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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 업은 아기 삼년 찾다

기자명 법보신문
인간의 삶은 얻으려는 욕심에서 출발
사욕 막되, 하고자하는 의욕은 살려야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욕심에서 출발되는 것은 아닐까.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 황망한 인간세상의 바다로 떨어지는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어미의 젖을 찾는 것부터가 무엇인가를 얻어야 산다는 잠재적 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이 얻는다는 마음, 이를 일러 욕심이라 할 터인데, 사람살이의 어울림의 질서에는 이 욕심을 항시 경계의 대상으로 지목하여 이를 억제하려는 것이 교육의 큰 틀인 것처럼 설정하고 있으니, 이 또한 사람살이의 모순이다.

동양 교육의 성인으로 불려야할 맹자의 교육적 기본틀이 바로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막음이라” 하는데, 이 인욕의 욕심을 없애면 사람이 살아갈 욕망이 있을 것인지 되묻게 된다. 물론 이 인욕이란 부정적 평가를 받는 사사로운 욕심으로 인류의 지극히 긍정적 요소인 천리와 대칭적으로 거론되는 것이지만, 욕심의 시발인 하고자함의 의욕이 없다면 천리를 보존하려는 긍정적 진리 추구의 힘마저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잠시 사색의 고리가 얼크러져 혼선을 빚을 듯하다.

결국은 사사로운 욕심인 사욕을 막으라는 것이지, 긍정적 질서 추구의 욕심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칭적인 천리는 사사로움의 대칭이 되니, 사욕의 대칭으로 공리(公理)라는 말이 되어, 결국은 공과 사의 대칭이 되는 셈이다. 사람살이의 기본 질서인 예의염치의 추구는 결국 이 공리의 추구이고 사욕의 추방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 범인의 삶은 이 공리가 무엇인지 모른다. 공자가 인(仁)이라 말했거나, 석가가 법(法)이라 말한 것은 우리네 보통 사람의 삶과는 너무 먼 곳에 있는 것 같아 감히 바라볼수도 없을 듯하여 아예 남의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가 십상팔구이다. 저 밝음의 주체가 달이다 하여 달을 가리켜 주었지만, 막상 달을 보기보다는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근시에 안주하게 된다.

그렇다. 먼 달을 보기보다는 가까운 손가락을 보는 편이 낫겠다.

손가락의 주체가 나이니 나를 보자. 달을 멀리 두지 말고 내 몸 안에다 담아 버리자. 지금부터는 달은 내 몸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달을 내 몸 속으로 가져왔더니 달이 없어졌다. 달이 내 몸 어디에 있는지 다시 헤매게 되었다. 왜 그럴까 이는 객체인 달이 나의 주체 안으로 들어와 다 같이 주체가 되었으니, 주체가 주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를 객체화해야 주체가 된 달을 찾을 수 있다. 나를 찾아야 한다 나를 찾으려면 철저히 내 몸에서 내가 빠져 나와야 한다. 이를 일러 멱아(覓我)요, 한 걸음 더 나아가 망아(忘我)인 것이다.
결국 우리 인간 수양의 과정이 바로 이 나 찾기의 작업인데 내가 내 몸 안에 들어 있으니 어떻게 찾겠는가 내 몸을 객체화 해야 나를 발견하다. 나를 객체화하여 나를 찾는 작용을 소를 찾는 과정으로 비유한 것에 ‘십우도(十牛圖)’가 있다. 소를 찾는(심우 尋牛) 초발심에서 자취를 발견하여(견적 見跡)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기우귀가 騎牛歸家) 수행과 소도 사람도 잊는(인우구망 人牛俱忘) 대승적 보리 성도와, 끝내 세속에 들어 손 놓고도 이루는 방편에 따라 수응하는(입전수수 入廛垂手) 열 가지이다.

그런데 우리는 소를 찾지 못한다. 초발심도 못한다. 왜 그럴까 소의 등에 타고 소를 찾기 때문이다. 소에서 내려서 소를 보듯이 나에게서 마음을 떼어 내어야 한다. 등에 타고 있는 이 소가 바로 찾고 있는 소인데, 소인 줄을 모르고 딴 소만 찾고 있는 것이다. 업은 아기 삼년 찾는다는 속담은 이래서 진리이다. 아기를 내려 놓아야 아기가 보인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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