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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牛하듯 고삐를 당겨 추스려라 [br]지혜로운 사람은 그림자도 맑다”

기자명 법보신문

불기 2549 하안거 해제 조계총림 방장 보 성 스님

불기 2549년 하안거 해제날 하루 전인 18일. 35명의 납자들을 안거기간 동안 제접한 조계총림 방장 보성 스님을 만나기 위해 송광사 대웅전을 지나 삼일암(三日庵)으로 향했다. 대웅전에서는 부처님과 역대 조사에 예를 올리는 저녁 예불이 봉행되고 있었다.

삼일암에서 20여명의 기자단을 맞이한 방장 스님은 단번에 “가방은 마루에 두고 들어오라”며 나무랐다. ‘서울에서 어렵게 올라온 기자단의 마음을 왜 굳이 무겁게 만드실까?’ 의문은 삼배를 올린 후 자리에 앉자마자 풀렸다.

“숨 한 번 내 쉬고 들이 쉬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굿바이 입니다. 숨 한 번 내쉬는 것만 보아도 그 사람의 현재심을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지금 예불을 올리지 않습니까? 아무리 약속 시간이 가까웠다 해도 예불은 마치고 얘기를 나눠야지요. 각자 종교가 다르겠지만 절집에 왔으면 여기 법도를 따라야 하지 않습니까?”
찰나의 긴장감이 감돈 순간 방장 스님의 자비로운 한마디가 조용하게 울렸다. “자, 이제 차 한 잔 하시지요!”

수행하며 졸기만 하면 도둑일 뿐

조계총림의 목우가풍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
“보조국사 지눌 스님은 소처럼 묵묵하게 거닐지만 눈은 호랑이 눈과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을 일컬어 우행호시(牛行虎視) 목우자(牧牛者)라 했습니다. 보조국사 스님의 정신은 지금도 이 송광사는 물론 한국불교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목우가풍! 글자 그대로 단순히 소 길들이는 게 아닙니다, 소가 어디 들녘의 풀만 먹습니까? 애써 농사 지어 놓은 콩잎도 먹고 나락도 뜯어 먹습니다.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처음 소에게 풀을 먹일 때에도 고삐를 당겨야 하지만 밭으로 걸음하려는 소의 고삐도 당겨 멈추게 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스스로 고삐를 매 당기고 풀며 살아가야 합니다.”

옛날 큰 스님의 정진 때와 비교해 지금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강도만 좀 다를 뿐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조계총림 선원의 청규는 여느 총림 못지않게 엄격합니다. 포행중이라도 일주문 밖으로 발 내밀면 바로 퇴방이지요.”

수좌들이 일상에서 지켜야 할 점을 강조하셨다는데.
“꼭 수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 저녁 공양을 많이 하지 말라 했습니다. 점심 공양 때 남은 음식으로 저녁 공양을 하라 했지요. 저녁에 배 불러봐야 졸음만 올 뿐입니다. 사실 삼복더위 한낮에 수행하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산바람 선선한 저녁부터라도 가행정진 해야 할 터인데 이 때 졸면 무슨 소용입니까? 우리는 남의 힘에 의지해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밥 한그릇의 쌀을 누가 주었습니까? 시줏돈 무서운 줄 모르고 졸면 도둑일 뿐입니다.”

백장청규와 계율 정신 고양에 남다른 노력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 밭을 좀 만들어 경작하고 있습니다. 농약 대신 절에서 나오는 순수한 거름을 쓰지요. 처음엔 사중들의 불평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왜? 힘드니까! 하루는 한 녀석이 와서는 ‘스님, 이렇게 밭농사 짓는 것 보다 시장서 사다 먹는 게 경비면에서도 더 낫습니다’하잖아요. 그래 ‘사 온 음식에 어떤 독이 있는지나 아느냐?’고 꾸짖었지요. 남들은 순수 농작물 먹겠다고 많은 돈도 마다하지 않는데 절 집의 밭 놔두고 뭐 하러 원산지도 모르는 음식에 맛을 들인단 말입니까? 그리고 농사를 지어 봐야 농사짓는 법도 깨우치는 법입니다. 그 법도에도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몸소 체험할 수 있는데 왜 마다합니까!”

현재 불교계의 문제점 하나를 꼽으신다면
“불교뿐만 아니라 종교계에는 돈이 너무 많아 문제입니다. 물론 어렵게 사는 암자도 많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부유한 경제로 인해 잃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불교만 해도 사회에 회향할 줄 몰라요.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쓸 줄을 모른단 겁니다. 모든 종교는 이 돈 때문에 발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들 정신 차려야 합니다,”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은 어떠 하셨습니까?
“사진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직접 만나보니 그 분이 왜 ‘자비의 화신’이라 불리는지 알겠더군요. 누구든 자기 자신을 함부로 내세울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금 새겨보았습니다. 올 겨울에도 만나보려 합니다.”


종교계 돈 너무 많아 발전 안 돼

최근 도청 문제로 세상 밖이 어지럽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지요. 도청 사건으로 대통령 떨어진 미국 사람 있지 않습니까? 닉슨인가요? 그런 것 보았으면 하지 말아야지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우리는 늘 정치인에게 속았다, 기업인에게 속았다 하는데 사실은 자신에게 속은 겁니다.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속고 속였다는 것 아닙니까? 나를 비우고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면 도청 사건은 일어나지도 않고 기업인에게 속을 일도 없습니다.”

물질만능 시대에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
“돈이면 다 해결되는 세상이 되었지요. 어른들이 만들어 놓았고 사회가 그러하니 모두 그리 따라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러나 돈에 끄달리면 내 주장 하나도 제대로 펼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을 당당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나는 스님들에게 성공은 못할지언정 정당한 패배자가 되라고 합니다. 스님들은 수행을 해야 제대로 된 힘을 키우는 겁니다. 일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만을 위해 잔재주 부리면 안 됩니다. 이 세상 누구든지 잔재주 부리는 사람에게는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정당한 패배자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는 법입니다. 돈에 끄달려 잔재주만 부리다가는 희망이란 놈을 영원히 놓치고야 말 것입니다.”

자존심 꺾고 나를 앞세우지 말라

사부대중에게 전하는 당부의 한 말씀 해 주시지요.
“부지런해야 합니다. 자존심 꺾고 나를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 사흘만 해 보아도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저것은 내 것이다 하고 점찍어 놓은 순간 틀린 겁니다. 내 손에 든 것 다 내려놓고 나를 비워야 합니다. 정견을 갖지 않고는 행동 하나 하나도 온전하게 할 수 없지요. 그 행동 하나 하나에 업이 따라 다니는 겁니다.”



밭 한 평이라도 마련해 대중들이 손수 농사를 짓게 하려는 스님의 선농일치 의지와 전 대중에게 백장청규와 계율 강의를 들으라는 엄명(?)을 내렸다는 것만 보아도 목우가풍 진작을 위한 방장 스님의 남다른 노력이 엿보인다.

조계총림 선원의 독투한 선풍에 귀를 기울여 볼 때다. 『화엄론』에 “지혜가 맑으면 그림자도 맑다”고 했다. 스스로 고삐를 당겨 추스르며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아는 그 사람이 진정 지혜로운 사람일 것이다. 이 사회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바로 지혜롭지 못한 우리들의 그림자인 것을.

송광사=채한기 기자


조계총림 선원은?
조계총림 선원의 시초는 보조 국사 지눌 스님이 정혜사를 이곳 송광사로 옮기고 수선사(修禪社)라 이름한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에 이어 15명의 국사가 이곳에서 배출됐다. 이후 1969년 5월 30일 해인 총림에 이어 두 번째로 조계총림이 발족하며 하안거 결제를 맞이해 총림선원 개원식이 거행됐다. 초대 방장은 구산 스님이다.
조계총림 선원 결제 때 승용차 이용은 안 된다. 모두 대중교통편을 이용해야만 한다. 안거 기간 동안 절대 라면 공양은 할 수 없다. 또한 발우공양이 철저하기로 이름난 이 선원에서는 국수 공양 때도 발우공양을 해야 한다. 불일회가 선방 경비를 부담하는 것도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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