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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神兵)이 호위하는 성자-3

기자명 법보신문

천신·용왕도 예경한 해동의 선지식

금정산서 7일 독경 신중 힘으로 왜구 쫓아
中, 남산율종 창시 지엄도 신중 공양에 감탄
스님에 대한 민중 의식 존경을 넘어 숭배로


<사진설명>의상대사가 수학한 종남산의 정업사 도선율사탑.

의상이 지상사의 지엄(智儼) 문하에서 수학하고 있던 660년대의 종남산에는 남산율종(南山律宗)의 조(祖)로써 유명한 도선(道宣 : 596667)이 살고 있었습니다.

의상에 비해서 29세나 연상이었던 도선은 의상이 종남산에 이르렀던 661년에 이미 60대 중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조에는 의상이 도선의 초청을 받아서 공양을 대접 받았다는 설화가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의상법사가 당나라에 들어가 종남산 지상사 지엄존자의 처소에 이르렀습니다. 그 이웃에 도선율사가 있어서 항상 천공(天供)을 받는데, 매양 제(齋)를 올릴 때에는 하늘의 주방에서 음식을 보내 왔다고 합니다.

하루는 도선율사가 의상을 재에 청하였습니다. 의상이 와서 자리에 앉아 있은 지 오래 되어도 하늘로부터의 공양이 때가 지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의상이 빈 바루로 돌아간 후에 천사가 이르렀습니다. 율사가 물었습니다. “오늘은 어째서 늦었느냐?” 천사가 답했습니다. “골짜기에 가득 신병(神兵)이 가로 막고 있어서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이에 율사는 의상에게 신의 호위가 있음을 알고 그 도가 자기보다 나은 것에 탄복하면서 그 공양구를 그대로 두었다가 다음 날에 또 지엄과 의상 두 스님을 청하여 공양하고 그 이유를 자세히 말했습니다. 의상이 조용히 도선에게 말했습니다.

“듣건대 제석궁(帝釋宮)에는 부처님의 치아 40개 중에 어금니 하나가 있다고 합니다. 율사께서는 이미 천제(天帝)의 공경을 받고 계시니, 우리들을 위하여 인간에 내려 보내서 복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고 간청해 보십시오.”

율사는 후에 천사에게 그 뜻을 상제(上帝)에게 전하게 하였고, 이에 상제가 7일을 기한으로 보내 주었는데, 의상이 예경하고 맞아서 대내(大內)에 봉안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설화는 천신이 의상을 옹호했다는 것과 의상이 도선에게 부탁하여 제석궁의 불아(佛牙)를 세상에 전하게 했다는 두 가지 내용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도선은 종남산의 정업사(淨業寺)를 창건하고 남산종(南山宗)의 근본도량으로 삼았습니다.

저도 작년 겨울에 정업사를 답사하고 참배한 적이 있습니다. 정업사 입구에서 차를 내려 종남산 봉우리 중의 하나인 규봉(圭峰)을 바라보면서 매우 가파른 길을 올라갔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길이었는데, 계단은 무려 1,100개나 된다고 했습니다.

율종의 조정(祖庭) 정업사에서 도선율사는 『속고승전』을 편찬하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신라의 원광과 자장의 전기도 수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일행이 정업사에 이르렀을 때, 여러 스님들은 대만에서 온 신도들과 더불어 추운 법당에 앉아서 참선을 하다가 잠시 일어나 경내를 함께 포행하고 있었습니다. 천 수백 년 법등을 밝히고 있다는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도선율사가 천공을 받았다는 천공대는 정업사 뒤쪽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하지만 천 길 낭떠러지에 붙어 있는 바위를 타고 올라야 하는 곳이기에 우리 일행은 거기까지 가지는 못했습니다. 천공대를 직접 답사했던 분의 이야기로는 그곳에서 하늘과 직접 소통하는 것과 같은 일체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도선은 특이한 감응(感應)이 많았던 고승입니다. 찬녕(贊寧)은 도선을 율승(律僧)으로 인식하고서 『송고승전』의 명율편(明律篇)에 수록하고 있지만, 오히려 도선은 감통(感通)의 고승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그의 전기에는 신이한 감통담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천동(天童)이 그의 좌우에서 급시(給侍)했다거나, 비사문천(毘沙門天)의 아들 나탁이 호법(護法)을 위해서 도선을 옹호했으며, 또한 위신(威神)이 자재한 나탁 태자가 서역으로부터 불아(佛牙)와 보당(寶掌)을 가져다 도선에게 주었다는 감통담은 앞에 인용한 『삼국유사』의 설화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합니다.

『송고승전』 중의 도선전에는 천동의 급시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즉 정관년(627649) 중에 도선이 필주(泌州)의 운실산(雲室山)에 은거할 즈음에 사람들은 천동이 그의 좌우에서 급시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도선이 천동의 급시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서는 도선이 항상 천공(天供)을 받은 것으로 변이(變異)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서 도선이 의상에게 천공을 공양하려 했지만, 의상 주위에 신병(神兵)의 호위가 있어서 천사(天使)가 올 수 없었다는 설화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지금 세상에도 경호를 받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개는 국가원수 등 정치적인 인물이 많고, 또 인위적인 것입니다. 신병이 의상의 주위를 보호했다고 하는 것은 종교적인 신성성이 강조된 경우로 생각됩니다.

의상과 선묘에 관한 설화에서도 의상이 선묘화룡(善妙化龍)의 호위를 받은 것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선묘는 의상의 귀국길을 안전하게 지켜주려는 염원을 세우고 죽어서 한 마리 거대한 용으로 변한 뒤에 의상이 탄 배를 보호하면서 서해의 험한 파도를 넘어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의상이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서 2주 동안이나 정성을 다했지만 영험이 없자 바다에 몸을 던졌을 때, 바다 속의 동해용이 붙들어 돌 위에 올려놓았다거나 천룡팔부 시종이 의상을 난산의 관음굴로 안내했다는 등의 설화도 모두 천신이 의상을 보호한다는 설화와 비슷한 내용들입니다. 신병이 의상을 보호한다는 그 신병은 화엄신중(華嚴神衆)일 것입니다. 화엄경에 등장하는 신중은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뛰어난 화엄종의 고승들은 신중의 힘을 빌려 이를 무력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설화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의상이 금정산에서 7일 동안의 독경으로 신중의 힘을 빌려 침략해온 왜인을 물리쳤다는 범어사창건설화를 비롯하여, 9세기 전반 화엄종의 홍진(洪震)이 화엄신중의 힘을 빌려 우징(祐徵)을 도왔다는 설화와 신라 말 해인사의 화엄종장 희랑(希朗)이 화엄신중의 힘을 빌려 왕건의 군사를 도왔다는 설화 등이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신병이 의상의 주위를 호위한다는 이 설화에서는 의상의 도력이 스승인 지엄이나 천공을 받고 있던 도선보다도 오히려 더 훌륭한 것으로 강조되었습니다.

“도선율사는 의상에게 신의 호위가 있음을 알고 그 도가 자기보다 나은 것에 탄복했다”고 하여 도선율사 스스로 의상의 도력이 자기보다 앞선다고 말하도록 할 정도로 의상을 높이고자 한 의도가 노출되고 있습니다. 의상이 종남산의 지상사에서 화엄을 공부하고 있던 때는 그의 30대 시절이었고, 유학생에 불과했다. 이때부터 도선이나 지엄보다도 그 법력이 앞서 있었다고 하는 것은 의상의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반영된 것이고, 아마도 이 설화는 훗날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것으로 짐작됩니다. 불아에 관한 설화도 도선전에 토대하여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비사문천의 태자 나탁이 서역으로부터 가져다 바쳤다는 불아에 관한 감통담에 의상의 역할이 덧붙여진 것으로 이해됩니다. 즉 의상이 도선에게 제석궁에 있는 불아를 청해서 세상에 전하도록 부탁했고, 이에 따라 도선이 상제에게 그 뜻을 전하여 불아를 세상에 보내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삼국유사』 중의 의상과 도선에 얽힌 설화는 의상의 도력을 당나라의 도선에 비교하여 도선보다도 의상이 뛰어났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날 이들 설화를 사실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설화는 의상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숭배가 어떠했는지를 쉽게 알려 줍니다.

많은 사람들은 해동화엄초조 의상은 언제나 화엄신중의 호위를 받는 위대한 고승으로 존경했던 것입니다. 서해의 험한 파도를 넘어 이 땅에 화엄대교를 전했던 의상, 그는 신병의 호위를 받아야 마땅한 이였음은 분명합니다.

정리=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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