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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잃지 않는 게 최고의 암 치료제

기자명 법보신문

암환자들의 善友 자연치유센터 손 순 호 실장

세달 밖에 못산다는 말에 손씨는 절망했다. 화려한 지난날은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가깝던 사람들도 조금씩 멀어져 갔다. 원망과 서글픔에 그는 매일 바닷가로 향했다.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
『금강경』의 말마따나 인생은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았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래 이렇게 쓰러질 수는 없다. 내일 내 삶이 끝나더라도 나는 오늘 행복하리라. 삶의 변화가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오늘도 눈을 뜨고 숨 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딸의 대학 입학만 보고 죽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1994년 12월, 위암 수술 후 3개월을 선고받은 손순호(51·다정혜) 씨. 고등학교 3학년의 딸을 홀로 두고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그에게 이름난 성형외과 상담실장으로 생활하던 화려한 지난날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 가깝던 사람들이 멀어지는 것에 대한 원망과 서글픔이 밀려와 매일 집 근처의 광안리 바닷가에 나가 울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런데 남은 생이 줄어들면서 원망은 하루하루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살아있음 대한 고마움이 커질수록 손 씨는 일분, 일초도 헛되게 보낼 수 없었다. 물 한 모금도 넘기기 힘들었지만 식사량을 조금씩 늘려가고 집안일을 시작했다. 틈틈이 책을 읽었고 다른 생각이 올라오면 모아둔 옷감을 찾아 바느질했다. 손 씨의 몸은 의사들도 기적이라고 할 만큼 빠르게 회복됐고 3개월을 넘어 딸의 입학을 함께한 것은 물론이었다.

10년전 암 선고… 기적적 회생

몸의 건강을 되찾은 손 씨가 범어사 아래 마을에 전통찻집을 마련한 것은 1999년 초여름. 손 씨가 본격적인 불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손 씨는 우연히 보게 된 『구름 뒤 파란하늘』이라는 책의 저자인 부산 여여선원 선원장 정여 스님을 찾아가 상호를 부탁했다. 스님의 표현은 ‘터널 같은 나의 삶에도 구름 뒤 파란 하늘처럼 끝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스님이 지어 준 ‘산머루’라는 이름을 걸고 찻집을 개원한 손 씨가 고마움을 전하고자 다시 선원을 찾아갔을 때 정여 스님은 손님들에게 차를 내어 주는 봉사를 맡아달라고 제의했다. 손 씨가 자신은 불교를 잘 모른다며 망설이자 스님은 말했다. “보살님은 속이 없잖아요.”

물론 스님의 말은 상(相)이 없고 진심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지만 손 씨는 깜짝 놀랐다. 위암 수술 한 것을 들킨 줄 알았기 때문이다. 영문을 몰랐던 스님은 손 씨의 이야기를 듣고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이제 부처님이 있습니다. 부처님께 귀의해서 지금처럼 맑은 마음으로 사십시오.”

매일 선원에 나가기 시작한 손 씨에게 부처님의 말씀 한 구절, 스님의 법문 한 마디는 뼈 속까지 새겨졌다. 특히 『금강경』을 읽을 때면 겉모습과 물질에 집착하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라 참회하고 또 참회했다. 혼자가 됨을 두려워했던 그였것만 외로움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면서 차 한 잔, 풀 한 포기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불교최고지도자 아카데미 1기, 여여선원 다도수업 1기, 호스피스 봉사교육 1기를 수료하면서 손 씨는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내면의 깊은 곳에서부터 진실한 불제자가 되어 있었다. 이제 감사의 대상은 항상 부처님이 되었다. 손 씨가 항상 고마워하는 삶, 모든 존재가 부처님이 된 것이다.

호스피스 교육을 수료한 손 씨는 본격적으로 병원에서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매주 한 번 씩 암 환자들이 있는 병원을 찾아가는 손 씨는 항상 차와 다기를 담은 바구니를 준비했다.

<사진설명>손순호 실장은 차 한잔과 따스한 미소로 죽음의 고통에 시달리는 암 환자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전해주고 있다.

“저는 지금 여러분과 함께 차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자신이 선택받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워 차조차 마실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삶의 소중함을 차에 담아 전하는 손 씨의 따뜻한 마음과 정겨운 말 한마디에 환자들은 때로 눈물을 흘리기도, 또 환하게 웃음짓기도 했다.

손 씨는 매달 한 번씩 환자들과 함께 범어사를 찾아가 저녁 예불의 법고소리를 들었다. 종교를 떠나서 산사의 정경과 풍경소리, 법고소리는 환자들의 아픈 내면을 달래주는 또 하나의 치료약이라는 확신 때문이었고, 실제 많은 환자들이 희망이나 마음의 평안을 찾고는 했다. 여러 스님들과 오랫동안 수행했던 이들도 손 씨를 진정한 수행자이자 포교사라고 일컫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정여스님 만나며 호스피스 활동

손 씨는 호스피스 봉사를 인연으로 50세를 넘긴 나이에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됐다. 손 씨의 삶을 전해들은 해운대 한일병원 대체의학 전문의의 제안으로 꽃마을 경주 한방병원 부설 자연치유센터 상담실장으로 오는 10월 개원과 함께 근무하게 된 것이다. 자연치유센터는 암이나 난치병 환자들이 한옥에서 유기농으로 재배된 음식을 먹고 숲길 산책, 텃밭 가꾸기 등 자연 가까이에서 생활하며 인체가 가진 자연치유력을 보강해 병을 해독하고 정화하는 대체의학의 일종이다.

“단 하루라도 삶을 사랑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전해주고 싶다”고 말하는 손 씨는 “부처님께서 생로병사의 해결을 위해 출가하셨듯이 나도 고통의 근원인 생각을 치유하고 맑은 마음을 밝혀주는데 남은 삶을 다하고 싶다”고 다짐한다.
12년 전부터 요가를 해왔던 손 씨는 불교를 배우면서 매일 아침 요가와 함께 30분간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항상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으로 오늘을 살겠다’는 발원을 잊지 않는다.

매주 암환자 찾아 희망 전달

산머루 찻집에서 손 씨의 삶은 흰 고무신에 소박한 한복을 입고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수행이라 규정하는 염불이나 참선의 형태를 띠지 않더라도 손 씨에게는 이미 삶이 곧 수행이자 회향이었다. 손 씨는 6년 간 정성을 다해 운영해 온 산머루 찻집을 새로운 인연이 닿는 사람에게 넘기려한다.

업에 이끌려 살면 중생이고 원에 따라살면 보살이라고 했던가. 바라는 것이 넘치고 이기심과 질투, 성냄과 원망으로 지금 이 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들에게 손 씨는 『금강경』의 도리를 나지막이 전한다.

‘마땅히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마땅히 성, 향, 미, 촉, 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마땅히 머문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 味觸法生心 應無所住 以生其心)’

부산지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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