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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 농담은 긴장을 푼다

기자명 법보신문
농담도 수용 못하는 ‘답답한’ 고도 지식 사회
격식 넘어선 치열한 공안이 숨통 트여주는 듯


사물 존재에는 항시 양면성이 있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어 낮이 더 밝고, 밤이 있으면 낮이 있어 더 어둡다. 사람살이에도 긍정적인 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악도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악이 있어 선의 가치를 더 돕는다면 이를 어쩔 수 없이 필요악이라 할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은 결정지어진 미래가 보장되지 않기에 항시 긴장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긴장을 잠시나마 풀어보려고 일하는 사이마다 휴식의 짬을 갖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술은 사람의 본성을 해치는 약(伐性之藥벌성지약)이라 하여 되도록 경계하고 있지만 술만큼 사랑을 받는 음식도 없을 것이다. 이는 삶의 틈틈에 긴장을 완회시키는 효과와 상승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긴장을 완화하는 언어수단으로 무시 못할 것이 바로 농담(弄談)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장난삼아하는 말, 또는 희롱삼아 하는 말 정도일 것이다. 서구적 용어를 빈다면, 조크(joke)이거나 유머(humour)일 것이다. 체면이나 격식을 차리느라 굳어 있는 생각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 말하는 이나 듣는 이에게 뜻밖의 웃음을 주거나, 또는 당혹감을 주어 순간적으로 모든 의식작용을 좀 멈추게 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는 격의 없는 농담이 사라졌다. 격의가 없으려면 지나친 격식의 엄숙함이 없어야 할 듯하다. 모든 것이 법적 이론으로 무장된 사회이기에 이러한 언언적 여유의 유머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성의 즐거움이란 우선 언어적 교환에서부터 즐거움으로 오고갈 터인데 귀여움을 느껴 귀엽다거나 아름답다 했다 하여 언어적 성희롱이라 지탄한다. 격의 없음의 무의도가 바로 유의도적 법리로 상황을 반전해 버리니, 잠시라도 긴장을 느출 수 없다. 문명사회의 산물인 고도의 지식화가 오히려 삶을 답답하게 함은 아닌지.

지난날 무식하리만큼 우직했던 화법을 하나 소개해 보자.
우리 농촌의 시골에는 5일장이라는 시장이 서서 주변 칠·팔십리에서 물물교환을 위해 남녀노소가 모여 든다. 아낙네는 머리에 이고 사내들은 등에 지고 먼 길을 가니 따분하기도 하다. 이럴 때 체면차리는 말은 귀찮다. 실없다 할 농담이나 해 보는 것이다. 앞서 가는 아낙네의 치마 뒷 폭이 바람에 휙 날리니 이 여인의 속옷이 들어났다. 뒤따르던 영감이

“어이 앞 집에 대문이 열렸네” 하였다.
아낙은 태연하게
“뒷 집 강아지 아니었더라면 도둑맞을 뻔했네”하며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런 익살스러움, 이를 일러 유머라 해야 할 것이다. 동행했던 모든 이는 이 대화에서 잠시나마 숨통이 트여 한바탕 웃고 말았다. 여인은 대문이 열렸고 영감은 별안간 강아지가 되었지만 그저 웃고 즐기는 장면만이 남았다.

이 숨통트임의 화법에서 스님들의 화법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선적 문답의 공안은 격의 없음을 넘은 격식 밖의 언어가 아닌가. 일상의 놀리적 문맥이 무시된 즉석 즉시적 상황의 반전이니, 통상적 의식을 잠시 멈추지 않고서는 교통이 불가능하다. 멈춰진 교통에서 새로운 교통로를 찾은 언어이기에 앞뒤의 논리가 일상의 논리로는 설명이 되지 않지만, 막혔다 트인 언어의 희열은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통쾌함이다. 이것이 진리 탐구의 언어이었다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니, 여기서 우리는 언어부정 속의 언어인 선문답이 귀함을 알겠다. 부처님이 오신 뜻이 무엇인가 물을 때 “차 한잔 마시고 가게”한다든가. “낚시질은 왜 해 강물을 통째로 마시지” 함은 격식을 뛰어넘은 언어이기에 당혹감을 느낀 뒤의 통쾌함에서 끊긴 길을 찾은 기쁨을 맛볼 수도 있다.

논리로 무장되어 답답한 일상을 선문답적 격외의 화법을 찾아, 세속의 농담스러운 화법으로 긴장을 푸는 지혜도 되새겨 보는 여유를 갖자.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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