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 받았을 때 성불하라
옛 세상에는 참선을 혀서 깨친 도인네가 많았는디, 요즘에는 참 드물어. 까닭이 무엇이여? 내가 그 까닭이 무엇이여? 내가 그 까닭을 말한 것인게 잘 들어봐.
옛날 스님들은 스스로 도를 통하지 못했으면 누가 와서 화두참선법을 물어도 “나는 모른다”며 끝까지 가르쳐주들 않았어. 꼭 도를 통한 스님만이 가르쳐주었는디, 이 도통한 스님께서 이렇게 생각하신단 말여. ‘저 사람이 지난 생에 참선하던 습관이 있어서 이 생에도 저렇게 참선을 하려고 하는구나. 그러면 저 사람이 전생에 공부하던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도를 통했으니께 환히 다 아실 거 아니여. 혀서 ‘옳다. 이 화두였구나’하고 바로 찾아주시거든. 그러니 그 화두를 받은 사람은 지난 생부터 지가 공부하던 화두니께 잘 안하고 배길 수가 있남. 옛날 사람들은 화두 공부가 잘 되지 않더라도, 화두를 바꾸지 않고 “나는 열심이 모자라니께 열심히만 정진하면 꼭 성취할 것이다.”는 한생각으로 마음을 몰아 붙여 오로지 한길로만 애쓰다가 도를 통하기도 혔어.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그게 아니여.
무엇이든지 한 가지만 가지고 끝까지 공부혀야 하는디, 이것이 꼭 밥 먹기와 매 한 가지여. 똑같은 반찬이라도 어떤 사람은 배불리 맛있게 먹지만 어떤 사람은 먹기 싫고, 또 어거지로 먹으면 배탈이 나는 뱁이거든. 공부도 마찬가지여. 염불을 열심히 혀야 할 사람이 딴 공부를 하니 잘 안 되는 겨.
“한 집안에 천자 네 명 나는 것보다 도를 깨친 참 스님 한 명 나는 게 낫다.”
예부터 이런 말을 많이 들었지. 만일 중이 되어 도를 통할 것 같으면 그 공덕으로 모든 조상영령들과 시방삼세의 중생들이 다 이고득락(離苦得樂)할 것이니 이 얼마나 좋으냐 말여.
이 세상이라는 게 중이 되면, 머리가 있고 없고 글이 있고 없고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여. 차라리 그런 것들은 없는 게 훨씬 나아. 참으로 사람 되기가 어렵고, 천상천하에 그 광명이 넘치는 불법 만나기가 어려운데 말이지, 사람 몸 받아가지고도 참 나를 알지 못하고 참 나를 깨치지 못하면 이보다 더 큰 죄가 워디 있을 겨.
부처님께서도 “나도 너를 못 건져준다. 니가 니 몸 건져야 한다” 하셨어. 그러니 참 그야말로 마음 닦아가지고 니가 니 몸을 건지지 못하고 그냥 죽어봐라, 이렇게 사람 몸 받고도 공부를 이루지 못하고 그냥 죽어봐라, 다 쓸데없다. 어느 날에 다시 이 몸을 기약할 것인가.
수월 스님은?
수월(水月, 1855~1928) 스님은 혜월, 만공 스님과 더불어 경허 스님의 3대 제자 중 한 분으로 머슴 생활을 하다 서른이 가까워서야 충남 서산 천장암에서 출가했다. 그 후 금강산과 묘향산 등 현재의 북한 지역의 사찰에서 수행하다 간도에 초막 같은 송림산 화엄사를 창건해 그 지역으로 흘러든 조선의 유민들과 독립군들까지 거두었다. 1928년 여름 안거를 마친 스님은 화엄사 옆 개울에서 짚신을 머리에 얹고 단정하게 열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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