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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또 한 해가 가고

기자명 법보신문
시간에 얽힌 희비는 처지의 다름서 기인
삶의 굴곡 수행하면 수평으로 전환 가능


삶이란 말을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까. 살아간다는 의식이 있건 없건 삶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것이 시간인 것 같다. 시간은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에 시간을 정하든 안 정하든 일정한 시간은 가고 있으며, 이 시간의 거리는 어느 누구에게나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존재는 시간과 공간의 양대 요소의 결합으로 결정되어 질 터인데, 장소는 사람마다 천차먼별이어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조종될 수도 있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루를 12시간이라 하든 24시간이라 하든 하루라는 길이는 공간적 처소의 어디에서나 다를 수가 없다. 임금님의 하루는 길고 서민의 하루는 짧은 것도 아니다.

하루의 단위를 해가 떠서 지고 달이 떠서 지는 밤낮의 통산인 것은 밝음과 어둠의 교차로서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겠지만, 이러한 어둠 밝음의 교차를 15나 30의 단위로 잘라 1 달이라는 마디를 두었음은 일단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놀랄 만하다. 물론 달이 있어 15일을 주기로 하여 차고 줄어드는 반복에서 착안하였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달력의 원초적 규정의 연원을 생각하면 일단은 묘한 착안이다. 전하는 말에는 동양 상고시대의 요임금이 자신의 뜰에 자라는 풀이 하루에 잎 하나씩을 피우다가 15일이 되면 멈추고 16일이 되는 다음 날부터는 한 잎씩 떨어져 15일이 되면 다 지는 것을 보고 1개월의 단위를 정했다 한다. 그 풀이 명협(蓂莢)이라 한다. 그래서 달력을 명력(蓂曆)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다시 12로 나누어 1년의 단위를 설정하여, 살아감의 중요한 시간적 단위로 삼는다. 그래놓고는 스스로 희비의 두 끝에 매달려 특별한 의미를 지어 보려 애쓴다. 설날 아침 차례상 앞에 앉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표정은 참으로 묘하다. 손자가 한 살 늘었다 기뻐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할아버지는 죽음의 한계적 시간에 더 가까워졌다는 아쉬움으로 쓸쓸해 보인다.

똑같은 시간을 두고 이렇듯 상반되는 상황이 이루어지는 것은 시간이 아닌 처지의 다름에서 오는 것이니, 이 처지의 다름을 다르다 생각하지 말고 동일한 것으로 여기면 희비의 쌍곡선은 저절로 수평의 직선으로 변할 것이다. 살아감의 정신적 길은 누구에게나 평탄한 직선이지 굽은 길은 없다. 삶의 현실적 길에 굴곡 험난함이 있더라도 이 정신적 수평의 길로 전환시키는 수양이 있으면 항시 평탄하다.

올해도 어김 없이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는다는 설날이 왔다. 요즘 흔히 세대간 갈등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같은 시간을 두고 마음의 잣대만 잘 설정하면 시간적 길고 짧음이 줄어들 것이고, 그러다 보면 동일한 시간 위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니, 동일한 시간 안에서야 무슨 갈등이 있겠는가. 여기서 다시 진각국사의 설날 법어가 생각난다.

“한 살 더 먹었다거나 한 살 줄었으면 하는 생각을 집어 던져라. 누가 인간 세상에 신선이 없다 하느냐 호리병 안에도 별다른 천지가 있음을 믿어라” 하였다. 같은 시간의 흐름을 놓고 즐겁다 괴롭다 할 것이 아니라, 인간 세상이 바로 신선의 삶이라 한다면 신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신선인 것이다. 진각국사의 설날 법어를 하나 더 들어 온 세상의 설날 덕담으로 삼자.

“새 해의 불법을 그대들 위해 펴노니, 대지의 풍류가 기운도 드넓어라, 묵은 장애 옛 재앙은 눈 녹듯하여, 신령한 광채 두루 비치고 해 하늘에 솟다(新年佛法爲君宣 大地風流氣浩然 宿障舊殃湯沃雪 神光遍照日昇天)”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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