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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佛事, 어떻게 진행됐나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5.06.22 11:00
  • 댓글 0

동국대 전영준 박사, ‘공역승’ 조명 논문 발표

고려시대 사찰 불사(佛事)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불교를 국교로 채택했던 고려시대, 이 시기 사찰은 종교적인 기능을 수행하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따라서 사찰에서는 국가 뿐 아니라 지방 귀족들이 주관하는 각종 불교행사가 진행됐고, 또 수많은 불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문헌에 의하면 고려시대 전국에 걸쳐 2000∼3000여개의 사찰이 있었고, 이들 대부분은 국가나 지방 귀족들의 발원에 의해 창건됐거나 중창됐다. 그런데 그 동안 사찰불사와 관련해 ‘누구의 발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만 부각됐을 뿐 누가 어떻게 이 불사를 진행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고려시대 사찰 불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분석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받았다.

동국대 강사 전영준 박사는 지난 6월 11일 서울대 인문관 회의실에서 열린 한국역사민속학회 105차 월례발표회에서 「고려시대 사원불사와 조력자」라는 논문에서 “고려시대 진행된 사원불사의 실질적 조력자(助力者)는 각종 불사에 대한 전문적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던 공역승(供役僧)들이었다”고 주장했다.

전 박사는 100여개 전통사찰의 창건기 및 중수기에 나타난 불사와 관련된 기록을 수집하고 이를 분석한 연구를 통해 지역단위의 대규모 사찰에는 불사를 전문적으로 책임지는 공역승이 별도로 있었고 이들에 의해 사찰 불사가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전 박사에 따르면 고려시대 사찰의 불사가 진행되면 우선 공역승의 우두머리인 승장에 의해 불사설계가 수립되고 이후 목수, 조각, 그림 등 각 분야 전문성을 갖춘 공장승과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역승 등이 참가, 철저한 분업화를 통해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 공역승들의 기술력은 매우 뛰어나 이후 성 축성이나 국가적 토목공사에 참가하기도 했다.

전 박사는 “불사는 현실적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했던 신앙적 발원이기 때문에 종교적 신념 없이 불사를 진행할 수는 없었고 따라서 스님들로 조직된 공역승들이 불사를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며 “이런 점에서 공역승들의 역할을 분석하는 것은 당시 시대상황과 고려시대 문화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권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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