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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신라하대 주류사상은 선종일까 화엄종일까?

기자명 법보신문
이능화-최병헌 등 “신라 하대 주류, 선종”주장
김상현-고익진 등 “상호 견제 속 공존” 반박


귀족들의 부패와 왕위 쟁탈 등 고대 사회가 안고 있던 여러 모순이 표출되면서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이 거듭되던 신라하대. 이 시기 불교계에서도 일대 변화가 시도된다. 즉 새로운 불교사상으로 도입된 선종(禪宗)이 사상적 주류를 이루던 교종(敎宗)인 화엄종의 한계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로 인해 기득권을 누리던 화엄종은 위축됐고, 존립기반 전체가 흔들려 선종이 신라 하대 주된 사상체계로 자리 매김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1920년대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를 통해 “신라 헌덕왕(憲德王, 809∼826) 이후 고려 초에 이르기까지 선종이 홀로 세력을 누렸으며 교학의 제종(諸宗)은 힘이 다함에 묻히고, 강경(講經)의 승려는 적막하기만 했다”고 기술하면서 신라 하대 선종의 전래는 곧 화엄종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이후 일부 사학자들이 불교계의 문제를 사상적 측면보다는 정치사회적인 변화와 관련지어 연구하면서, “정치적으로 혼란한 신라하대 선종의 등장으로 교종의 세력은 위축돼 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서울대 최병헌 교수는 「신라하대 선종 구산파의 성립」(1972, 「한국사연구」7)과 「나말여초 선종의 사회적 성격」(1975, 「사학연구」25)이라는 논문을 통해 “신라하대 새로운 불교인 선종의 등장은 기성 사상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각 개인이 스스로 사색해 진리를 깨닫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것이었다”면서 “이는 일반 민중과 유리돼 어려운 교학만을 다루던 귀족 중심의 교종이나 미신화 된 샤머니즘적 불교의 모순 극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또 “선종의 성립은 화엄종을 비롯한 교종의 기성사상 체계에 대한 반발과 동시에 사상적인 면에서는 관념적이거나 미신적인 교종의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이었고 또한 지역적인 면에서도 도시 중심의 불교를 각 지방에 확장 발전시켰다”고 밝혔다. 즉 신라하대 화엄종의 모순을 반성하고 극복하려는 새로운 사상체계로서 선종이 받아들여졌고 이로 인해 선종이 나말여초에 와서 전국에 걸쳐 크게 유포된 요인이 됐다는 점이다.

이 같은 견해는 이후 김사언, 한기두 등 일부사학자들이 동조하면서 통설로 굳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동국대 김상현 교수는 1989년 「신라하대 화엄사상과 선사상-그 갈등과 공존」(「신라문화」6)이라는 논문을 통해 기존 견해에 이견을 제시했다. 그는 논문에서 “선종이 본격적으로 수용되고 그 세력이 확대됨에 따라 교종은 많은 충격을 받고 어느 정도 위축된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 존립 기반 자체가 완전히 흔들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김 교수는 “이 시기 대부분의 화엄종 사찰이 그대로 유지됐고, 범체(梵體), 석징(釋澄), 정행(正行), 결언(決言) 등 대표적인 화엄종 승려들이 여전히 활동했다는 점은 신라 말에도 화엄신앙이 폭넓게 수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특히 균여(均如)가 강보에 싸여 『화엄경』 게송을 잘 읽었다든가, 그가 집에서 ‘화엄 육지의 오백문답(華嚴 六地義 五白問答)’을 암송했더니, 누이 수명(秀明)이 엿듣고 즉시 해독했다는 일화는 여전히 화엄이 강조됐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고익진 교수도 “신라 하대 선(禪)이 화엄교학을 완전히 넘어뜨리지 못했다”며 “이는 선과 화엄이 교리상 상호 배척적이지만 서로 통할 수밖에 없고, 선의 추상적이고 현실적인 세계관이 지닌 한계성 때문에 교를 완전히 배척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김복순, 추만호 등의 학자들도 의견을 같이했다.

신라하대 불교계의 주된 사상이 화엄인지, 선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지만, 선종의 전래로 화엄이 존립기반을 완전히 잃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현재 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는 나말 여초 시기 일시적으로 선종의 비판으로 화엄종이 다소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고려 때 5교 9산이 성립되고 화엄의 전통을 균여가 이어받은 정황 등을 고려하면 신라 하대 화엄과 선은 서로 상호 견제 속에서 공존했을 것이라는 것이 설득력이 높기 때문이다.

권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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