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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동국대가 걸어온 길 下

기자명 법보신문

사회 선도 인재배출…일류 사학으로 발돋움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는 비운을 겪은 혜화전문이 8·15 광복과 함께 다시 문을 연 것은 단절된 역사를 복원하고 민족문화를 새롭게 부흥시키기 위한 신호탄이었다.

당시 역사상 경험한 바 없는 민주적 헌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국가건설과 민족문화의 창조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를 이끌 수 있는 젊은 동량들이 필요했다. 따라서 혜화전문의 개교는 이런 사회적 요구에 부합하기 위한 불교계의 의지였다.

재원 마련… 종합대로 승격

해방과 함께 혜화동에 있던 구교사를 되찾아 문을 연 혜화전문은 기존의 교육체계와 학교 외형으로는 많은 한계를 갖고 있었다. 낙후된 학교시설과 열악한 재정으로는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이에 현재 동국대 법인의 모체가 되는 재단법인 조계학원과 혜화전문학교는 혜화전문을 대학으로 승격시키기로 결의하고 대대적인 불사에 착수했다.

조계학원은 재정난을 타계하기 위해 전국 사찰을 방문 ‘불교계 인재양성 불사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고, 이에 월정사, 해인사, 통도사 등 전국의 수많은 사찰에서 토지와 재원을 보시했다. 이 같은 불교계의 동참으로 1946년 마침내 혜화전문은 동국대학으로 승격, 이를 인가 받고 현재의 위치인 중구 필동 3가에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불교계의 자체적인 노력으로 대학의 문을 연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한국불교계가 세계의 조류를 직시해 동국대가 조국의 장래를 밝히는 선봉자 양성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학으로 승격된 동국대는 우선 ‘불교정신에 입각해 국가와 인류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건학 이념을 바탕으로 문학부와 경제학부, 별도의 전문부를 두고 4년의 학과과정을 마련, 현대적 교육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갖췄다.

그러나 1950년 뜻하지 않게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이에 일류 동국을 꿈꾸며 착실하게 준비해오던 동국대도 잠시 뜻을 접어야만 했다.

한반도에 총성이 수그러들 즈음인 1953년, 동국대는 다시 3개의 석사과정과 4개의 단과대학을 갖춘 종합대학으로 승격하고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사학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학교를 다시 일으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에 한국광산주식회사 사장과 부통령에 입후보하는 등 다채로운 경력을 가졌던 백성욱 박사를 2대 총장으로 추대하면서 대대적인 학교 재건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동국대는 우선 폭격으로 무너진 학교 건물을 대신해 판자 건물 2동을 신설하고 학사운영을 재개했고, 도서관도 재건해 희귀본 불교경전을 비롯해 문집, 개인저서, 잡지에 이르기까지 6만 8000여부의 도서를 구비, 대학도서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이후 명진관을 비롯해 1·2차에 걸친 건물 신축공사를 통해 현재와 같은 외형을 갖춰 나갔다.

대학이 안정을 찾아가자 학생들의 학구열도 진작됐고, 이로 인해 동국대는 불교학을 비롯해, 문화, 정치, 경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수많은 인재들을 양성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동국역경원을 설립해 고려팔만대장경의 영인과 국역 작업에 나서면서 한국불교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는가 하면 양주동, 서정주 등 한국 문학계의 큰 축을 담당했던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해냈다.

또 동국대는 일제시대 구국을 위해 3·1운동을 이끌었던 학생운동의 전통도 이어나갔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에 분연히 맞서 4·19 민주항쟁을 주도했으며 박정희 정권의 한일 굴욕외교를 반대하는 시위를 이끌기도 했다.

1960∼70년대 격동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동국대는 ‘학문으로써 내일을 개척하는 지성인을 양성한다’는 대학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며 외형을 확대해 나갔다. 60년대 후반부터 동국대는 교세의 확장과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재단산하에 부속 초·중고등학교 설립했으며, 이후 80년대 들어 경주캠퍼스를 설립, 동국대의 위상을 드높였다.

이후 동국대는 미국, 일본, 동남아 등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는 한편, 국내적으로는 불교의 자비정신을 사회에 회향하기 위해 불교종합병원 설립을 추진했다.

1985년 의과대학 설립인가를 받아 경주캠퍼스에 의과대학을 설립했으며, 88년 포항기독병원을 인수해 처음으로 부속 병원을 개원했으며 이후 경주 부속병원, 분당한방병원, 강남한방병원을 속속 개원했다. 특히 동국대는 양·한방 협진 체제를 구축, 다른 대학과의 차별성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런 병원들이 현대적 시설을 갖춘 종합병원에는 거리가 멀었다.

이에 동국대는 ‘첨단 의료시설을 갖춘 대형불교종합병원을 마련하겠다’는 불교계의 염원을 담아 1994년 병원설립 승인 이후 10여 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해 9월 일산에 800여 개의 침상을 갖춘 대형 종합병원을 개원했다.

美-日 대학과 교류… 세계화 추진

2006년 새해가 밝았다. 1906년 명진학교 개교 이후 파란만장한 격동기 속에서도 우리 민족과 함께 숨쉬며 명맥을 이어왔던 동국대가 올해로 건학 100주년을 맞았다. 그 동안 동국대는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이끈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해 냈고, 불교계에도 역량 있는 지도자를 양성해냈다.

이제 동국대는 과거의 명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연구업적 평가, 교육심화프로그램 등을 통해 학문 탐구의 내실을 기하고 있으며 교육공간 확보 및 다양한 사업을 통해 침체된 학교 분위기를 쇄신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동국대는 세계 일류 사학의 꿈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고 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불교-미술사 등 분야서
뛰어난 업적 낸 학자


역대 총장은

동국대가 1953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이후 역대 총장을 맡은 인물들은 대부분 각분야에서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냈던 학자들이었다.

비록 친일파라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명진학교 출신으로 초대총장에 오른 권상로는 『조선불교사』, 『조선문학사』등의 저서를 간행하는 등 불교학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었다.

또 중앙불교전문대 1회 졸업생이며 일본 동양대에서 불교학을 전공한 조명기 박사는 천태학 분야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뿐 만 아니라 한국미술사학을 개척한 고유섭 선생의 제자로 한국미술사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황수영 박사도 동국대를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이 밖에도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도 80년 중반 동국대 총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


다음은 역대 총장 명단
△1대 권상로 △2대 백성욱 △3대 정두석 △4대 김법린 △5대 조명기 △6대 김동익 △7대 서돈각 △8대 이선근 △9대 정재각 △10대 황수영 △11대 지관 스님△12대 신국주 △13대 민병천 △14대 송석구 △15대 송석구 △16대 홍기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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