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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떼이고 난 후에

기자명 법보신문
미움의 감정 보며 깨달은 것은
스스로 번뇌·불행 만들고 있는 ‘나’


돈을 떼였다.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중국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다. 자전거는 몇번 도둑을 맞아봤어도, 물건 살 때 바가지는 종종 써봤어도, 돈을 떼인 것은 처음이다.

돈은 다름이 아닌 전 집주인에게서 떼였다. 중국에서 대학교 기숙사 대신 학교 근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일년 동안 살고 나가려 했더니 보증금의 60%를 떼먹고 연락을 끊어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사는 동안 무슨 벌금을 내게 되었다 하면서 이상한 변명을 하더니 내가 계속 추궁을 하니 말문이 막혔는지 집 전화, 핸드폰 전화 다 끊어 버리고 숨어 버린 것이다.

돈을 떼이고 나니 우선 중국 국내 사정 잘 모르는 어리숙한 외국인들을 이런 식으로 속여먹는 중국인들이 참으로 괘씸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도덕이나 예절을 논하기 전에 최소한의 기본 법규조차 쉽게 무시해 버리는 그들의 뻔뻔함이 싫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작은 일에도 이렇게 나오는데 중국에서 사업하시는 우리나라 사람을 포함한 많은 외국인들이 얼마나 갖은 에로사항이 있을지 눈으로 보지 않고도 충분히 상상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돈을 떼이고 나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내가 불자다 보니 전생에 내가 저 사람 돈을 떼어먹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생에 그 빛을 정리를 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였다. 수행이 아직 덜 돼서 그런지 보증금 문제로 시달린 지난 한달간을 생각하면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 집주인의 뻔뻔한 얼굴이 가끔씩 의식위로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여졌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속으로 관세음보살도 불러 보지만 집주인의 모습과 함께 동반되어 올라오는 미움의 느낌은 생소하면서도 정말로 생생한 감정이었다.

그런데 이런 미움의 감정이 반복되는 동안 내 마음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첫번째로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주먹을 불끈 쥐는 행동은 내 마음의 평화를 여지없이 깨뜨려 버린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미움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나라는 것이다. 집주인이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 일은 과거에 발생했던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자꾸 끄집어내서 속을 앓고 있는 상태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번뇌이고, 또한 스스로를 계속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런 미워하는 사람의 모습을 자꾸 되새기며 분노하는 일은 자칫 다시 다음 생에 그를 또 만나게 되는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워하는 감정에 실려 그 사람의 모습을 이토록 생생히 의식 속에 사진 찍어 놓았는데 다시 만나지 않을리 없고 또 다시 불편한 관계가 성립될 가능성이 많다.

생각이 여기까지 머무니 빨리 그를 용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를 용서해야 된다. 용서가 없으면 내 마음의 평화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용서하기 위해선 놓아야 한다. 떼인 돈, 잠적한 집 주인, 그 동안의 기억을 모두 놓고, 미움의 마음 자리를 보게 해준 법계(法界)에게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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