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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에 담긴 불심

겨울은 겨울인가 보다. 메마른 바람이 살결을 스치고 지나가는가 싶더니 뜰 앞 나무가 잎을 다 떼어내고 어느새 죽은 듯 겨울잠에 빠졌다. 입김으로 손등을 비벼가며 차가워진 문고리를 잡을 때마다 마다 무덥고 지루했던 지난 여름이 그리워지니 사람의 마음이란 이리도 간사한 것인가 싶다.

그럴 때마다 문득 뜰 앞의 나무가 대견스럽게 보인다. 계절의 변화에 맞춰 잎을 돋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풍요의 상징처럼 떠받들어지다가도, 시간이 바뀌어 겨울이 오면 한 마디 불평도 없이 잎을 떨구어 내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겨울의 시련을 겸허히 받아들이니 말이다. 나무가 푸르기만을 고집한다면, 또는 풍성한 열매맺기만을 고집한다면 자연의 조화는 단박에 깨어져 버릴 것이다. 땅의 양분을 빨아 올려 만든 잎과 열매를 다시 대지에 돌려줌으로써 땅과 동물들을 두루 살리는 것이 나무의 역할이니 말이다. 사람살이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사람마다 그 주어진 시간과 환경은 다르겠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내는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근대 우리 불교의 현실을 보면 불자들을 탓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웅장한 사찰건물들은 많아졌지만 그 안에 모시는 부처님의 모습에선 싱싱한 이 시대의 생명력을 느끼기 힘드니 말이다. 현대문명의 대량생산 체제에 흡수되어 똑같은 모습으로 생산(?)된 수많은 부처님들이 순서대로 법당에 모셔지고 있지 않은가. 수 천년의 세월 속에서 부처님은 각 시대와 지역, 환경에 맞게 그 각각의 모습으로 나투셨다. 넓은 얼굴과 온화한 미소로 백제인의 삶을 나타냈고, 차가운 돌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석굴암의 세련된 조각과 완벽한 솜씨는 신라인의 수준을 가늠케 한다. 어디 그뿐인가. 소박한 백성들이 돌 조각에 생명의 혼을 넣으면 어린아이의 동심처럼 천진스런 미소의 부처님이 나투셨다. 그러기에 웃는 부처님도 있고 찡그린 부처님도 있고 화난 듯 한 부처님도 있지만 그것은 모두 중생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낸 부처님의 얼굴인 것이다. 이것이 참다운 부처님의 모습일 것이다.



혜용 스님 〈모악산 용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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