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7 자살사례 유형별 분석 :‘10억 신드롬’

기자명 법보신문

‘인생역전’의 함정

‘10억 만들기 신드롬’에 빠진 부녀가 재산을 모두 탕진하자 딸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아버지는 딸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쇠고랑을 차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내 최고의 통신사에 최연소 합격해 승승 장구하던 A(30)씨는 1996년 이혼한 아버지 B(57)씨와 함께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서 옥탑방 생활을 시작했다. A씨는 아버지가 14년간 지방세무공무원 생활을 했지만 빈털터리였기 때문에 모든 생계를 책임졌다. A씨는 그러나 격무에 시달리는데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자리에서 번번이 미끄러지자 지난해 5월 갑자기 사표를 냈다. 팀장까지 맡으며 건실한 생활을 했지만 대학 중퇴인 자신에겐 더 이상의 승진은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퇴사한 A씨는 최근 몇 년 사이 서민들의 인생목표가 되다시피 한 ‘10억원 만들기’에 골몰했고 재취업은 관심 밖이었다. A씨는 아버지에게 “1년 내 10억원을 만들지 못하면 같이 죽자”고 했고 아버지도 “그러자”고 다짐했다.

수중에 있는 전재산 A씨 퇴직금 5,000만원 가운데 2,500만원을 투기성이 강한 코스닥업체 주식에 투자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식을 샀다가 다시 되파는 초단타 매매를 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깡통계좌 뿐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한 통계분석으로 숫자를 찍어 매주 로또에도 30만원씩 투자했지만 당첨금이 100만 원 정도인 3등에 3번 당첨됐을 뿐이다. 결국 이들의 통장계좌 잔고는 지난달 22일 ‘0’가 됐다. 부녀는 이날 옥탑방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다 A씨가 먼저 목숨을 끊으면 아버지 B씨가 시신을 수습하고 뒤따르기로 했다. A씨는 ‘이제 갈 때가 돼서 갑니다’ 라는 유서를 남긴 뒤 넥타이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는 이틀 동안 딸의 시신을 옆에 두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술을 마시다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월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에 의해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10억 만들기’는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하지 않는 이들에겐 신기루일 뿐임을 보여준 사건일 뿐이다.

한 방에 행복을 살 수 있다는 로또 복권의 광고 문구는 ‘인생역전’이었다. 과연 로또 당선으로 인생이 역전될 수 있을까. 로또 1등 당선으로 2003년에 34억 당첨금을 받은 40대 전씨가 장물을 처분해오다 2005년 6월23일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취직도 안되고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세 차례 감방에 갔다 나왔는데, 어느 날 별 생각 없이 로또를 샀다가 기적적으로 인생 역전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 날 이후 전 씨 인생은 달라졌다. 당첨금 34억 중 세금 7억7천이었고 복지관에 3억을 기부했다. 늘 주변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로 하루하루가 시달림의 연속이었다. 친척들에게 준 돈을 빼면 약 20억.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그가 소요한 재산은 전세금 6천만원 정도, 나머지는 모두 사기를 당했다. 남편 전 씨는 전문털이범에게 귀금속 3천4백만 원어치를 사들이는 등 1억7천만 원어치 장물을 취급해오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부인은 5년 전 북한에서 넘어온 탈북자였다. 2004년 10월 전 씨와 재혼했다. 그녀는 로또 당첨된 이후 사람들이 무서워졌다면서 로또 당첨이 대박이 아니라 행복을 빼앗아간 결정타였다고 통곡을 했다. “목숨을 걸고 온 이 나라에서 남편마저 감옥에 들어가는 일이 일어났다. 로또 당첨되는 순간부터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남편도 내 옆에 없는 상황이다. 무섭다, 한국이 무섭다.”

로또 1등 당선된다 해도, 인생이 역전되기는커녕 또 다른 불행만 시작된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지만 돈은 목표가 아니고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돈이 많더라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 더 큰 불행만 자초한다. 미국에서 몇 백만 달러의 복권에 당선된 사람이 있었는데 얼마 지나자 몇 백만 달러 빚쟁이로 전략된 사례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돈이 우리 사회에 유일한 가치기준이 되어 인간의 주인 행세를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지만, 그런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돈은 누구에게든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이다. 돈은 행복을 실현하는 수단일 뿐이지 결코 삶의 유일한 가치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