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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백운경한의 『백운화상어록』 중에서

기자명 법보신문

근본 통달하려거든 ‘마음’ 깨쳐라

지금 말세를 당하여 성현들이 자취를 감추니 사악한 법은 왕성해지고 불법은 쇠퇴하여 사람들은 게을러지고 무엇이든 밖을 향해 달리면서 구하려 한다. 사방의 형제들은 여기서 여름을 지내고 저기서 겨울을 지낸다. 또 북으로 오대산을 가서는 문수보살에게 예배하고 남으로 낙가산에 가서는 관음보살에게 예배하고 서쪽으로 아미산에 가서는 보현보살에게 예배하고, 동으로 금강산에 가서는 법기보살에게 예배한다.

이렇게 분주히 떠돌아다니면서 한갓 신도들의 보시를 허비하고 헛된 세월만 보내는 것을 행각(行脚)이라 생각하니, 이런 무리들은 바로 몽둥이를 들고 달을 치는 사람들이니 출가한 뜻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만일 누가 행각하면서 무엇을 배웠는지 물으면 눈만 껌뻑이며 대답하지 못하는 주제에 그저 고집만을 부리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혹 이치를 깨친 이도 있으나 중도를 깨치는 법칙과 이치에 들어가는 문은 알지 못하고, 그저 많이 듣고 배운 것으로 아견(我見)만 잔뜩 불려서 입으로는 세상일을 벗어났다고 큰소리만 친다.

또 어떤 이는 누더기를 입고 한적한 곳에 있거나 산중에 살면서 몸을 단속하고 거친 음식을 먹는 것으로서 도를 깨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하여 마음의 번뇌를 없애지 못하고 이치와 지혜를 밝히지 못하며 부질없이 늙어 복과 덕이 엷은 업만 지으니, 다른 날 염라대왕이 식비를 계산할 때에는 이 노승이 그대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불평하지 말라. 그대들이 듣지 않는 것을 낸들 어찌하겠는가?

여러분은 각기 빛을 돌려 자기 마음을 비추어 그 근본을 통달하고 끄트머리를 따르지 말라. 조사가 말하지 않았던가? 근본만 얻으면 그 끄트머리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그러므로 영가 스님은 “근원을 끊는 것을 부처님이 인가했으니 잎을 따고 가지를 찾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하였다.

근본을 통달하고자 하거든 오직 본래의 마음을 깨쳐라. 본래의 마음은 일체의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법의 근본이다. 그것은 만법의 근원이므로 ‘법성(法性)’이라고도 하며, 또 중생의 큰 근본이므로 ‘여래장’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범망경』에도 “그것은 모든 부처의 본원이요, 보살의 도를 행하는 근본이며, 여러 불자들의 근원”이라고 하였다.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도 없고 마음을 떠나서는 법도 없다. 마음이 곧 부처니 부처를 가지고 부처를 찾지 말며 마음이 곧 법이니 법을 가지고 법을 찾지 말라. 부처와 법은 둘이 아니다.

나는 이미 이 무심의 이치를 통달하고 또 이렇게 깨치지 못한 이에게 권하여 나처럼 증득하기를 빌고 또 빈다. 여러 형제들이여, 내가 지금 이렇게 도에 들어간 인연을 애써 말하는 뜻을 알겠는가? 이런 깊은 신심으로 무수한 세계를 받드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이다.


백운경한은?

백운경한(白雲景閑, 1299~1374) 스님은 태고, 나옹선사와 더불어 고려 말의 대표적 고승으로 손꼽히는 분이다. ‘직지심경’으로 알려진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을 저술한 분이 바로 경한 스님으로, 스님이 강조한 무심무념(無心無念) 선사상은 불교사상사에 있어 특징적인 선풍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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