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늙었다. 용의 새끼를 기를 수 없으니 네가 비늘이 돋아날 수 있는 곳으로 가거라.” 그리고는 벽허를 설암 선사에게 보냈다.
벽허 선사가 설암 선사에서 수참한 지 4년이 흐른 정월 초하룻날 떡국을 먹던 스승이 벽허에게 물었다.
“법성원융(法性圓融)이란 뜻이 무엇인고?”
“적일(赤日)입니다.” 순간 벽허는 확철대오하며 시를 지었다.
지는 햇빛은 붉은 누각에 비치고
끊어진 구름은 옥봉(玉峯)을 의지했네.
천고의 탑에서 방울소리 흔들리고
백년된 소나무 바람소리 웅웅대네.
*벽허선사: 1657년 평양서 출생, 영조 11년인 1734년 묘향산에서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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