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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신상옥의 꿈(1967)

60년대 고전적 정서 아스라히


신상옥은 60년대 한국영화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60년대 한국영화는 신필름의 제작 방향에 따라 흐름이 바뀔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으며, 그 중심에 신상옥이 서있었다.

한국불교영화를 언급할 때 60년대는 장일호의 ‘호국팔만대장경’, 안현철의 ‘사명당’, 전조명의 ‘서산대사’ 등 호국불교영화의 황금기로 규정할 수 있다. 신상옥 역시 60년대 불교영화 붐에 일조했지만 대형영화사의 맹주답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는 역사적인 인물을 영웅시하고 어려울 때 불심과 도력으로 나라를 구하는 호국불교소재의 영화 대신 이광수, 현진건, 박종화 등 무게있는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제작한다. 그는 50년대에 현진건의 ‘무영탑’을 이미 카메라로 담아냈으며 60년대에는 박종화 원작의 ‘다정불심’, 이광수 원작의 ‘꿈’을 영화로 만들어 불교영화 전성기를 이끌어갔다.

‘꿈’은 1990년에 배창호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다. 하지만 삼국유사의 조신설화를 소재로 한 이광수의 소설이 원작이지만 두 감독의 손을 거친 영화는 과장을 심하게 하자면 주인공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배창호의 ‘꿈’은 스님 조신과 태수의 딸 달례의 사랑과 도피행각 그리고 욕망의 허망함에 포커스가 맞춰져있다. 그러나 신상옥의 ‘꿈’은 달례와의 사랑보다 노스님의 가르침에 의한 한밤의 꿈을 통한 깨닭음의 과정에 좀더 공을 들이고 있다.

배창호의 작품은 고증과 예술적 변조를 통해 완성된 의상과 잘 꾸며진 세트와 탁월한 미장센과 촘촘한 내러티브가 가미되어 잘 다듬어진 완성품을 감상하는 맛을 준다. 이에 비해 신상옥의 ‘꿈’은 모친에게 기쁨을 주기위해 꽃을 꺽어달라고 부탁하는 달례와 바위에 올라 꽃을 꺽어 삼배수건에 싸서 바치는 조신의 태도같은 고전적인 정서와 감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고전적인 정서와 감성에 호소는 거칠고 다소 촌스럽다는 반응도 없지 않지만 60년대 한국영화의 부인할 수 없는 특징이면서 기이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따지고 보면 달례와 조신의 만남을 만들어내기위해 고심해서 찾아낸 부분이 꽃을 꺽어줄 것을 부탁하는 장면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고전문학을 들춰보면 ‘헌화가’라는 시가(詩歌)가 있다. 조신과 달례의 만남은 소를 끌고가는 노인이 부인에게 꽃을 바치는 헌화가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고전적 정서에 의존하는 60년대 영화적 상상력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이 같은 장면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조신은 달례를 만난 후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인연을 맺을 수 없음에 대해 한탄하며 번뇌에 빠져있다. 노 스님은 욕망의 헛됨을 일깨우기위해 조신을 법당 안에서 하룻밤을 지새게한다. 조신은 법당 안에서 염불을 외다가 꿈을 꾼다. 조신의 꿈은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게하는 마술 같은 세계로 조신을 이끌며 달례와 만남을 성사시킨다. 달례와 조신의 만남은 하늘에서 내려와 나뭇가지에 자신의 옷을 벗어놓고 연못에서 목욕을 하는 선녀와 나무꾼의 설화를 차용한다.

조신은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달례의 옷을 발견하고 곧장 계곡에서 몸을 씻고있는 달례에게 다가간다. 신상옥의 ‘꿈’은 헌화가와 선녀와 나무꾼같은 고전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60년대 영화분위기를 집약하고 있다. 60년대와 9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주제차원에서 헛된 애욕을 끊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점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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