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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도인도 늙고 병들어 이렇게 가네”[br]고봉〈하〉

기자명 법보신문
고봉 스님은 호방하기 짝이 없는 스님으로 잘 알려졌다. 곡차도 사양하는 법이 없었고. 흥이 났다 하면 두주불사였다. 어느 해 여름. 고봉 스님은 그날도 곡차를 많이 하시고 크게 취하여 절로 돌아와서는 마루에 벌렁 드러누우면서 시자를 불렀다.

“이것 보아라, 어서 대야에 물을 떠 가지고 와서 내 발을 좀 씻겨다오.”
“예, 스님.”
시자가 스님의 분부를 받고 돌아서는데 다른 스님 한 분이 시자를 불러 세웠다.

“이봐라. 고봉 스님이 너에게 발을 씻기라고 하시더냐?”
“예, 그러셨습니다”
“이 녀석아, 고봉 스님께서 발을 씻어라 하셨으면 그 땐 네가 이렇게 물어보아야 하는게야.”
“뭘 어떻게 물어보라는 말씀이신지요?”
“스님, ‘더럽고 깨끗한 것이 둘이 아닌데, 발은 씻어 무엇 합니까?’이렇게 물어야 되는게야. 알겠느냐?”
“아 예. 그럼 제가 그렇게 한번 여쭈어보겠습니다.”
시자는 이렇게 대답하고 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 가지고 와서 고봉 스님의 발을 씻겨드리기 시작했다.

시자는 조금 전 다른 스님이 시킨 대로 고봉 스님께 물었다.
“스님, 더럽고 깨끗한 것이 둘이 아닌데 발은 씻어 무엇 합니까?”
발을 씻겨드리며 시자가 그렇게 묻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고봉 스님의 엄지발가락이 시자의 입안으로 벼락같이 들어왔다. 시자가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자빠지면서 침을 뱉었다.

“아이구 스님, 더러운 발가락을 왜 소승의 입안에다 넣으십니까?”
“이놈아, 더럽고 깨끗한 것이 둘이 아니라고 한 말은 네 말이 아니었더냐?”
시자는 더 이상 할말을 잃었다. 더럽고 깨끗한 것이 둘인 줄 알았다면 스님의 발가락이 입안으로 들어간들 무슨 상관이 있을 것인가? 고봉 스님의 선지는 실로 이처럼 전광석화였다.

호방함 속 선지 번득여

고봉 스님은 은사 혜봉 스님이 사바세계와의 인연을 마치려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남장사로 달려갔다. 평소 은사 스님을 곁에서 모시지는 못했지만 고봉 스님은 늘 혜봉 스님의 은혜를 감사히 여기고 있었다.
고봉 스님이 손에 수건을 들고 스승께 물었다.

“스님, 이것이 보이십니까?”
“그래, 보인다.”
“경욱이는 항상 이 속에 있습니다.”
“그래. 그대는 남장사의 꽃이요, 세상의 빛이다.”
“스님, 중노릇은 생사를 초월하고 범성을 벗어나는데 목적이 있다 하였는데, 스님께서는 걸릴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동산 대본선사는 자다가 갔고, 불인선사는 이야기 하다 갔지. 다 이것은 선정과 지혜의 힘이니 공부들 잘들 하게나.”
혜봉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스스로 잿속에 불사그라지듯 조용히 열반에 드셨다. 고봉 스님은 스승의 수족을 편안히 해드리며 담담히 말했다.
“옛사람도 이렇게 갔고, 지금 사람도 이렇게 갔고, 우리 스님도 이렇게 가셨으니 장차 우리도 이렇게 가리라.”

그리고 나서 고봉 스님은 스승의 열반을 위해 다비문을 읽었다.
“인도에서 오신 달마대사의 뜻이 당당하여 스스로 그 마음 깨끗이 하여 고향에 들어갔습니다. 묘한 몸 담연(淡然)하여 처소가 없으니 산과 물 땅, 참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세상의 빛이로다”

고봉 스님은 늙기 전에 이미 생사의 경계를 훌쩍 뛰어 넘은 분이었다. 고봉 스님은 평소에 곡차라도 한잔 하시고 나면 곧잘 다음과 같은 시를 외우곤 하셨다. 고봉 스님의 ‘십팔번’인 셈이었다.

“강바람은 만고에 나부끼고
산달은 천추에 빛나네.
만고의 천추객이 몇 번이나 풍월루에 올랐던가.
태어나면 기뻐하고
죽으면 슬퍼하니
이것은 모두 뜬구름.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슬퍼하리.”

늘 이렇게 노래하며 유유자적한 가운데 호방한 선풍을 드날리던 고봉 스님이 안국동 선학원에서 향곡 스님을 만났다. 하루는 향곡이 누더기를 깁고 있는 것을 보고 고봉이 물었다.

“바느질을 어떻게 하는고?”
향곡 스님이 대답 대신 바늘로 고봉의 허벅지를 찔렀다. 고봉 스님이 “아야! 아야!”소리를 지르니 향곡이 다시 한 번 찔렀다. 그러자 고봉이 껄껄 웃으며 한마디 했다.

“허허 그 녀석 바느질 잘 하는구나!” 찌르는 사람도, 찔린 사람도 호방한 선풍을 드날린 셈이다.

무엇을 기뻐하고 슬퍼하리

1961년 여름. 세속 나이 72세에 이른 고봉 스님은 서울 미타사의 조실로 계시다가 서울 수유리 화계사로 들어 와 사바세계와의 작별을 준비하고 계셨다.
고봉 스님이 하루는 제자들에게 일렀다.

“들 것을 만들어 오너라.”
“들 것을 왜 만들라는 말씀이신지요?”
“그 들것에 나를 태우고 수유리 골목골목을 한바퀴 돌아보도록 하지.”
“예에? 스님을 들것에 모시고 한바퀴 마을을 돌아 보자구요?”
“그래. 어서 내 시킨대로 해라.”
“무슨 까닭이신지요 스님?”
“천하에 도인으로 소문 난 이 고봉도 이렇게 늙고 병들어 이렇게 빈손으로 간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가려고 그런다. 내 뜻을 알겠느냐?”
고봉 스님은 이 사바세계의 중생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이렇게 남기시고 열반에 들었다.

옛 부처님도 이렇게 가셨고, 옛 조사님들도 이렇게 가셨고, 천하의 도인들도 모두 이렇게 가니 이 세상 모든 중생들도 이렇게 가는 법, 무엇을 욕심내고, 무엇을 기뻐하며, 또 무엇을 슬퍼하리.

윤청광(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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