에 대한 보답으로 산 정상에 커다란 절을 짓고 불발을 모시겠다는 뜻을 밝혔다. 허나 수행자는 모든 것을 사양하고 대신 자신의 머리 모양을 닮은 바위를 찾아 그 안에 불발을 모셔 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고마움을 표시할 길이 없던 왕은 이를 흔쾌히 승낙하고 그의 요청대로 산과 들을 샅샅이 뒤져 바위 찾기에 나섰다.

그러나 수행자의 머리와 비슷한 바위는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라 곳곳을 뒤졌지만 수행자의 머리와 닮은 바위는 어디에서 없었다. 불발을 잃게 될 것을 두려워 한 왕은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을 했다. 그러자 한 신하가 왕에게 산의 정령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을 조언했다. 오랜 망설임 끝에 왕은 산의 정령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그의 신통으로 바다 속에서 수행자의 머리와 닮은 바위를 찾아 짜익티요에 모시게 됐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짜익티요의 상징인 황금 바위이다.

전설은 그저 평범하면서도 평화롭다. 그러나 그 속에는 정령 신앙을 중심으로 한 샤머니즘과 불교의 치열한 싸움이 은유적으로 표현돼 있다. 사실 짜익티요는 불교성지라기 보다 정령 신앙의 성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산 곳곳에 낫을 기리는 사당들이 울긋불긋 치장한 얼굴로 짜익티요보다 먼저 사람을 맞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 있었을 것 같지 않은 불발의 전래도 어쩌면 불교 전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삽입된 것이리라. 어쩌면 황금 바위는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정령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이고, 불교의 전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불교를 상징하는 바위로 탈바꿈했을 것이다. 전설은 바로 이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스님들을 죽이고 사원을 파괴했던 마을 사람들이 과보를 받아 원숭이로 변해 버렸다는 또 다른 전설이 짜익티요에는 내려오고 있다. 이 또한 불교 전래 과정에서 있었던 정령 신앙과의 치열한 싸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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