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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햇빛 하늘에 오르다

기자명 법보신문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의 취임을 축하하며

“장삼에 국민 한 명 한 명 품어 안는 화합 보이길”
“틀에 얽매인 선거로 행정수반 선출함은 아쉬워


사람살이에는 정신과 육체라는 두 갈래의 길이 항시 열려 있어, 이 두 갈래의 길이 적정한 발걸음의 폭을 유지해야 균형을 잡을 수가 있다. 이럴 때 정신적 길을 열어 주는 몫을 할 수 있는 것이 종교이고, 육체적 삶의 길을 열어 주는 몫을 하는 것이 정치일 것 같다. 우리의 역사에서 이 두 갈래의 길이 균형 잡혀 비교적 한때의 사회적 안정을 누렸던 시기는 고려시대였다. 이런 시각에서 필자에게 주목되는 것은 성종이 즉위하자 시대적 급무를 28 조의 시무책(時務策)으로 올린 최승로(崔承老)의 상소문이다.

그는 시무책의 한 갈래에서 이렇게 말한다. “3교는 각각의 원업이 있으니 이를 혼합하여 하나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불교를 실행하는 것은 몸닦음이 근본이고 유교를 실행함은 나라 다스림의 근원이라” 한다. 그러니까 임금으로서 백성을 인도하려면 이 두 길을 적절히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승로의 이러한 결론은 당시 승려들의 지나친 사치스러움을 열거한 후에 내린 결론이다. 불교인의 잘못된 자세를 지적함에 있어서, 양(梁)나라 무제의 숭불을 “무제는 천자의 지존으로 필부의 선행을 닦은 것이 잘못됨으로 지적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라 하였으니, 군왕이 가져야할 자세를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불교와 유교의 두 축을 하나는 수신이요 하나는 치국이라는 틀로 제시하는 것도 이러한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섭렵하면서 내리는 결론이다. 고려시대를 불교국가라는 안이한 자리매김으로 단정 하는 것은 너무나 피상적 시각이다. 만약 불교적 이념만이 고려인의 육체적 삶에 즐거움을 누리게 했다 한다면, 이는 치국의 근본 도구인 유교로 국가 질서를 이끌어 갔던 힘을 망각하는 편견이 된다.

오늘날의 시대는 다종교의 시대이면서, 신앙의 자유라는 민주적 사회 이념으로 누구나 종교적 믿음을 마음껏 누릴 수가 있다. 이런 중에서 불교는 우리 역사 속의 유원한 배경으로 항시 선두의 자리를 가지려 하고, 또 명실상부하게 상위의 종교임에는 틀림이 없다. 역사적으로 쌍벽을 이루었던 유교가 비록 종교적 신앙의 대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사회 질서를 지탱해 줄 수 있는 힘은 여전히 강하다. 시대가 지날수록 최승로의 사회 견인적 유불 쌍두마차의 진언은 빛을 더해간다. 다종교적 시대에 어느 특정종교에 기대한다는 편견을 나무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역사적 배경이나 불교의 포용성을 생각한다면 이런 요구가 결코 편향됨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런데 불교계에서도 사회적 제도의 틀에 얽매여 행정의 수반을 선출적 방식인 선거를 해야 한다함은 필자의 마음속에는 좀 섭섭한 감이 있다. 선출이 아닌 추대의 떠받들림은 안 되는가. 누구나 언필칭 민주주의 실현은 선거요, 그것이 민주주의의 꽃으로 여기기도 하나, 선거에 따른 불가피한 승패의 결과 앞에서 두 쪽의 패거리적 쓴 열매를 맛보아야 하니 그 씁쓸한 후유증의 감내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인류를 보듬어야 할 불교계에서 이런 선출방법을 도입한다면, 세속의 앞자리에서 진리를 제공해야할 정신적 지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어찌되었건 염려 속에서 평온히 이루어낸 조계종총무원장의 선출에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지도자의 위치는 자리에 있다기보다는 당사자의 인격에 있다 해야 할 것이니, 총무원장 스님이 제1성으로 언급하신 화합종단을 넘어서, 신앙이 다른 종교도 말할 것 없거니와 국민 하나하나를 스님의 장삼 안으로 품어 주시길 바란다. 언변이 모자라 진각국사의 설날 상당법어를 인용하여 축원을 올린다.

신년의 불법을 그대들을 위해 베푸노니 / 대지의 풍류가 기상도 드넓구나 / 묵은 장애 옛 앙금 끓는 물의 눈처럼 / 신령스런 빛 두루 비쳐 해 하늘에 솟다.(新年佛法爲君宣 大地風流氣浩然 宿障舊殃湯沃雪 神光遍照日昇天)

스님께 부처님의 가피가 항상 같이하시기를 빌며.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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