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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과 통도사

기자명 김수용
  • 수행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월하 스님의 가르침

영취산 통도사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짙푸른 대밭도 아름드리 소나무도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고 병정처럼 늘어선 장독대에 눈이 수북한 것을 보면 어제 밤부터 퍼부었나 보다.

중광스님과 나는 쉴새없이 눈을 쏟아 붓는 잿빛하늘을 바라보며 지금 회의가 진행중인 안채 쪽에서 고성이 오고 가는 것을 듣고 있다. 스님들이 벗어 논 고무신이 50켤레는 넘을 것이다. 여관에서도 수 십 명의 스탭이 촬영허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중광은 통도사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했고 지금도 많은 도반들이 살고있는 이 곳을 '허튼소리' 촬영장소로 추천하고 그 교섭을 하러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젊은 스님들은 승적이 없는 파계승의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어림없다고 버티는 것이다. 결국 촬영 불가쪽으로 결론이 내려져 중광과 나는 월하스님의 요사채를 찾게 되었다.

'허튼소리' 촬영 거절 당했지만

극락암 찍은 영화 ' 침향 '제작해



큰스님은 방문을 열어제치고 눈 구경을 하고 있다가 '이상한 사람들도 다 보는구먼. 자기가 살던 친정 집에서 영화촬영을 한다는데 협조는 못할망정 방해를 하다니….' 나는 스님에게 큰절을 올렸다. 중광이 입을 열며 '스님 좋은 글 하나 써주시지요' 하며 나에게 먹을 갈라고 한다. 큰스님은 '별로 글씨가 좋지 않지만 그럼 써 볼까'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붓끝을 지켜보았다.

靑山不墨萬古屛 流水無弦千年琴

(푸른 산은 먹으로 그리지 않았거늘 만고에 아름다운 병풍으로 서있고 유수는 현이 없어도 천년이나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를 낸다)

물론 내 해석이 바로 되었는지는 몰라도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왈칵 부끄러움을 느꼈다. 예술이라 한답시고 평생을 여기저기 뛰어다녔지만 인간이 아무리 용을 써봐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능가 할 수 있겠는가 스님은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나는 큰 충격을 안고 서울로 돌아왔고 이제 통도사같은 좋은 절에서 촬영못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촬영을 허락해주는 말사나 산사를 찾아다니며 구걸하다시피 영화를 마쳤다. 물론 아름다운 경치보다는 영상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람들의 오만한 생각을 털어 버리려고 애썼다.

86년 여름 '허튼소리'는 검열의 가위질로 만신창이가 된 채 개봉이 되었고 매스컴은 일제히 감독을 두둔했지만 군사정권의 영화창구는 끄떡도 안 했다. 결국 나는 한 개의 계란이 되어 검열의 바위에 부딪혀 깨졌다. 그 후 10년쯤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화를 가르쳤다. 그리고 다시 메가폰을 들고 109번째 영화를 만들 때 통도사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나는 영취산의 푸른 소나무와 극락암의 불타는 단풍을 놓치지 않고 필름에 수록했으며 그것은 '침향'(沈香)이란 제목이 붙여졌다. 그리고 지난 겨울 제 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나의 회고전이 있었는데 '허튼소리'의 결손부분이 완전하게 복원되어 관객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었으며 부처님의 자비라고 생각하며 두 손을 모은다.



김수용(영화감독, 예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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