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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하는 뇌성마비 시인 최명숙 씨

기자명 법보신문

“아름다운 삶은 밝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소나기 내리다가 개인 산사의 밤
풍경이 홀로 깨어 운다

몸으로 우는 풍경
고요의 끝자락에서
수만 날을 묵도하다
터뜨리는 외침

산도 잠을 자고
산사의 잠이 곤한 새벽 한 시
허공 중으로 부서지는 비단비늘
그 외침

추녀에 걸린 달을
기와지붕 연꽃 단청의 향기를 흔든다

이제야 알아들을 수 있겠다
사람의 가슴마다
거세게 일렁이는 풍파소리를

모두를 놓아버린 후
이제야 알겠다
바람이 불고 간 줄을

‘풍경’ 전문

깊은 적막에 잠긴 산사. 불면에 지친 밤바람에 추녀 끝 풍경만이 고요함을 흔든다. 산사의 밤이란 간혹 6월의 땡볕이 무색하리만큼 한기를 몰고도 오지만 법당 안은 삼천배의 열기로 사뭇 뜨겁다.

몇 해 전부터 매달 봉화 청량사를 찾아 철야정진을 하고 있는 최명숙(45·법련화) 씨.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향할수록 뚝뚝 떨어지는 그의 땀방울도 굵고 잦아진다. 다른 사람들이야 곧 삼천배에 이를 터이지만 그에게 숫자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같은 시간 최선을 다해 온 몸을 내던진다는 그 반복적인 행위가 더욱 의미 있을 뿐이다.

처음 절을 시작할 때면 이런 저런 상념들이 스쳐가고, 간혹 세간에서 겪었던 마음 아팠던 일들이 복받쳐 오르기도 했다. 말 한마디 하려면 손부터 먼저 올라가고, 때로 온몸을 흔들며 버스를 타면 호기심 어린 눈빛들. 슬픈 노래만이 가슴을 울리는 것은 아니다. 상처 입은 일상을 아프게 딛고 일어설 때 자기 자신을 이해시키는 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것은 눈물 나도록 서글픈 일이었다.

절의 횟수가 더해 갈수록 이런저런 잔상마저 땀방울에 녹아들고 한 배 한 배에 힘겨워하는 자신만 직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긴 절을 마치고 햇살이 무명천처럼 풀릴 때면 ‘해냈다’라는 흐뭇함과 ‘사는 게 감사하다’는 넉넉함이 밀려들었다. 그가 오랫동안 절수행을 해오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마음의 평안과 무관하지 않다.

‘사소한 것에 감동하는 것이 작은 기쁨의 시작이 된다. 작은 기쁨은 작은 만족에서 오고, 행복은 작은 기쁨들이 모여 만드는 것’이라는 게 최 씨의 소신. 그가 사무실 책상 앞에 ‘밝은 마음에 밝은 삶이 깃들인다’는 말을 적어놓고 하루를 여는 화두인양 매일 아침 책상 앞에 앉아 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매달 3000배등 절수행 매진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을 맡고 있는 최 씨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였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최 씨를 특별하게 여기거나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키우지 않았다. 오히려 5남매의 맏딸이자 당당한 사회인으로 키우고자 애썼다.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하는 어려운 형편에도 어머니는 그에게 책을 가까이 하도록 했고 낯선 환경과 새로운 만남으로 인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늘 바깥세상을 향해 서도록 이끌었다.

“남의 말을 소중히 알고, 서로의 믿음을 깨뜨리지 말며, 네 앞에 있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기거나 가벼이 하지 마라, 들녘에 핀 꽃 한 송이에도 살아있음을 축복으로 여기는 마음과 욕심 없는 마음과 여유 있는 마음으로 늘 베풀면 괴롭지 않고 외롭지 않을 수 있단다.”

어린 시절 아침마다 딸의 머리를 빗기며 들려주었던 얘기들을 최 씨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화장실까지 쫓아와 놀리거나 가방을 빼앗아 집어던지던 아이, 고등학교 수업시간 떠듬거리는 자신을 향해 “입 이상하게 벌리지 말고 앉아”라며 소리치던 선생님. 대학면접 때 입학동기를 묻기보다 “이리저리 걸어보라”며 “대학교는 힘들게 뭐 하러 다녀”라고 야멸찬 말을 내뱉던 대학교수.

중견 시인이자 수필가

장애인이기에 겪어야 했던 가슴 저미는 슬픔에도 그가 누구보다 환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도 모두 어머니의 격려와 꾸지람 덕이다. 이런 까닭에 최 씨가 뇌성마비복지관을 찾는 장애아들의 어머니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장애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도움 받아야 할 일이 아님에도 미리 모든 것을 챙겨주는 것은 그 아이의 능력을 꺾는 행위입니다. 도움 받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어떤 상황에서건 나는 장애인이니까 보살핌이나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좋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때 불교반 활동을 계기로 불자의 삶을 살고 있는 그는 하이텔 불교동호회에서 활동하는 것은 물론 매주 일요일이면 사찰법회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한 그에게 사찰방문은 늘 힘겨운 고난의 길일 수밖에 없다. 층층계단이 성처럼 둘러싸인 법당 안에 발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아 때때로 법당 근처를 맴도는데 만족해야 할 때도 있다. 행여 휠체어를 탄 장애인 법우와 동행했을 때 간혹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하면 곤혹스럽기 일쑤다.

“부처님 말씀은 세상을 편안하게 바라보도록 하고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게 합니다. 불교는 온갖 만물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많은 스님들과 불자님들이 장애인들에 대한 포교와 배려에는 너무 소극적인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장애인을 그저 전생에 나쁜 업을 많이 지은 중생쯤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450만 장애인의 대다수를 비불자로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다. 한 때 법사를 꿈꾸던 최 씨는 이런 여건에서 비록 작은 힘일지라도 장애인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로 인해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게 그의 소망이다.

모범적인 장애인 불자 ‘꿈’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의 시집을 펴낸 중견 시인이자 1995년 곰두리문학상 소설부문에 입상한 소설가, 장애인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한 최 씨. 장애인과 비장애인뿐 아니라 생명 있는 것과 없는 것까지도 모두 어우러져 하나가 되고, 복숭아꽃이 피어서 열매로 사람을 모으듯 모든 사람이 지혜와 자비의 향을 내뿜는 세상. 최 씨가 오늘도 절을 하는 건 이런 세상을 꿈꾸는 그의 하늘빛 소망 때문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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