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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서여 민영규 박사[br](1915 ~ 2005)

기자명 법보신문

한국선종사 재정립

2005년 2월 1일 입적
정인보 학맥 계승
‘대장경’서 ‘조당집’ 발굴
선종사 법계 문제 규명


구십 평생 학문 길에 무엇을 구했던가?/힘들어 한 숨쉬며 반쯤 간 걸 근심하며/촉도를 바라보니 흰 구름 잠겨 있고/여전히 한강 물은 서쪽으로 흘러가네.

서여 민영규 박사와 오랜 기간 인연을 맺었던 송광사 전 주지 현봉 스님은 박사의 작고를 애도하며 이 같은 시를 남겼다.

서여 민영규 박사는 한국 국학의 태두로, 동양사학자이며 불교학자, 서지학의 권위자로 칭송 받던 인물이었다. 서지학이라는 개념조차 미약하던 국내 학계에 1945년 한국서지학회를 창립했으며, 왜곡된 한국 선종사를 새롭게 정립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성과를 남겼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1965년 해인사 『팔만대장경』가운데 들어있던 전대미문의 선종 자료인 『조당집』을 발굴, 「경인조당집(景印祖堂集)」이라는 논문을 통해 초기 선종사의 법계 문제를 새롭게 규명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15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민영규 박사는 일제시대 연희전문에서 수학했다. 그는 이 곳에서 구한말 한학자이며 교육자였던 위당 정인보 선생을 만나 양명학의 학맥을 이은 한학자로 성장했다. 민영규 박사가 훗날 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양명학을 ‘강화학’이라 이름 붙인 것도 이 같은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후 일본 다이쇼대 사학과와 대학원 과정을 마친 민영규 박사는 이 곳에서 일본의 학문이 급격히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서지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충실한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후 해방과 함께 모교인 연세대 사학과 교수로 돌아온 민영규 박사는 그 해 한국서지학회를 출범시키고 국내에 서지학의 중요성을 보급시켰다. 그는 또 연세대에 국내 처음으로 문헌정보학과를 만들었으며, 한국 고문서에 대한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양명학자로 서지학의 대가로 명성을 날리던 서여 민영규 박사가 불교학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1954년 미국 하버드대 초청 연구원으로 부임하게 되면서부터다. 당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그는 우연히 선학사의 대가 호적(胡適) 선생과의 만남을 통해 중국 선사상은 물론 한국 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그는 고려불교 및 선불교사, 조당집 등 문헌에 관한 서신을 주고받으며 체계적인 문헌 연구에 착수했다. 그러던 중 한국 방문을 약속했던 호적 선생이 61년 작고하자 그 뒤를 이어 선종사 정립을 위한 본격적인 연구작업을 시작했고, 마침내 20여 편에 주옥같은 불교관련 논문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는 한국선종사에 대한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초기선종사의 법맥은 물론 한국선종사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선불교의 정신’을 찾기 위해 90년부터 95년까지 일흔이 훌쩍 넘긴 늙은 몸을 이끌고 6차례의 중국 답사를 감행하기도 했다. 이런 결과 그는 마조, 서당, 남전 스님 등 중국 선종사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육조 혜능의 제자가 아니라 신라의 무상 스님의 제자였다는 사실을 밝혀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기도 했다.

평생을 불교학자이자 서지학자로 명성을 날렸던 서여 민영규 박사는 2005년 2월 1일 향년 91세로 입적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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