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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 수행 도반 철 우 - 현 덕 거사

기자명 법보신문
평생 손잡고
별과 달을 벗 삼아
산사길 오르내릴 터



<사진설명>현덕(사진 왼쪽) 거사와 3년전 "평생 수행정진의 원력을 꺽지 말자"며 도반의 인연을 맺었다"

“납자로서 안으로는 고명원대한 식견이 없고, 밖으로는 엄한 스승과 좋은 도반이 없다면 큰 그릇이 되기 어렵다.” 중국 진여선사의 일갈이다.

도반 없으면 큰 그릇 안돼

3년 전 공주 학림사 오등시민선원 개원 때 첫 인연을 맺은 철우·현덕 거사는 평생 동안 수행의 길을 가자며 지금도 함께 새벽녘의 선원을 찾는다. 무엇보다 도반의 인연을 맺으며 어떤 맹세를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솟아났지만 두 거사는 답변 대신 지화암주 선사와 보교 스님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성품이 고결한 선사로 정평이 났던 지화 암주(知和庵主) 선사가 호상 (湖湘) 지방을 행각하던 중 밤이 되어 객실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 때 보교 스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지화선사는 말없이 밤새도록 정좌한 보교스님의 모습을 보고 내심 흐뭇해하며 물었다.

“만 리 길을 왜 혼자 다니십니까?” “예전에는 도반이 있었지만 다 절교했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한 사람은 길에서 주운 돈을 대중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돈을 똥이나 흙처럼 보아야 하는데 비록 주워서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하더라도 아직 이익을 떨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는 헤어졌습니다. 두 번째 도반은 가난하고 병든 어머니를 버리고 도를 닦는다기에 말했습니다. ‘도를 닦아 불조의 경계를 넘어선다 하더라도 불효하는 이를 어디에 쓰겠는가.’ 불효하거나 이익을 따지는 이들은 모두 내 도반이 아닙니다.”

지화 선사는 그의 현명함에 탄복해 함께 행각을 했고, 결국 두 스님은 서로가 옛 선지식 은산 (隱山) 화상을 본받아 산꼭대기에 풀 암자 짓고 구름과 하늘을 내려다보면서 세속에 떨어지지 말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보교스님은 맹세를 어기고 천동사(天童寺) 주지가 되었다. 보교스님이 지화스님을 찾아갔으나 돌아보지도 않았다.

‘하나님’ 믿는 마음도 몰라

철우 거사(본명 신한수 씨)는 대학 2학년 때까지만 해도 기독교 신자였다. 대학 3학년 당시 고시공부를 위해 그는 영광 불갑사 해불암을 찾았는데 그 곳에서 수행 중인 스님들을 보면서도 ‘결국 현실도피 아닌가?’하는 의구심만 일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스스로 단정한 ‘현실도피인’과 차 한 잔을 하게 되자 ‘우상숭배 하는 불자를 일깨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곧바로 선교에 들어갔다. 선교 첫 마디가 흘러나오자 스님은 “충분한 시간을 줄 터이니 나를 선교해 보라”고 했다. 저녁을 넘어서서 밤이 깊어감에도 스님은 그의 선교에 몸짓 하나 흩트리지 않으며 모든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다 했는가?” “예.”
“자네 말은 다 들었으니 이제 내 얘기를 들어보게.” 스님은 곧바로 주먹을 들이밀며 “보이느냐?”고 물었다.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했지만 대답 못할 것도 없었다. “보입니다.” “무엇으로 보는가?” “눈으로 봅니다.” “눈이 너냐?” “예.” 스님은 창문을 열어 젖혔다. 밖은 캄캄했지만 아스라한 석등이 빛을 내고 있었다. “저 석등 불빛이 보이는가?” “예.” 창문을 다시 닫았다. “석등 불빛이 보이는가?” “안 보입니다.” “눈은 창문과 같다. 창문이 어떻게 보는가. 보는 눈은 따로 있다. 누가 보는가?” 아찔해졌다. 그래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마음에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을 짜냈다. “마음이 보는 것 아닙니까?” “그 마음을 내놔 보아라.” 여기서 그는 말문이 완전히 막혔다. 그 동안의 지식이 아무런 소용이 없구나 하는 것을 그 때 절실히 실감했다. 스님의 이어진 한마디가 20여년의 삶을 송두리째 드러내 놓게 하고야 말았다. “하나님을 믿는 그 놈은 무엇인지도 모르는 구나.”

“그 스님의 한마디에 저는 처음으로 불연을 맺었습니다. 내 마음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그것은 청천벽력과도 같았습니다.”

이후 그는 서옹 스님으로부터 받은 ‘이뭣꼬’를 들며 정진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20년 전 쯤 재가 스승 한 분을 만난다. 바로 숭산행원 스님에게 전법게를 내린 고봉 선사가 인정했다는 성암 거사다. 이미 세연을 다했지만 공주의 만석꾼 집안의 아들이었던 성암 거사는 수행에 입문한 후부터는 세속의 물욕은 아예 끊고 마곡사 은적암에 머물며 고봉 스님을 10여년간 모시며 공부해 일가를 이룬 거사로 알려져 있다.

오등시민선원 개원 때 인연

철우 거사가 한 선우의 소개로 만났을 당시의 성암 거사는 이미 80대 중반이었지만 선기가 번뜩이고 있었다고 한다. 성암 거사의 소문이 일면서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이자 ‘청정회’라 이름하고 본격적인 신행활동을 시작했다. 철우 거사는 이 때 심도 있는 공부를 했다고 한다. 철우 거사가 오등시민 선원을 찾은 것은 한 도반의 권유에 의해 2001년 11월 선원 개원 때다.

현덕 거사(본명 김일수 씨)는 수행과의 인연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맺었다. 30대 초반부터 이미 보현불교대학에서 강의를 들으며 교리체계에 대한 기초적인 공부를 쌓았다. 특히 보현행원품 ‘광수공양’ 중 “넓고 크고 잘 깨닫는 이내 맘으로 (我以廣大勝解心) 삼세의 모든 여래 깊이 믿고(深信一切三世佛) 보현보살 행과 원의 크신 힘으로(悉以普賢行願力) 두루두루 부처님께 공양합니다.(普遍供養諸如來)” 가슴에 와 닿아 보살의 원력을 굳게 세웠다. 이후 사경과 기도는 기본 신행으로 삼았던 그는 금강경 독송을 3년간 지속하다가 ‘아상(我相) 인상(人相)’ 대목에서 첫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금강경 독송 3년 후 참선

“아상과 인상, 중생상을 수없이 되뇌었지만 의문을 품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내가 누구이고, 내 마음이 무엇인지, 정말 공이라 한다면 색은 왜 존재할 수밖에 없는지 등의 많은 의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교리 이해만으로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늘 남아 있었습니다. 참선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사력을 다한 정진은 솔직히 해보지 못했던 때입니다.”

공주 대자암 등에서 정진했지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은 오등시민선원 개원 때 입실한 후부터다.

대전에서 거주하고 있는 철우·현덕 거사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새벽 3시와 저녁 8시면 선원을 찾는다. 철우 거사는 “새벽바람을 맞으며 선방을 찾는 청량함을 해 보지 않은 분들은 모를 것”이라며 “텔레비전 보아야 번뇌 덩어리만 한 아름씩 안는 격”이라고 강조한다. 수행의 첫 인연을 어떻게 맺어야 할까? 불자들 대부분이 아직도 수행은 어렵다고만 생각하는데 따른 현덕 거사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종단과 각 사찰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적극 나서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원력입니다. 당장 발은 들여놓지 못하더라도 원력을 버리지 않으면 도반과 도량, 도인과의 인연은 언제든지 맺어질 수 있습니다.”

3년간 지속해 온 두 도반의 이 같은 정진력은 다름 아닌 서로의 격려와 보살핌에서 생긴 것이리라. 아직, 수행의 길에 들어서지 못했다면 도량과 도인을 찾기 전에 가장 가까이 있는 도반의 모습에 눈을 돌려보자. 두 거사의 말처럼 인연은 곧 닿을 것이다.

“TV 시청해야 번뇌만 안을 뿐”

지화 선사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대나무 통에는 두서너 되의 찬물이 흐르고
창문 틈새로는 몇 조각구름이 한가롭다
도인의 살림살이 이만하면 될 뿐인 걸
인간에 머물러 보고 듣고 할 것인가.”
세간출세간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정진하는 철우·현덕 거사의 마음도 이와 같을 것이다.

또한 “호랑이가 포효하면 차가운 바람이 따라 일어나고, 용이 날면 구름도 따라 일어난다”고 했다. 철우·현덕 거사 외에도 정진하고자 하는 도반들이 속속 오등시민선원을 찾고 있다. 대원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오등선원에 승재가의 도반들은 내일 새벽에도 선기의 빛을 발할 것이다. 대기대용(大機大用) 대지대능(大智大能)이 용솟음 치고 있는 듯 하다.

공주=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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