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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원효의 윤리관 上

기자명 법보신문

계율 굴레에서 무애자재했던 ‘참’율사

한국불교사상 가장 자유로운 계율 해석
계를 알기에 오히려 계를 넘나들 수 있어


<사진설명>서당화상비가 발견된 경주 고선사지. 지금은 수몰되어 3층탑만이 경주박물관에 옮겨져 남아있다.

오늘 살펴볼 내용은 원효가 윤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윤리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윤리’를 가장 현실적으로 다뤄온 종교는 유교라 할 수 있습니다. 유교는 그야말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유교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종교가 소위 ‘계(戒)’를 통해서 이를 매우 강조해왔습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계나 윤리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아주 박제화되고, 정예화되고, 교조주의로 흘러 도그마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거의 대부분의 종교가 이런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볼 원효는 이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삼국시대 신라의 원광 법사가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설파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원광의 세속오계를 가지고 윤리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단편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 다음으로 7세기 전반 자장 스님이 계율을 중시해 “내 차라리 하루동안 계율을 지키다 죽더라도 백년동안 계율을 어기고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자장이 계율종을 만들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자장이 갖고 있는 계율관은 원리원칙만을 고집하거나 다소 극단적이라 소승적 요소가 농후합니다.

『삼국유사』 「자장정율조」에 보면 자장이 작은 집을 지어서 가시덤불로 둘러막고 그 속에 발가벗고 앉아서 조금만 움직이면 가시에 찔리도록 했으며, 머리는 들보에 매달아 어두운 정신을 없어지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모습 자체가 자장의 계율관이 소승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입니다. 그의 이런 한계로 인해서 『삼국유사』에서는 자장의 마지막 돌아가는 모습이 상당히 험악하게 그려지고 있고, 폄하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장은 자신을 찾아온 문수보살을 알아보지 못한 것을 한탄해 벼랑에서 몸을 던져 죽었던 것으로 『삼국유사』는 전합니다.

이후 원효가 주로 활동하는 7세기 무렵의 의적(義寂), 성장 그리고 8세기 중반 태현(太賢) 스님 같은 분들이 불교의 계율과 관련해서 상당히 활발하게 연구하고 토론하는 것이 등장합니다. 이는 인환스님의 『신라계율사상사연구』라는 책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 연구서에 따르면 이분들은 상당히 심도있게 계율에 관해 연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고려시대 이후 불교계에서 계율에 대해 심도깊게 생각한 적이 없고, 조선시대 불교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한 유교는 어땠는가. 유교는 계율이나 윤리를 자유롭게 해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을 구속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 이르면 대비가 죽은 후에 상복을 6개월 입을 것인가, 3년 입을 것인가를 가지고 당쟁에 휩싸일 정도였습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노릇입니까. 또 이같이 타이트한 사회적 윤리로 인해 여성들이 얼마나 응어리진 삶을 살았는가 생각해보면 유교의 윤리가 결코 인간에게 유익하게 기능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대체로 굉장히 빡빡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서 원효는 얼마나 자유롭게, 얼마나 크게 해석하고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효는 대승보살계를 중시했습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이라는 이상적인 인간이 등장합니다. 중생과 붓다 사이에 매우 이상적인 인간을 설정할 때 그 이상적인 인간이 보살입니다.

보디사트바(Bodhisattva)란 중생은 중생인데, 그냥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중생이 아니라 각(깨달음)을 향해서 가는 중생을 의미합니다.

그런 보살이 지켜야 하는 계가 바로 보살계인데, 여기에는 10가지 무거운 계와 48가지 가벼운 계가 있습니다.

그 중 10가지 무거운 계[十重戒]로는 살생(殺), 도둑질(盜), 사음(淫), 거짓말(妄),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는 것(不說過罪戒), 술을 파는 것(酒), 자기 자랑을 하고 남을 헐뜯는 것(自讚毁他), 재물과 법에 인색함(惜財法), 다른 사람이 사과를 하는데도 성내는 마음으로 참회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瞋不受悔), 정법의 훼방(謗亂正法)입니다.

그 중에서도 뒤에 4계를 어기면 4바라이라고 해서 교단 추방을 당하는 중죄에 해당합니다.
원효는 보살계에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보살계 즉 대승계라는 의미는 소승계와는 다른 의미입니다. 소승계가 자기 개인적인 이익이나, 개인적인 수행을 목표로 한다면 대승계는 이와는 달리 타인과의 관계, 중생 구제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원효가 대승계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원효의 사상에는 소승계까지도 포용하고 있다는 넉넉함이 있습니다.

계의 목적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나쁜 짓 안하고 좋은 짓하게 하는 작용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계율을 붙여서 부르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계(戒)와 율(律)은 다른 것입니다. 계는 실라(sila)라고 하고, 율은 비나야(vinaya)입니다. 계는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지켜야하는 약속입니다. 이는 형벌을 가하거나 제재를 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반면에 율은 제제가 가해집니다. 교단에서 지켜야할 구체적인 것들을 지칭합니다.

이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 또 있는데, 일곱 부처님이 모두 강조하는 칠불통계(七佛通戒)입니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고(諸惡莫作 重善奉行) 스스로 그 뜻을 맑게 하면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自淨其意 是諸佛敎)이라는 것이 모든 부처님이 설하시는 공통된 계입니다.

보살계 사상을 전하는 경전에는 『범망경』, 『보살지장경』, 『보살영락본업경』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원효는 『범망경』, 『보살영락경』, 『사분율』 등을 연구했습니다. 『사분율』은 소승계를 이야기합니다. 원효는 소승계도 연구하고, 대승계도 연구한 것입니다.

「범망경 보살계본사기」는 상권만 남아 있고, 「보살계본지범요기」 등이 현존합니다. 『보살영락본업경』은 서문과 하권만 남아 있습니다.

『보살영락본업경』이라는 책은 매우 중요한 경전입니다만, 신라에서 어느 누구도 이 경의 중요성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신라에서 원효가 발견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천태 지자 대사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중에서 「보살계본지범요기」는 자찬훼타계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보살영락본업경소」 서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대해와 허공, 나루터와 사다리, 노와 날개가 나오고, 그런가 하면 날라가고 건너고. 내용 자체가 굉장히 조직적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또한 이 글은 전체적으로 댓구를 맞추면서 대단히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원효는 이 시대에 유행하는 병려문이라는 문체로 쓰면서도 원효만의 독특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새끼를 꼬듯이 앞에 말한 것을 뒷쪽으로 가져오고, 뒤에 말한 것을 다시 문장 앞으로 가져와 댓구하는 형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을 승체법(承遞法)이라고 합니다. 새끼를 꼬듯이 표현하는 이 방식 자체가 이미 뜻을 갖고 있습니다.

김형효 교수는 원효의 이같은 표현방식을 프랑스의 철학자 데리다가 시도한 직물짜기 방식(교직성)으로 논리를 전개해나간다는 것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서로 상반된 것들이 직물을 짜 나가듯이 서로 얽히고 교직하면서 오고가는 형식으로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진리 자체가 관계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연기의 또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원효는 일심을 이야기해서 샘물, 바다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서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태극이 서로 꼬리를 물고 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태극기에서는 태극 문양의 꼬리와 머리의 경계가 아주 선명하게 그려져 있지만 사실상 이는 희미하게 서로 맞물려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을 상징합니다.

정리=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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