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⑮ 운서주굉의 『왕생집』 서문 중에서

기자명 법보신문

마음속 사바 청정케 해야 왕생

오늘날의 부처님이 가신 지도 오래되었고, 중생의 번뇌도 날로 더하고 있다. 그러니 정토문을 의지하지 않고서 어찌 신속히 생사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위대하다! 정토문은 참으로 말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신효한 영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효험이 많았으나 지금 드문 것은 그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입으로는 정토를 부르면서 마음은 사바를 떠나지 못하여, 굳게 깨달음을 구하는 선배들의 열정에 미치지 못할 따름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예전에는 왕생했다는 자가 많았다고 하나, 세월이 오래되어 이젠 보기도 듣기도 어렵게 됐다. 그동안 여러 문헌을 본 것 중에서 그 인과가 분명한 것만을 발췌하고 보니, 어느덧 11년 동안에 천여 가지의 이야기를 모으게 되었다. 이에 나는 산자락에 한 칸 초옥을 얽은 뒤 문을 닫아걸고 왕래를 끊었다. 그리고 이 얘기들 중 166가지의 사실을 정리하고 찬(贊)을 붙여 『왕생집』이라 이름 붙였다.

어느 지나가던 객이 몇 가지의 이야기를 읽어보지도 않고 발끈 화를 내며 “정토는 마음일 뿐 마음 밖에는 국토가 없소. 정토에 왕생한다는 말은 어리석은 말일 따름이오. 그대는 진정 왕생한다는 사실을 의심치 않는 것이오?”

나는 그 얼굴빛이 안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이렇게 말하였다.

“어찌 그렇게 쉽게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태어남이 없다고 못 박는다면 모든 것이 단멸(斷滅)이어서 오히려 마음뿐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못합니다. 과연 태어남이 없는 이치를 깨달았다면 태어난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태어남이 이미 본래 없는 것이므로 늘 태어나되 태어난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대는 번뇌를 다 없앴습니까?”

“그러지 못했소.”

“아! 번뇌를 아직 다 없애지 못했으면서 다시 태어나는 인연도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다시 태어나는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몸을 의탁해야 할 곳이 반드시 있어서 삼계(三界)의 넓은 고해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진대 정토에 태어나지 않고 어느 국토에 태어나겠습니까? 육도에서 헤매는 것과 구품(九品)에서 노니는 것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로움과 해로움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질없는 이론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짓은 나도 하려면 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않는 까닭은 함부로 진리를 폄훼하는 우를 범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객이 공손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신을 잃은 듯 어리둥절해 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슬피 울었다. 그러다 다시 옷깃을 가다듬고 남은 부분을 마저 읽고는 절을 하며 이 책을 출판해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제 출판에 즈음하여 이와 같이 시말의 경위를 적어 두는 바이다.


운서주굉은?

운서주굉(雲棲株宏, 1535~1615) 대사는 절강성 항주에서 태어났다. 처음 유학을 공부하였으나 31세 때 오대산(五臺山) 성천화상을 따라 출가하고, 그 후 항저우[杭州] 운서산(雲棲山)에 정주하며 선(禪)과 염불과의 일치를 주창하여 운서염불종(雲棲念佛宗)을 일으켰다.
『능엄경』 『아미타경』 『범망경』 등의 주석(註釋)이 있으며, 그 밖의 저서에 『운서법휘(雲棲法彙)』 『운서기사(雲棲紀事)』 등이 있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