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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과 부족의 즐거움

기자명 법보신문
행복은 욕심 충족시키는데서 오지 않아
부족함과 불편함을 선택하면 행복하다


오늘 아침은 이른 추위가 한창이다. 얼마 전 무슨 무슨 일로 고생했다고 기념으로 얻어 입게 된 겨울철 누비 두루마기를 꺼내 입고 그 기쁨에 오전 내내 도량 주위를 서성였다. 누비 두루마기를 입고 낙엽을 쓸다보니 지치지도 않고 쓰는 일이 그렇게도 홀가분했다. 작년 겨울 도반스님이 신도님께 얻었다며 누비두루마기를 입고 ‘이거 하나 있으니까 얼마나 든든한 지 모른다’고 했을 때 내심 얼마나 부러웠는지.

가만 생각해 보면 처음 출가하던 때부터 든든한 누비두루마기가 그렇게 갖고 싶었다. 처음에는 형편이 넉넉치 못해 사 입지 못하다가 이제와서는 문득 깨달은 게 있어 사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는 중이었다. 사려고 했다면이야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그것 하나 사 입지 못했겠나. 그런데 일부러 그냥 놔 두고 지냈다. 사고 싶다고 그 때 그 때 휙 사 버리면 그다지 감사하지도 않고 풋풋하고 애정어린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몇몇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될 수 있다면 정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안 사려고 하고, 불편하게 지내는 법을 익혀보려고 한다. 불편한 즐거움을 요즘 들어 새록 새록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한동안 불편하다가 꼭 필요할 때 사게 되면 그 때 느끼는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어릴 적에는 수박이 왜 그리 맛있었는지. 요즘 먹는 수박 맛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여름의 초입에서 ‘올 여름은 수박 한 조각 먹을 수 있겠나’ 하고 생각했을 정도로 수박 한 통 마음껏 먹기가 어려웠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게 다 부족해서 그랬던 것이지 다른 게 아닌 것 같다. 부족하면 그 안에 행복이 있다. 풍족한데 행복이 있는 게 아니라 부족한 거기에서 짠한 행복감은 밀려오는 법이다.

여름철 뿐인가, 겨울은 또 어떻고. 겨울철 교실에 누군가가 귤 하나를 가져와서 몰래 까서는 친한 친구들만 한 조각씩 나누어 줄 때 그것 하나 얻어 먹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조용하던 교실에 누군가 귤 껍질 하나 까게 되면 그 감미롭고 상큼한 향기가 초등학교 온 교실을 미치도록 만들었다. 그 때가 참 좋았다. 그건 부족해서 그랬던 거지 다른 게 아니다.

모든 게 다 그렇다. 세상이 풍족해 지니까 마음은 점점 더 허해지기만 한다. 우리들 가슴이 넘쳐나는 것들로 인해 점점 더 헛헛해져만 간다. 풍요로움이 오히려 정신의 가난을 가져왔다. 그것이 다 불편과 부족의 정신을 잊어가는데서 오는 공허감이다.

행복은 욕심을 쉽게 충족시키는데서 오지 않고 불편을, 부족을 스스로 선택하는데서 온다. 불편하다는 것, 조금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요즘같은 넘치는 소비시대에 더없이 필요한 삶의 청규다. 세상은 지금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로 인한 열병을 앓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덜 사고, 덜 쓰고, 덜 버리는 일이 넘침으로 인해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유일한 양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불편해도 좀 참아보라. 갖고 싶어도 좀 기다려 보라. 부족해도 좀 견디어 보라. 묵묵히 마음을 비우고 욕망의 흐름을 거슬러 보라. 그 속에 존재의 깊은 풍요가 있다. 나아가 세상을 살릴 길이 있고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희망의 빛이 있다.

법상 스님 buda1109@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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