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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민족

기자명 법보신문
자금성 순례하다 만난 北 어린이
반가움과 긴장감이 함께 밀려온다



베이징(北京)시 산리툰(三里屯)이라는 지역에는 많은 외국 대사관들이 위치하고 있다. 저번 주에 택시를 타고 그 지역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 옆을 우연히 지나갈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택시 창을 통해 본 캐나다 대사관의 외부 벽은 거의 요새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아주 높고, 뾰족하고, 층층으로 둘러 싸여 있는 것이다. 왜 이리 요새처럼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해서 중국 택시 기사한테 물어 보니 몰래 캐나다 대사관으로 들어가려는 ‘조선’ 사람들을 막기 위해 그렇단다. 조선 사람… 이 말을 택시 기사한테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해 지면서 알 수 없는 애잔한 감정이 들었다. 저 대사관의 담벽을 저렇게 높이 올려 만든 이유가 바로 내 민족 때문이었다니. 갑자기 이일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6년 전 처음 중국으로 단기 언어 연수를 하러왔을 때였던 것 같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유명한 자금성으로 향했다. 자금성 입구에서 입장권를 사고 있는데 한 9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가 나에게 와서 동냥을 하는 것 이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동냥하는 그 거지 아이는 중국말이 아닌 북한 사투리가 섞인 한국말로 나에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북한 사람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 사람이 바로 북한을 몰래 넘어온 9살 된 아이라니! 너무 놀라고 서글퍼서 그날 자금성을 보는 둥 마는 둥 했던 기억이 있다.

중국에서의 북한 사람과의 우연한 인연은 어제도 있었다. 티벳 불교에 대해 공부를 하는 박사과정의 한 미국인 친구가 나에게 한국 음식을 본인이 공양하겠다고 해서 가보니 북경의 어느 북한 식당이었다. 치마가 짧은 전형적인 북한식 한복을 입은 종업원이 나와 우리들을 테이블로 인도했다. 난생 처음 보는 북한 메뉴판으로 북한 종업원에게 북한 음식을 주문하고 나니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랬다. 북한 정부 차원에서 선발해서 보냈는지 종업원 한명 한명은 모두 출중한 외모에 세련된 매너, 유창한 중국말을 구사하고 있었다.

같은 한민족으로써 물어 보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어디서 왔는지, 형제가 어떻게 되는지, 북한 생활은 어떤지 등등 여러 가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나는 차마 그런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그쪽에서 나의 호기심으로 인해 불편해 할까봐, 또 남한 사람들을 상대할 때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어떤 규칙이 있을까 걱정되어서였다. 같은 동포를 타국에서 만났지만 반가움 반(半) 알 수 없는 긴장감 반(半)이 저녁 공양 내내 나와 북한 종업원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중국에 살면서 참으로 부러운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중국과 대만간의 활발한 문화와 인적 교류이다. 중국에서도 대만의 유명한 음악이나 영화를 쉽게 사서 보고 들을 수 있고, 대만 사람들은 중국을 또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가 있다. 남북으로 갈려 반세기를 넘게 정치뿐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단절 되어 온 우리 한민족에게는 중국과 대만의 현 상황이 참으로 부럽기만 하다. 언제쯤이면 묘한 긴장감 없이 편안하게 어제 다녀간 식당에서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자금성에서 본 북한 아이의 절박함과 어제 만난 북한 종업원의 미소 사이에서 내 얼굴은 지금 알 수 없는 슬픈 쓴 웃음만이 가득하기만 하다.

혜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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