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三處傳心 확연히 꿰뚫어야[Br]무애자재한 대 선지식

기자명 법보신문

통도사 취운선원장 약 산 스님

“주장자를 이렇게 들어 보이는 도리에서 깨달으면 인간의 스승이 될 것이고, 주장자를 이렇게 내려놓는 도리를 알면 부처님과 모든 조사 스님들의 스승이 될 것입니다. 나는 주장자를 들지도 않고 놓지도 않겠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상당법어를 확연히 깨달아야만 대도를 성취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편적인 선을 하는 입장에서는 자아를 발견하거나 아니면 앉아서 선정을 닦아서 자신의 견해를 잠시 쉬는 것으로써 도를 삼는데 물론 그 정도면 수행이라고 이를 수 있겠습니다.

‘마음 쉬는 것’만으론 안돼

그러나 그냥 ‘쉬는 것’, ‘자아발견’, ‘불성의 자리’라는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삼처전심을 확연히 알아야 깨달음 사람이라 할 수 있고 그런 도인이 자유자재한 선지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마음을 가섭존자에세 세 차례에 걸쳐 전했다는 삼처전심(三處傳心)은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영산회상염화미소(靈山會上拈花微笑) 쌍림열반곽시쌍부(雙林涅槃槨示雙趺)입니다.

첫째는 어째서 부처님께서는 자리가 없음에도 가섭존자를 올라오라고 해서 자리를 같이한 후 가사로 몸을 둘러서 한 몸을 지었겠습니까? 이것이 부처님께서 가섭 존자에게 최초로 전한 선의 도리입니다.

두 번째는 법화경을 설한 영산회상입니다. 대범천왕이 천우사화라는 꽃을 가지고 와서 부처님에게 공양 올리며 ‘제가 부처님 법문을 하시는 자리에 몸을 굽어서 법상이 되어 드릴 테니 내 법상 위에 올라앉아 인천 대중을 위해 법문을 해 주십시오’했습니다. 그래서 대범천왕이 몸을 굽어서 법상을 지었는데, 법상에 오른 부처님이 대범천왕이 올린 꽃을 올려 보이셨습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와 1200아라한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었지만 그 소식을 몰랐습니다. 이 때 가섭 존자가 부처님의 꽃 든 도리를 알고 빙긋이 웃자 부처님은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천대중은 부처님 가사와 바리때는 분명히 눈에 보이지만 그 부촉한 법은 보이지 않아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두 번째로 선의 묘한 이치를 전해주신 경우입니다.

부처님께서 45년 설법을 다 하시고 사라쌍수 나무 아래서 열반에 드시자 모든 인천 대중이 슬퍼하고 있는데 가섭 존자만은 오시지 못하셨습니다. 7일 만에 도착한 가섭 존자는 부처님의 법구 주위를 세 번 돌고 부처님의 발아래 서자 부처님께서는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미셨습니다. 가섭존자께서 이에 예배 했습니다.

역시나 부처님 10대 제자를 비롯한 인천의 대중은 발을 내미신 부처님의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두 발을 내민 도리가 부처님이 세 번째로 보이신 선의 묘한 도리입니다.

선나와 사마타를 닦는 것이 선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삼처전심의 도리를 확연히 꿰뚫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미 경전에 진여, 해탈, 불성, 열반, 여래 등의 모든 법을 이미 설해 놨지만 아라한과를 얻은 대중도 부처님이 전한 묘한 도리는 알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경장을 암송했다는 아난존자도 삼처전심의 이치는 알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삼처전심을 알아야 합니다.

선은 삼처의 정신을 근본으로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왜 세 번에 걸쳐 마음을 전했을까요? 마음은 하나이지 셋이 아니요, 법도 하나이지 셋이 아니지 않습니까? 법과 마음이 하나임에도 세 번을 전한 이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공과 연기의 도리를 안다고 하는 수행인에게도 이 삼처전심을 들이대면 입이 딱 얼어붙습니다.

왜 두 발을 내밀었는가?

이 세 마디를 분명하게 투철해서 그 도리에 답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세 가지 도리를 모아서 한꺼번에 대답하는 도리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도인이 될 수 있고 대 선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수박 겉핥기식 공부에 그쳐 이게 이 소리이겠지, 이게 이런 도리이겠지, 이것도 불교이겠지 하는 식의 뜬 구름 잡는 알음알이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좋은 일 하지 말라는 종교가 어디 있겠습니까? 종교가 아니라도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도 시종일관 명을 다할 때까지 좋은 일 하고 착하게 살라고 하는 것이 기본인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다 종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런 정도로 도를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도라는 것은 분명히 이와 같은 법칙과 진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도를 분명히 관찰하고 배워야 합니다. 깨달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삼처전심을 확연히 깨달아 알 때 자기 자신이 스스로 부처를 알 수 있습니다. 삼처전심의 도리를 지금 이 자리에서 전해도 여러분들은 물론 수행인들도 알아듣기 어려울 것입니다. 선법문을 계속 듣고 참구해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는 삼처전심의 초입만을 말해 보겟습니다.

부처님은 처음에 자리를 나누어서 한 자리를 지었고 두 번째로 주장자를 들어 보이듯이 꽃을 들어 보이셨고 세 번째는 두 발을 내밀었습니다. 어째서 부처님은 가섭존자와 자신의 몸이 다른데 하나로 짓게 했을까요? 그 자리는 본래 하나입니다. 분반자가 아니라 동자입니다. 그리고는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셨습니다. 선문에서는 꽃을 들어 보인 이것이 종지가 됩니다. 세 번째는 두 발을 내밀었는데, 손도 있고 머리도 있는데 왜 하필 두 발을 내밀었을까요? 이것을 확연히 알아야 합니다.

제가 주장자 들었다가 놓았지 않습니까? 주장자를 드는 것 보다 놓는 데 더 높은 도리가 담겨 있습니다. 주장자 들어 보이는 순간 소식을 알면 부처님 경지이지만 주장자를 놓는 순간 소식을 알면 불조의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부처가 되는 도리도 그만 두고, 부처의 스승이 되는 도리도 그만 두고, 더 한 단계 올라가서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은 부처가 되기도 싫고, 부처의 스승도 하지 아니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출격장부요 격외지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어째서 부처님 보다 더 훌륭한 선지식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부처님 말씀보다 더 훌륭한 말이 있단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처님 법보다 훌륭한 법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보면 부처님이 설하신 법 안에 모두 포함되는 말입니다.

이해-기도만으론 부족

팔만대장경 안에 ‘뜰 앞의 잣나무’다, ‘마른 똥막대기’다 하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선은 ‘무’, ‘판치생모’라는 말로 선의 황금시대를 열었습니다. 바로 이 점입니다. 부처란 무엇이냐? 불법이란 무엇이냐? 물었을 때 경전에 나온 이야기 들려 주어도 견성하기 힘듭니다. 왜냐? 자신이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국 선사들은 ‘부처가 무엇이냐’물었을 때 진여다, 공이다, 불성이다 하지 않고 ‘마른 똥막대기’했습니다. 야, 어째서 부처가 마른 똥막대기냐? 부처는 청정하고 고상하고 절대적인데 그 똥 냄새나는 똥막대기가 부처란 말이냐? 그러면 청정법신이 될 수가 없지 않느냐? 하는 의문이 새록새록 나옵니다. 여기서 수행인들은 자기만의 공부를 시작합니다. 바로 이 점입니다. 경전 속의 법이 새로운 힘을 얻어 기백 충만한 법으로 새롭게 숨쉬는 겁니다.

주장자 들어 보인 것을 안 사람은 부처요, 내려놓는 것을 안 사람은 불조의 스승이라 한 말의 속 뜻을 조금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주장자를 들지도 내려놓지도 않겠다는 자유인에 대해 조금은 이해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삼처전심은 그래서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중국의 선 보다 더 발전한 선의 황금시대를 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은 안 됩니다. 선의 도리를 알려고 하는 수행인들이 나오고, 나아가 대 선지식도 출현해야만 합니다. 저는 참회해서 업장을 녹이라 하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겠다는 그 원력만큼은 생을 다할 때까지 간직해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부산지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약산 스님은

약산 스님은 2003년 열반한 통도사 방장 월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스님은 전국 제방 선방에서 50여 안거를 성만했으며 통도사 보광선원 선원장에 이어 지난 5월부터 재가 불자들의 수행도량인 통도사 취운선원 선원장을 맡아 재가 불자들을 제접하고 있다.
약산 스님은 10월 16일 입제법문을 시작으로 매월 첫째 주와 셋째 주 일요일 오후 1시 30분부터 통도사 취운선원에서 간화선·조사선 설선 대법회를 통해 법문한다. 약산 스님이 집필한 선문대전을 교재로 활용하며 2006년부터는 매주 법문을 설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