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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佛田-小佛畓 일구며[br]법음을 심고 가꿉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농선(農禪) 최 병 호 법사

새 수행공동체-귀농 센터 모델 창출에 진력
직접 식물종자 배양…화훼-축산-작물 실험


“시농선(示農禪) 거사/ 논밭 없다 하소연 마소/ 대불전(大佛田) 소불답(小佛畓) 참선밭이니/부지런히 소나 몰고 들바람 쏘이게”
동국대학교 목정배 명예교수는 최병호 법사의 포부를 듣자마자 그 자리서 ‘농선’이라는 법명을 내렸다.
농선(農禪). 선가의 선농일여(禪農一如) 내음이 짙게 배인 법명이다.


농선 최병호 법사(42세)는 지금, 11월의 늦가을 들녘을 거닐며 봉화 희방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음껏 들이키고 있다.

경북 봉화 상운면 하눌리 마을에 웅지를 튼 지 10년.
농선 법사가 선농의 원력을 세운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다.
“허리가 굽고 무릎이 아파 어쩔 줄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님들을 보면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산과 들이 있는 농촌이 그 어느 세상보다 좋았지만 빈곤한 현실에서 묻어나오는 고난 또한 역력히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꼭 귀향해 새로운 농촌의 삶을 일구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후부터 농선 법사는 오직 한 길로만 걸었다. 부산대학교 농업대 농업미생물학과에 진학한 그는 휴학을 세 번이나 했다. 그가 체험한 농촌의 현실과 대학에서 배우는 이론 차이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휴학 동안에는 돼지 기르는 축산 농가를 비롯해 각종 작물을 키우는 농가로 들어가 농업 전반을 체득해 갔다. 졸업 후에도 한 목장에 취직(?)해 젖소 380여 마리와 2년 동안 동고동락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무작정 귀농 했을 경우 실패할 확률은 너무 높습니다. 최소의 시행착오를 위해 많은 경험을 축적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대학시절 『부처님의 유언』으로 유명한 공파 스님 아래서 치열하게 수학하며 법음을 새겨갔다. 지금의 아내 역시 함께 공부하며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농선 법사는 지금도 “목정배 교수님을 만남으로써 포교의 중요성을 새삼 깨우쳤고, 공파 스님과의 인연이 불교의 진면목을 보는 눈을 뜨게 했다”고 말한다.
그의 이러한 역량이 한데 결집된 것은 지난 10년 전인 1996년. 관음사 원통전과 법보전, 설법전을 재정비 하며 본격적인 선농일여의 싹을 띄우기 시작했다. 경내 주위 2천여평의 밭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과일과 농작물, 동양난을 비롯한 식충식물 등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의 실험실 방 한 켠에는 식물 종자를 담은 병들이 가득하다. 직접 배양까지 해 내고 있는 것이다.

관음사가 해야 할 역할도 올곧게 수행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100일기도는 물론 어린이불교학교, 사찰 수련회 등도 이끌고 있는가 하면, 봉화군 지역혁신 협의회 인재양성 분과 간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봉화군장학회, 농업경영인회, 새벽을 여는 아름다운 청소년 모임 이사, 제50사단 법사, 청송 안동 교도소 교화위원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1년 365일도 그에게는 하루로 느껴질 법 하다. “하루 네 시간 잠자기도 쉽지 않다”는 농선 법사.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자애로운 미소가 가득하다.

농선 법사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동네일은 모두 도맡고 있다. 고향 마을에 퍼져 있는 논과 밭 치고 농선 법사의 트랙터가 한 번 쯤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집 보일러가 터져도 그의 몫이요, 초상집 염불과 염도 그의 몫이다.

‘농선’이라는 한 인물은 이렇듯 때로는 법사로서, 때로는 농군으로서, 때로는 지역 지도자로서 봉화 주민들 앞에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농사 하나만도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함에도 이처럼 세 가지 일을 모두 자비심으로 실천하고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관세음보살님이 농사를 지으신다면 어떻게 지으셨을까요?”
관세음보살님이 정치를 하신다면 어떻게 하실까? 아니, 석가모니 부처님이 공무원 행정 업무를 맡으면 어떻게 처리 하실까? 부처님이 일선 교육현장에 선다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실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저라고 해서 어떤 특별한 힘이 따로 있겠습니까? 다만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아와 연기의 눈을 통해 생명을 보려 할 뿐입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모두 삼독으로 꽉 찬 바위가 되려고만 합니다. 아상을 세워 아만을 부리려 합니다. 저도 때로는 바위가 되려 합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정견을 세우려 기도 하고 경전을 읽습니다.”

그래서 일까? 농선 법사는 수련회 때나 정기 법회 때 꼭 자자와 포살을 빼놓지 않는다. 그 시간에는 농선 법사가 제일 먼저 바위가 되려 했던 순간을 참회한다. 참회 하지 않으며 자신을 정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란다. 수련회도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108배 하고 명상 하고 난 후에는 호미와 괭이를 들고 밭으로 향할 뿐이다. 그들이 자신 이외의 또 다른 생명과 마주하며 자연스럽게 나오는 느낌을 간직하면 그 뿐이라는 것이다.

“밭에 나가기 전에 반야바라밀을 생각해 보라고 권해 봅니다. 어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밭을 일구며 반야바라밀에 대해 법담을 나누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생활 속에서 부처님 말씀을 실천한 이야도 주고받습니다. 어떤 이들은 화두를 든 듯 묵묵히 땅 만 파는 분들도 계십니다. 다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밭을 일구는 지금의 마음이지 않습니까?”

100일 정진 기간 중에도 매일 법당을 찾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일기 책자를 제작해 집에서 정진 할 수 있도록 했다. 처음 3년에는 팔상록을, 다음 3년에는 정토삼부경을, 올해는 아함경을 주제로 한 수행일기를 배포했다. 수행일기에는 매일 독송하며 뜻을 새겨보는 경전 구절이 있고 하단에는 당일 수행 체험을 일기 형식으로 써놓도록 했다.

선농 법사의 꿈은 관음사 도량을 수행 공동체 도량으로 가꾸는 것은 물론 귀농센터로 자리매김 하는 것이다. 각종 농작물을 재배하고 종자배양을 하며 화훼 실험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귀농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농 법사는 봉화와 인근의 풍기 영주는 물론 전국 각지의 농가단지는 물론 농업 전문가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귀농 의지가 있는 분이 관음사를 찾았을 경우 일정 기간 이론과 현장 교육을 할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자신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으면 실제 농가로 보내 실습 하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정하면 어느 지역으로 가야 적당한지도 함께 연구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농선 법사는 봉화 지역의 농가 경제 현실은 물론 빈 집과 땅, 인력 수급 문제 까지도 심도 있게 조사할 계획이다.

1998년 이후 조성됐던 귀농. 그러나 지금 현 시점에서 굳이 평가한다면 실패나 다름없다. 이러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새로운 형태의 귀농 창출에 고념하는 연유는 어디에 있을까?

“인드라망을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2,3차 산업이 아무리 발전해도 1차 산업이 흔들리면 산업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입니다. 농촌을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대책은 누구도 쉽게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농사를 짓고 귀농 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행공동체 도량과 새 형태의 귀농 모델 창출, 그리고 농촌의 발전. 이상과 현실의 접점을 찾으려 오늘도 그는 들녘을 걷는다. 길을 걷다가 함박웃음을 던지며 던진 농선 법사의 한마디가 ‘꿈의 실현’을 예감케 한다.

“희생한다 생각본 적 없습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일 뿐입니다.”
농선 법사는 법당 뒤편의 부지를 가리켰다. 농선길에 함께 오를 도반 다섯 가구가 살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관음사 도량을 아담한 공원처럼 새롭게 가꾸고, 수련회 공간을 마련한 후에는 아주 작은 공동체 형성부터 시작하겠다는 소망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농선 법사의 작은 울림은 큰 울림으로 우리 사회에 퍼져 갈 것이다. 인드라망의 한 구슬이 전 구슬을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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